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으로 환생한 전체주의 그림자
팬덤으로 환생한 전체주의 그림자
  • 승인 2020.09.01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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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칼럼
박노광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정책실장·경제학 박사
열성 지지자를 팬덤이라 부른다. 팬덤이라는 말은 광신자를 의미하는 퍼내딕(fanatic)의 팬과 영지 또는 나라를 의미하는 접미사 덤(-dom)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용어라고 한다. 사전적 의미로는 스포츠나 영화 등의 팬 전체이지만, 보통은 연예계나 스포츠계의 팬 집단을 표현할 때 사용하고 있다. 팬덤은 시간이 지나면서 특정 인물이나 분야를 광적으로 좋아하거나 몰입해서 빠져드는 사람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 스마트폰 없이 살아가는 것을 힘들어 하는 사람들) 시대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최고의 경쟁력이다. 따라서 SNS가 활성화되면서 특정 정당 혹은 정치인을 지지하는 열성 지지자들에게 감성적으로 호소할 수 있는 팬덤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유명 정치인일수록 팬덤이 두껍게 형성되어 있으며 로얄티도 높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제19대 대통령 선거시점에 ‘대깨문’이라는 팬덤이 등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인 대깨문은 선거기간에는 큰 영향력을 미쳤지만 지금은 부정적으로 언론에 오르내린다. 서울시 집회금지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인 판사를 해임하자는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의 언쟁에서도 등장한다. 이원욱 의원은 “의료지식이 없는 법관이 판단하는 것은 위험을 낳을 수 있다”면서 박형순 금지법을 발의했다. 진중권 전동양대 교수는 “민주당 의원들 중에는 함량이 모자라는 의원들이 다수 있다. 대깨문들 지지 받겠다고 이 또라이들이 그런 법을 만들지 모른다”고 거칠게 비판했다. 아마 대약진운동 시기에 등장한 홍위병이 대표적인 정치 팬덤이라 할 수 있다. 마오쩌둥은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정치 일선에 물러난 후 권력 회복을 위해 문화대혁명을 일으켰다. 문화대혁명은 마오쩌둥이 주도한 극좌사회주의 대중운동으로 공산당 내부의 류사오치와 덩샤오핑 등 반대파를 제거하고 권력 재탈환을 기도한 일종의 권력투쟁이다. 마오쩌둥은 당 밖의 대중 특히 청년 학생을 중심으로 한 홍위병을 동원하였다. 이들은 마오쩌둥과 그의 이념을 종교적으로 숭배하며 무리를 지어다니면서 마오의 정적이나 구시대적, 부르조아적이라고 간주된 모든 것에 폭력을 행사하거나 철저히 파괴하는 급진성을 보였다. 마오쩌둥은 문화대혁명을 통해 정적들을 제거한 후 “지식 청년들이 농촌으로 돌아가서 다시 배우자”라고 주장하며 1968년 상산하향(上山下鄕)을 전개해 지식 청소년들을 깊은 산골로 추방하였다.

국가주의라는 이름으로 전체주의가 다가오고 있다. 이탈리아 독재자인 무솔리니는 ‘토탈리토리아’라는 용어를 통해 “국가 안에 모두가 있고, 국가밖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으며, 국가에 반대하는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국가와 이념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이 행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쥘 베른은 공동체에 대한 개인의 자유와 권리도 희생할 수 있다는 일부 좌파 및 운동가들의 주장에 대한 반발로 좌파 파시즘을 제기했다. 1971년 말에는 독일 사상가 겸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좌우 이념에 상관없이 전체주의적인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프랑크푸르트 대학 교수직을 던져버리고 막스프랑크 연구소로 자리를 옮겼다. 그가 대학을 떠난 데에는 1960년대 말부터 격렬해진 서독 내 학생운동 세력과의 갈등이 배경이 되었다. 그는 일부 학생운동가들의 과격 시위와 목적 달성을 위해 누군가를 이용하거나 반대파에게 무자비하게 대응하는 것을 보고 좌익 파시즘을 언급했다.

역사는 국가주의가 어떻게 공공의 가치를 침해하여, 국민들이 지구상의 다른 모든 사람을 해치면서 그들 자신의 편익만을 증진시키려고 하고, 다른 국가들도 이에 대응하여 동일한 행동을 하는가를 크게 경고한다. 억제되지 않는 국가주의는 자국내의 시민의 가치를 타락시킬 수도 있으며, 시민의 자유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의와 공정이라는 이상을 학습하고, 개선하고, 실현하기 위해 시민단체와 정치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다양하게 활동하면서 국가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그것을 학습하는 데에는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사회 속의 시민의식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공통된 역사를 공유하고 공통된 문화에 참여하기 때문에 타인들에 대한 책임감을 배워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위기를 닥치면 어렵게 형성한 시민의식을 팽게치고 토착왜구나 가짜뉴스와 같은 자극적인 언어를 통해 지지층을 결집해 쉽게 극복하려고 한다. 이런 용어가 자주 언급될수록 전체주의적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순수한 정치적 팬덤을 홍위병으로 격하시키면서 결국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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