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왕’이라구요? 맹수성보다 더 두드러진 친근함
‘동물의 왕’이라구요? 맹수성보다 더 두드러진 친근함
  • 윤덕우
  • 승인 2020.08.2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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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온의 민화이야기] 호작도
中 표범 도상, 국내로 들어와
한국화 ‘까치호랑이’ 탈바꿈
까치가 호랑이에 길상 전달
어리버리하고 술에 취한 虎
과장되고 해학적으로 변주
서민 호기심 자극·기쁨 선사
어릴 적 할머니가 옛날이야기를 꺼내실 때 ‘옛날 옛날에 호랑이 담배 필 적에’라고 시작하셨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할 때 주로 쓰는 말이다. 그러나 담배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를 생각해보면 대략 17세기 정도이니 담배문화가 일반 백성들에게 대중화 된 시기는 약 18~19세기라고 추정한다.

마치 까마득한 수천 년 전을 말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100~300년 전쯤을 말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수백 년이 짧은 세월이냐고 반문한다. 인간의 생물학적 수명은 평균 70세 전후인데, 사유와 인식, 과거, 미래 따위의 시간적 개념도 생물학적 한계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100년 정도만 넘어가면 보통사람의 인식에는 잡히지 않는 까마득한 시공간이 되는 모양이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호랑이 문화가 다양하게 발달했다. 호랑이의 전설이나 민담이 6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어릴 적에 호랑이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란 이가 없을 정도다. 최남선은 우리나라를 호랑이 이야기가 풍부한 나라라는 뜻으로 호담국虎談國이라 했고, 『아Q정전』으로 유명한 중국의 소설가 뤄신은 조선족을 만나면 호랑이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했을 정도이다.

우리의 늠름한 호랑이를 보시라!
 

송하맹호도-김홍도
김홍도(金弘道), 강세황(姜世晃) 작 /18세기 후반 /견본담채 (絹本淡彩)/90.4 x 43.8 cm /호암미술관.

김홍도와 강세황의 합작품으로 전하는데, 호랑이는 김홍도가 그리고 소나무는 그의 스승인 강세황이 그렸다고 한다. 호랑이는 등을 곧추 세우고 꼬리를 치켜 든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자세에 긴장감이 서려 있어 호랑이의 위용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 호랑이는 예로부터 벽사(

邪 - 사귀(邪鬼)를 물리치는 것. 또는 재앙을 불제( 除)하는 일)의 기능을 담당하여, 새해를 맞아 액을 물리치는 의미로 용과 함께 대문에 붙이거나 서로 주고받는 주요한 소재로 사용되었다.

그러면 이제 호작도로 넘어 가보자.

까치 호랑이의 상징은 벽사와 길상이다. 까치호랑이’ 그림의 뿌리는 중국에 있다고 알려져 있다. 표범과 까치를 함께 그리는 ‘표작도(豹鵲圖)’는 ‘기쁨으로 보답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까치는 ‘기쁨’을 뜻하고 표범의 ‘표(豹)’가 보답할 ‘보(報)’와 발음이 같아 이런 그림이 나온 것이다. 한나라 때 이러한 풍속이 있다. 집안을 들어오는 귀신은 마치 공항의 검문대처럼 대문 양옆에 세워놓은 복숭아나무 사이를 지나가게 했다. 사람에게 이로운 귀신은 통과시키지만, 해로운 귀신은 갈대끈으로 묶어서 호랑이에게 먹였다. 여기서 등장하는 복숭아나 무, 갈대, 그리고 호랑이는 액막이의 상징이 되었다. 어쨌든 중국의 표범이 우리나라에 와서 호랑이로 바뀌어 ‘호작도(虎鵲圖)’ 즉 까치호랑이 그림으로 바뀐 것이다.

호작도는 인간의 길흉화복을 좌우하는 전능의 신으로 여겨지는 서낭신의 사자로서 우리와 아주 친숙한 새인 까치와, 서낭신의 신지를 받들어 시행하는 신령스런 동물로 알려진 호랑이와의 만남을 표현한 그림이다.

민화 속에 등장하는 모습처럼 용맹스럽지만 결코 무서운 모습은 아닌 호랑이가 기쁜 소식을 민중들에게 전하는 모습, 그러한 모습을 통해 결코 아무도 침범하지 못할 복을 인간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따라서 이 그림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전령사인 까치가 서낭신 또는 산신의 신탁을 호랑이에게 전하고 있는 모습이라는 해석도 가능한 것이다.

