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억지로라도 인과관계를 찾아내려들기 때문에 운과 실력을 구분해내는 것이 쉽지 않다. 어떤 활동은 운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원인과 결과가 항상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악기연주가 좋은 예다. 피아노의 거장은 언제든 수준 높은 연주를 할 수 있다. 반면 어떤 활동은 운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투자가 여기에 해당된다. 뛰어난 투자자가 의사결정을 내리더라도 단기적으로는 불운 탓에 성과가 부진할 수 있다. 진정한 실력이 드러나려면 불운을 걸러낼 정도로 의사결정의 횟수가 많아져야 한다. 운과 실력을 구별해 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둘을 구별하려는 노력을 계속해나가면 의사결정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운-실력 스펙트럼상의 위치를 알려면 해당 활동이 운의 영향을 얼마나 받는지 파악해야 한다. 달리기는 운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으므로 운-실력 스펙트럼상 위치가 거의 오른쪽 끝이다. 반면 슬롯머신은 운이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므로 위치가 거의 왼쪽 끝이다. 투자 역시 단기적으로는 운이 실력을 압도할 수 있기 때문에 왼쪽에 끝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위치 그 자체보다 위치를 고려해 적절한 의사결정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우리는 운에 좌우되는 활동을 평가할 때도 절대적으로 실력이 중요한 활동에 적합한 의사결정 방법을 사용하는 실수를 자주 저지르기 때문이다. 달리기 연습을 할 때와 투자에 임할 때의 의사결정 방법은 달라야 한다.
실력을 향상시킬 방법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해당 활동이 운-실력 스펙트럼에서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실력이 중요한 분야에서는 계획적으로 연습을 해야 하지만 투자처럼 운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분야에서는 과정과 확률에 관심을 두는 것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일어날 가능성은 있었지만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생각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사건이 일어나면 우리 본능은 ‘그 사건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라며 이유를 만들어낸다. 끝으로 극단적으로 좋거나 나쁜 결과가 나왔을 때는 현 상황의 지속가능성이 낮다는 점도 염두 해야 한다. 미래를 예측할 때 가장 쉽게 범하는 실수는 평균회귀를 감안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추락한 것들은 언젠가 다시 제자리를 찾을 것이고, 지금 황금기를 구가하는 것들은 언젠가 추락할 것이다.” 로마의 시인 호레이스가 한 말로 워렌 버핏의 스승인 벤자민 그레이엄이 <증권분석>의 첫 장에 인용한 문구이기도 하다. 투자를 하다가 행운을 만났다면 이후에 마주할 수 있는 불운을 대비해야 한다. 불운을 먼저 만났더라도 너무 상심할 필요는 없다. 선택한 방법이 옳다면 당장의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 나가면 되기 때문이다. 투자를 하다 보면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지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합리적 과정을 고수해 나간다면 자기 앞에 놓인 결과를 덤덤한 태도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대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