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침·오물은 혐오스럽다?…사회 통념에 돌 던진 그
길거리 침·오물은 혐오스럽다?…사회 통념에 돌 던진 그
  • 황인옥
  • 승인 2020.08.30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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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K 갤러리 최선 개인전
빨갱이·OECD 자살률 1위 등
적나라한 현상에서 소스 획득
평면에 김칫국 ‘콸콸콸’ 붓고
기존회화의 미적 가치 전복
미술이 가진 권위에 질문하고
인식 지평 넓히려는 태도 견지
다시-최선멀미
최선 작가가 전시작품 ‘멀미’ 앞에서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다시-6오수회화
최선 작 ‘오수회화’
 
우리가모르는것들
최선 작 ‘우리가 모르는 것들’

최근 개막한 CNK 갤러리 개인전에 걸린 작품을 설명하는 작가 최선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그것을 전달하기 위해 구현한 시각적 조형언어는 단호하고 급진적이었다. 부드러운 눈동자 너머에 이글거리는 냉철한 작가정신은 그의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가치다.

다분히 급진적인 그의 작품들은 견고하게 고착된 기존의 관념이나 가치에 대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한다. 생명경시 풍조나 극으로 치닫는 이분법적 이념대립, 환경오염 문제 등 견고하게 고착된 관념이나 가치로부터 촉발되어 불거진 사회문제들을 시각언어로 구현한다. “저는 미술이라는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가치로 인식의 지평을 확장시키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전시작품 ‘멀미’와 ‘나비’는 그의 문제의식이 잘 드러난 작품들이다. 작품 ‘멀미’는 지난 십여년간 한국 사회에 난무했던 ‘빨갱이’라는 단어에서 착안했다. 세대나 지역 간의 구도와 관계를 순식간에 경직으로 이끄는 우리 사회의 첨예한 이념간의 대립을 태극기의 빨강과 파랑, 빨강과 파랑이 겹쳐진 보라, 그리고 군복의 위장 무늬 형태의 선의 형상으로 표현했다.

작품 ‘나비’는 일반인 참여자들에게 잉크에 숨을 불어넣게 한 작품이다. 2014년 즈음에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수치 속에 숨겨진 우리사회의 생명 경시 풍조를 보고 살아있는 존재들의 공통분모인 ‘숨’을 통해 살아있다는 것의 아름다움을 표면화했다.

기존의 견고한 관념이나 가치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는 대학 재학 시기 ‘회화’라는 매체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촉발했다. 흰 켄트지에 물로 문을 그리거나 커다란 흰 천에 물감을 반죽하듯 입히거나, 대학 동료가 그린 그림의 전면을 끌로 거칠게 벗겨내어 실재했던 형태의 흔적을 상실하게 하는 등의 작품으로 논쟁을 불러왔다. 이 모든 혁신성 이면에 실재하는 평면회화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미국의 모더니즘 회화와 ‘한국적 모더니즘 회화’로 포장된 한국의 ‘백색 회화’가 주창하는 ‘추상 회화의 평면성’에서 ‘왜 추상회화여야 하는지’에 대한 진정성 있는 접근이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그 두 가지 측면에서의 반성 위에서 둘 모두를 아우르는 대안적인 미술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고정관념으로부터 탈피해 자유로운 미술을 모색했던 작가. 그는 기존의 미술이 가진 권위에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며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려는 강렬한 태도의 소유자다. 그런 그가 “나는 분명 미술이 없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작업한다”며 혁신적인 말을 꺼냈다. 작가에게 있어 통념과 아우라에 구속된 과거의 미술은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며 작가가 바라는 작업은 “작가만의 창작물이라는 생각을 뛰어넘는 데에 이바지하는 예술”이었다.

“미술이 무엇이고, 그림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형식적 실험, 형식적 파괴 등의 형식으로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구축해 가고 있는 작가는 특히 일상에서 만나는 불순한 재료들을 통해 현실과 소통하지 못하는 기존회화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그는 산모의 젖이나 김칫국물이나 항암제를 평면에 붓거나 흘러내리게 하고, 자신의 피를 전구나 휴대폰 카메라 표면에 떨어트려 피가 굳어가면서 변화하는 현상을 보여주는 등 일상 속 재료를 통해 현실을 작품에 적극 끌어들인다. 이를 통해 회화에 덧씌워 놓은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를 전복한다.

“산모의 젖이나 김칫국물로 만든 작품이 회화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오히려 이런 재료들이 더 현실적인 회화로 다가온다고 봐요.”

전통 회화에 대한 권위는 그리는 주체에서도 여지없이 깨진다. 일반 대중을 작업의 참여자로 끌어들이기도 하는 것. 일반인들이 작업의 전 부분을 관장하기도 하고, 일정 부분 작가가 개입하는 경우도 있다.