민화의 경우, 소재 자체의 상징성과는 상관이 없이 단순히 발음의 유사성 때문에 길상의 상징물로 취급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원숭이가 관계(官界) 등용을 상징하게 된 것은 원숭이의 한자말인 ‘후’가 제후(帝侯)의 ‘후(侯)’의 발음과 같기 때문이다. 이런 원리로 호랑이는 보답한다는 ‘보(報)’의 의미를 가지게 됐고, 이것이 까치 즉 희조(喜鳥)와 결합하여 기쁨으로 보답한다는 ‘희보(喜報)’의 뜻을 가지게 된 것이다.
 

호랑이 얼굴
민화 호작도에 등장하는 호랑이의 얼굴 표정.

민화 속 다양한 호랑이의 표정을 보시라. 과장이 심하고, 만화 같기도 하고, 해학적이며 일정한 도상을 가지고 있다. 가끔 호랑이의 얼굴 속에는 그 시대에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담겨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호랑이 얼굴 표정은 다채롭고 재미있다.

이빨을 드러낸 포악한 표정부터 어리바리한 모습, 바보 같은 모습, 할아버지처럼 인자한 모습, 술에 취해 눈알이 뱅뱅 돌아가는 모습까지 다양한 변주가 이루어졌다. 다양한 표정에 과장되고 해학적인 얼굴을 가진 ‘까치호랑이’ 그림은 오늘날에도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재미를 주고 있다. 호작이라는 말 그대로 우리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고 있지 않은가.
 

호작도-리움미술관
호작도 작가미상, 지본채색 86.7 x 53.4 cm 리움미술관 소장.

호작도를 집에 걸고 신년을 맞이하는 마음은 하늘의 뜻에 귀를 기울이거나, 지혜로운 까치 설화처럼 순리대로 주변에 관심을 가지며 살아가려는 마음의 표현이다. 그런 소박한 마음 때문인지 소나무에 앉아 있는 까치와 그 까치를 보고 있는 호랑이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호작도의 풍경 하나 하나가 마치 우리 민중의 모습을 보는 듯 정겨움이 느껴진다.

필자 역시 벽사의 뜻과 좋은 소식으로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라는 의미로 호작도를 그렸다. 한여름에 시작해서 가을에 마친 그림이었는데 그때도 비가 많이 왔었고, 시절은 어수선했고, 필자도 여러 가지 일들로 힘들었던 시기였다.

저녁 어스름한 석양이 지는 시간 울적한 기분에 호작도를 쳐다보니 그림 속 호랑이의 눈빛이 필자를 위로해 주는 듯 했다. 세상살이가 다 그렇듯이 “하루하루 무사히 지나가면 좋으련만 또 내일은 무슨 일이 생기려나, 산 너머 또 산인데... 도대체 이 산은 언제 다 넘어야 되나….” “그래도 걱정하지 말거라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니! ”그래서 제목을 “그대 걱정하지 말아요”라고 지었다. 다시 전염병이 유행을 하고 많은 시간을 사람들과의 거리 띄우기로 고통의 시간들이 맞이해야 하는 지금이다. 그래도 걱정하지 말고 무사히 지나가기를 호랑이와 까치에게라도 위로를 받아보자.
 

호작도-박승온
박승온 작 ‘그대 걱정하지 말아요’ 순지채색 2017년 개인소장.

민화는 당대의 주류 회화와는 분명하게 구분되는 그림이었다. 무엇보다도 민화를 그리는 화가들 대부분이 그림의 수요자와 신분이 같은 이름 없는 서민이었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민화를 그리는 화가의 계층과 신분은 매우 다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래도 전문적인 그림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아마추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궁궐그림이나 사대부 그림 중에서 서민들의 취향과 바람에 맞는 소재를 취사 선택하고, 수요자인 서민들이 용납하고 만족하는 수준에서 자유롭게 그림을 그렸다.

우선 그림 값이 비싸거나 수요자의 요구가 까다롭지 않으므로 굳이 잘 그리려는 욕심을 낼 필요도 없었고, 서민의 미의식은 지배층과는 달리 이데올로기에 얽매여 있지 않아 형식과 이론 따위를 크게 의식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좀 서툴고 어리숙하기는 하지만 소박하고 천진난만하며, 더러는 통념을 뛰어넘는 기발하고 파격적인 그림들이 많이 나오게 됐다. 오늘날 민화의 특징으로 흔히 거론되는 익살과 해학, 재치와 파격 같은 요소들이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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