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덕장에서
황태덕장에서
  • 승인 2020.09.01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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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희
남주희

 


그대 몸속으로

솟대 하나 의지하며

冬天을 들어 올려 버퉁긴

100날//

대관령 횡계리에서 어둘목까지

꽃 한 두름 피우리라 다짐했던

혼신의 끝

기다림이 길어지면 체념의 江도 흘러가고 있음이니

얼어붙은 날들을 生이라 부르며

유형의 벌판으로 유유히 꿰어

바다를 한 겹 벗고 대처로 떠나던 날

바람, 종내 드려다 보지 않고

눈꽃 혼자서 분분히 일어설 뿐

언젠가 네 그림자 만나 일러준

까마득한 환생

그 깨끗한 약속 하나 믿고

허망하게 걸어가는 한 무리의 나팔소리

지독한 몸살을 앓은 한 생애가

꾸덕꾸덕 바다를 거두고

층층 비릿함에 취한

눈 먼 눈알만

환하게 불을 켜는

◇남주희(南珠熙)= 2003년 <시인정신> 시 <현대수필> 수필 당선, 김우종 문학상 시부문 본상, 한국 민족문학상 시부문 수상, 시집 <제비꽃은 오지 않았다>외 4권, 산문집 <조금씩 자라는 적막>.

<해설> 진정한 존재는 그 어떤 형태에도 속해 있지 않다. 이 세상 모든 것은 형태 없음에 속해 있고, 전체와 완전에 속해 있다. 그래서 모든 것은 무형의 존재이며, 어떤 몸통에도 속해 있지 않다. 내가 바로 하나의 장애물이고, 나라는 존재의 관념이 결단코 넘을 수 없는 벽이다.

인간은 현실 공간 속에서 가끔 자신을 잃어버리는 순간을 경험한다. 본연의 내 모습, 그 순수 영혼을 되찾는 것은 진실한 사랑 속에 머무르며 자신의 영혼을 맑히는 일이다. 그러면 자신의 참 모습을 볼 수 있고, 나 자신이 바로 순수한 진리임을 깨달을 순간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 본연의 나를 찾는다는 것은 내 안에 있는 궁극적인 것과 내 뒤에 가려져 있는 순수하고 진정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한다.

스스로 만족하는 것은 쓸모없는 일을 더하는 것이다. 구하고자 하는 마음은 잃음의 시작이고, 이름 얻고자 하는 마음은 이름 잃음의 시작이다. 누가 구함과 이름 얻음으로부터 자유를 얻어 인간무리 속으로 내려와 살다가 사라질 수 있을까. 아마도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어리석지만, 아무런 힘을 가지지 않아 이룸도 없고, 이름을 얻지 않으니 아무 구별도 없고, 또한 판단함이 없기에 아무도 판단하지 않아서 매우 단순할 것이다. 그래서 진정 완전하게 비어있다. 그 사람은 황태처럼 아무런 자취도 남기지 않는 발걸음으로 삶 그 자체가 되어 걸어갈 것이다.

쉬움은 어려움 속에서만이 비로소 쉬움이 되고, 어려움도 쉬움 속에서만이 비로소 어려움이 된다. 명태의 명명처럼 어떤 위치가 본질적으로 앞이고, 어떤 자리가 본질적으로 뒤가 될까. 이 세상 모든 것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를 향해 무한히 열려있어 서로 섞이면서 꼬이면서 하나가 되어가면서 비로소 그것(서로 존재의 근거가 되어 공존하고 있음)이 된다. 거기에 그대가 있기에 여기에 내가 있음이다. -성군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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