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란 마음 속에 있는 뜻을 말한 것이다<詩言志>
시란 마음 속에 있는 뜻을 말한 것이다<詩言志>
  • 승인 2020.08.27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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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대구예임회 회장·전 중리초등학교 교장
절친 김선굉 시인이 시집을 한 권 보내왔다. ‘젓대 하나로 바다를 다스리던/어진 사람이 그립다./마디마디 기막힌 황죽의 마디마다/지공을 뚫어가던/슬기로운 손이 그립다./손끝으로 지공을 열고 짚으며/영롱한 소리로 하늘 다스리던/슬기로운 숨결이 그립다./만파만파(萬波萬波) 그 소리 앞에/……’(만파식적)

순(舜)임금이 신하 기()를 불러서 음악을 맡을 것을 명한다. 그리고 나라의 앞날을 짊어질 청소년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면서 “바르고 온화함을 바탕으로 할 것이며, 관대함과 굳은 마음으로 할 것이며, 굳세면서도 거칠게 하지 않는 정신으로 할 것이며, 오만하지 않도록 간결함으로 하라.”고 훈시한다.

순 임금은 이어서 ‘시언지(詩言志) 가영언(歌永言)’을 신하 기()에게 말한다. ‘시란 마음속에 있는 뜻을 말한 것이다. 노래란 말을 길게 뽑아 읊조리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서경(상서)에 나오는 ‘시(詩)는 언지(言志)요.’라는 이 말이 동양에선 최초의 시(詩)에 대한 정의이지 싶다.

시경 서문에도 ‘시란 사람의 마음이 흘러가는 바대로 뜻이 가는 곳이다. 마음속에 있을 땐 뜻이라 하고, 말로 표현했을 땐 시가 된다.’고 하였다. 뜻이 마음속에서 움직이면 말이 나온다. 말로 표현할 때 불만족스러우면 탄식이 나오고, 탄식도 제대로 못하면 길게 소리친다. 길게 소리치는 것도 부족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을 흔들고 발로 땅을 구르며 광란의 춤을 추게 된다. 신라 경문왕 때 ‘우리 임금의 귀는 나귀 귀다!’라고 대숲에서 울부짖은 복두장이 그렇다.

공자는 시경에 나오는 시 삼백 편을 다 읽어 보고, 시를 ‘사무사(思無邪)’라고 하였다. ‘간사함이 없는 것.’이라는 뜻이다. 어린아이들을 보라. 그들은 순진무구하며 마음엔 전혀 간사함이 없다. 글을 쓸 때 기본자세이기도 하다.

양나라 유협은 ‘문심조룡(文心雕龍)’에서 ‘문심(文心)은 문학에서 창작, 감상, 비평 활동을 하는 사람 마음의 움직임이고, 조룡(雕龍)은 용을 조각하듯이 세심한 주의력과 기교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래서 작품의 이상적인 맵시로 풍(風), 골(骨), 채(采)가 있다고 하였다. 풍은 작자의 감동력, 골은 어휘의 적절한 배치에 대한 치밀성, 채는 미적인 언어표현을 말한다. 그기에 소리가 조화를 이룬 음률을 더하면 ‘시언지(詩言志)’이다.

T.S. 엘리엇은 ‘시의 정의(定義)의 역사는 오류(誤謬)의 역사’라 말했다. 시에 대하여 일관성 있는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엘리엇은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시인의 목소리, 청중에게 말하는 시인의 목소리, 시로써 말을 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말했다. 즉 시인의 목소리는 ‘시언지(詩言志)’이다.

김선굉 시인이 보내 준 ‘술 한 잔에 시 한 수로’의 시집을 또 읽었다. 나는 아들이 살고 있는 경주 양남에 자주 가면서 감은사지를 지날 적마다 만파식적을 생각하였다. 동해안의 문무대왕 수중왕릉을 지날 때마다 만파식적을 떠올렸다. 신문대왕은 아버지 문무대왕을 위하여 감은사를 세웠다.

삼국유사에는 신문대왕이 용에게 “바다 위의 산이 대나무와 함께 혹은 갈라지고 혹은 합쳐지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하고 물었다. 용이 “비유하면 한 손으로 치면 소리가 나지 않고, 두 손으로 치면 소리가 나는 것과 같습니다. 대나무는 합쳐야 소리가 납니다. 대왕께서는 소리로 천하를 다스려야 합니다. 대나무를 가지고 피리를 만들어 불면 온 천하가 화평해질 것입니다.”고 하였다. 신문대왕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었다. 적병이 물러나고 온갖 몹쓸 병들이 나았으며, 가뭄에는 비가 오고 장마가 지면 날이 개고, 바람이 멎고 파도가 잠잠해졌다. 그래서 이 피리를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 부르고 국보로 삼았다. 효소대왕 때는 다시 이름을 고쳐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이라 했다.

잔인한 코로나19 확산, 국론 분열, 학력 우열, 홍수 피해, 주택 문제, 적폐 청산, 행정 시비, 정치·사회 지도자들의 꼴불견다툼으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다.

김선굉 시인은 ‘젓대 하나로 바다를 다스리던/어진 사람이 그립다.’고 했다. 젓대는 목관악기인 대금을 말한다. 대금은 다른 악기의 음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시인은 ‘슬기로운 숨결이 그립다.’고 했다. ‘시란 마음속에 있는 뜻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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