오지서 풍기는 ‘사람 냄새’에 파묻히고 싶다면…
오지서 풍기는 ‘사람 냄새’에 파묻히고 싶다면…
  • 황인옥
  • 승인 2020.08.25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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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스페이스 루모스, 30일까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신제섭展
그 시절 향한 향수
저녁밥 짓는 냄새나던 골목…
情 가득했던 1960년대 그리워
욕심 내지 않는 소수민족
현대문명 밖, 거친 자연에 순응
진정한 행복은 이런 게 아닐까
5년간의 기록
개발 전 ‘전통 지키는 삶’ 기록
여성·노동 문제 등 보여주기도
신제섭작-중국쓰촨
신제섭 작(중국 쓰촨)

동시대를 살아가지만 국가나 민족에 따라 삶의 시계는 제각각 다르게 흘러간다. 인공지능이나 로봇 등 고도의 과학기술이 제공하는 편의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지구촌 어느 후미진 곳에는 문명의 혜택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도 존재한다. 과거로 돌아가지 않아도 과거로의 여행이 가능한 것은 국가와 민족에 따라 문명 발전 단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신제섭의 사진이 향하는 지점은 ‘잃어버린 순간’.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정겨웠던 어린시절 기억을 찾아 사진을 찍는다. “1960년대 사진에서 본 정(情)이 살아있는 삶의 모습들을 찍고 싶었어요. 저녁이면 온 동네가 밥 짓는 냄새로 가득하고, 이웃 간의 정이 살아있는, 정서적으로는 풍요로운 삶을 말이죠.”

정(情)이 넘실댔던 순수했던 과거를 현실로 불러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거로 돌아갈 수는없는 일이니 그렇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작가가 착안한 묘수는 ‘오지’. 오지에서 만난 원주민들의 얼굴에서 어린시절 기억 속 정감있는 삶의 모습들을 찾았다. 그들이야말로 현대문명의 멈출 줄 모르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들로 다가왔다.

“오지에서 만난 단 한 장의 사진이지만 보는 순간 마음 깊숙한 곳에 아련하게 남아있는 시절의 냄새, 소리, 촉감까지 전해드리고 싶었어요.”

작가는 주저없이 동남아, 인도, 중국, 티베트 등의 오지를 찾았고, 그의 발걸음이 쌓여갈수록 문명에 물들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소수민족들의 생활상이 그의 사진첩속에 차곡차곡 기록되어 갔다.

그가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살지만 늘 시간에 쫓기는 우리의 삶을 보면서 ‘과연 이것이 잘사는 삶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오지 주민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지만 자연에 순응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어요. 사진을 찍으면서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 같았어요.”

신제섭이 지난 5년간 촬영한 사진들을 엮어 ‘Lives on the Road’라는 제목의 작품집을 발간했다. 그의 첫 번째 작품집인데, 2014년부터 중국, 인도를 비롯하여 여러 동남아 국가를 찾아다니며 남긴 사진 100여점이 수록됐다. 작품집 발간과 동시에 출판기념전시가 아트스페이스 루모스(대표 석재현)에서 시작됐다.

작가는 사진을 찍을 때 특별한 기교나 예술성을 염두에 두지는 않는다. 사람의 온기가 남아있는 정서를 담아내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되, 철저하게 오지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손짓 발짓으로 인사를 건네며 그들에게 손을 먼저 내밀었고, 오지인들은 그의 손을 기꺼이 잡아주었다. 그리하여 세계 곳곳에 흩어진 순박한 사람들의 전통을 지키는 삶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그가 “나는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잃어버린 추억의 순간을 담기 위해 오지를 찾아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고 했다. “오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입는 것만 있으면 만족하는 소박한 사람들이었어요. 부를 축적하거나 성공에 대한 욕망이 없었어요.”

초기에는 우리가 잃어버렸던 삶의 모습들을 담았지만, 최근에는 보다 집중된 주제의식을 담은 작업들을 시도하고 있다. 노동현장의 어린이들을 통해 어린이의 노동문제에 접근하고, 특이한 얼굴을 한 오지 할머니들을 촬영하며 여성인권을 생각한다.

특히 얼굴에 문신을 한 미얀마 오지의 할머니들의 사진에서 눈길이 멈춘다. 얼굴에 호랑이같은 무섭고도 흉측한 문신을 새긴 특이한 얼굴을 한 할머니들이다. 사연은 이랬다. 미인이 많기로 소문난 동네가 되면서 동네 처녀들이 하나 둘씩 납치를 당하게 되자 처녀들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얼굴에 흉측한 문신을 새겼던 것이다.

“이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자료로 남겨야 되겠다 싶어 두 번이나 방문해서 애초에 알려진 12명보다 많은 16명의 할머니들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어요.”

오지의 때 묻지 않은 사람들의 삶에서 그가 찾는 것은 무엇일까? 그가 “인간의 본질”을 말했다. 말인즉슨 욕망 이전의 순수한 인간을 말함이었다. 결국 그가 카메라를 메고 오지로 떠나는 이유는 욕망 이전의 순수 인간을 오지 사람들의 모습에서 찾고, 그들의 순수가 사라지기 전에 사진으로 남겨놓기 위해서다. 행복지수가 높은 그들을 만나며 작가 자신도 행복감을 만끽하는 것은 덤이다.

“소수민족의 삶이 개발의 물결에 휘말려 사라지기 전에 사진으로 보존하려 했어요. 그들의 삶을 통해 인간 본연의 삶과 가치를 공유하고 싶었죠.”

사진과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 다닐 때였다. 사진을 찍고, 필름을 현상하는 작업이 마냥 좋아 취미로 사진에 빠졌다. 청년 시절 2~3년간의 예술적 유희가 그의 기억에서 조차 희미해져 갈 무렵, 그는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이번에는 예술적 감수성보다 부성(父性)의 발로였다. 그는 골프선수 신지애의 아버지다. 신지애 선수를 한국 최초로 골프 세계 랭킹 1위로 키워낸 골프 대디다. 골프 대디로 혼신을 다하는 중에 각종 매체에 제공할 신 선수의 사진이 필요했고, 딸의 경기 모습은 그의 카메라에 온전히 기록되었다.

작가정신 못지않게 자녀교육에 대한 철학도 남달랐다. 신지애를 세계 랭킹 1위로 키워낸 것도 모자라, 둘째 딸은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 진학해서 현재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막내인 아들은 미국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아버지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아들은 미국에서 권위 있는 사진전에서 골드메달을 받아 카네기홀에서 상을 받는 역량을 보여주기도 했다.

신 선수 뒷바라지에 10년을 매달리고, 신 선수가 1등을 하면서 딸로부터 독립했다. “딸이 이제는 아빠의 인생을 찾으라고 적극 응원”해 준 결과였다. 딸로부터 독립하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중단된 학업을 잇는 일이었다. 그는 80학번으로 전남대 수의학과에 입학했지만 신학대학으로 방향을 틀면서 졸업할 수 없었다. 중단된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늦은 나이에 수의학과에 복적했고, 35년 만인 2014년도에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이후 그는 광주대 사진과에 입학해 석사학위까지 받으며 전문적인 사진공부도 마쳤다.

그의 도전은 끝이 없다. 향후 차(茶) 관련 대학원에도 진학할 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차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는 동시에, 차(茶) 밭 찬원들의 삶도 사진으로 남길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중국 오지에서 차를 마시며차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고, 제대로 공부를 해보고 싶어졌어요. 운남성 소수민족 마을에 가서 2주간 기거하며 소수민족 찬원들을 촬영할 계획을 세웠어요.” 전시는 30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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