전시작 ‘모국어 회화’는 소위 ‘껌 좀 씹는다’는 청소년들을 참여시켰다. 그들에게 점·선·면이라는 미술의 조형요소를 껌을 씹어 만들어 조합하게 한 후 사진을 찍게 하고, 그 이미지를 작가가 대형 캔버스에 옮기는 식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작품 ‘나비’ 역시 수많은 일반인들이 잉크에 숨을 불어넣게 한, 그야말로 일반인들의 능동적인 체험으로 완성된 생명 경시에 대한 메타포다.

아름답다고 간주되는 통념적인 미의식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혐오스러운 재료들을 아름다운 물감의 미끈함으로 대체하고, 그것을 화려한 갤러리 벽면에 전시하면서 미술의 권위에 대한 질문을 깊이를 더해간다. 길 위에 뱉어놓은 침의 형태를 표현한 작품 ‘멍든 침’, 난지도 오수 위 침전물의 형태를 옮겨놓은 작품 ‘오수 회화’, 비 개인 후 거리에서 말라죽은 지렁이의 형태를 구축한 ‘지렁이 글씨’ 등의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일상에서 인지하지 못하거나 때로는 하찮다고 생각하는 가장 낮은 것을 역사적으로 가장 귀했던 고급 안료로 그려냄으로써 그 위치를 이동시키고자 했어요.”

죽음을 다룬 작품 ‘실바람’에서는 그의 작가정신이 정점을 달린다. 죽은 이의 뼛가루를 전시장 바닥에 뿌려놓고, 관람객이 움직일 때마다 살아있는 것처럼 살랑거리게 한 작품이다. “어떻게 하면 물감이라는 전통재료, 작가의 행위라는 전통 작업방식을 새롭게 확장시키면서 현대성을 드러낼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어요.”

주제는 무겁지만 작업과정은 마치 ‘노는 것’처럼 가볍게 진행된다. 일상을 작업으로 끌어들인 결과다. 그는 일상에서 잠깐 스쳐가는 딸꾹질 같은 상황이나 경험을 친근한 재료나 일반인 참여자들로 심층적으로 시각화한다. 작가는 주제로 끌어들인 ‘현실의 이야기’를 미술 작업을 하는 작가들의 현실과 동일시로 인식한다. 이는 “현실과 유리된 미술을 하고 싶지 않은 태도”의 결과다.

“현실과 동떨어진 모호한 이야기는 온전히 이해될 수 없기에 현실 그대로 작품에 담아내며, 그것이 모두에게 공유되면서 현대인들에게 자유롭게 가치를 찾아가도록 도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일상에서 의식이 흔들린 다양한 주제들을 진중한 담론으로 형상화하는 작가지만 “결코 스스로 해답을 내려는 의도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해답’이 아닌 ‘질문’으로 보아 줄 것을 주문했다. 그는 스스로 질문하고 해답을 내린 후, 그것을 세상에 제시하려는 태도는 견지하지 않는다.

그는 “나는 단지 내가 가진 의문을 나한테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시각적으로 드러낼 뿐이다. 답은 각자가 찾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같은 단어 쓰고 있으면서도 뜻이나 물음이나 가치는 나이에 따라 변화하는 것 같아요. 이것이 나의 미술이라고 확신할 수 없기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아요.”

그가 “미술의 역사는 용기 있는 작가들의 대범한 시도와 도전의 기록”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작가야말로 어떤 상황을 뒤집어서 생각하는 게 직업인 사람들이라는 이야기였다. “저는 작가로서 낯선 순간, 어려운 고비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새로운 해결방법을 모색하며 창의력을 발휘하는 사람이기를 바라며 작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최선 개인전은 갤러리 CNK(대구 중구 이천로)에서 11월 20일까지. 053-424-0606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 최선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했다.  P21  ‘오수회화’전, Gallery D ‘멍든침’전, 씨알콜렉티브 ‘멀미’전, 송은아트스페이스 ‘메아리전’, 봉산문화회관 ‘자홍색회화’전, 타이베이 뱀부커튼스튜디오 ‘두세상’전, 일본 요코하마트리엔날레뱅크아트LIFE3 프로젝트 등 14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챕터투야드 ‘Black Humour’전, 중국 홍콩 Soluna Fine Art ‘Obangsaek; Indigo’전 등 다수의 기획전에 참여했다. 제2회송은미술대전 대상(송은문화재단), 종근당예술지상을 수상했다. 송은문화재단, 서울시립미술관 ,,Sigg Collection(스위스), 국립현대미술관미술은행, 정부미술은행, 종근당 등에 작품이 소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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