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을 수 없는 틈에서 찾은 아름다움…갤러리 팔조, 홍해은 ‘꽃밭’展
막을 수 없는 틈에서 찾은 아름다움…갤러리 팔조, 홍해은 ‘꽃밭’展
  • 황인옥
  • 승인 2020.09.0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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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색상·비정형 드로잉
관객 흥미 돋우는 착시 선사
가위질로 대칭 형상 만든 후
화폭에 옮길 때 ‘다름’ 발생
“살다보면 균형 깨질 수밖에
균열이 곧 변화 가능성”
얼굴-홍해은작가얼굴
홍해은 작가가 팔조갤러리 개인전에 걸린 전시작품 앞에서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색종이로 종이접기를 하는가 싶더니, 이내 거침없는 가위질을 가한다. 가위가 지나간 자리에 종이를 접은 방식에 따라 형형색색 대칭의 형상들이 나폴 거린다. 언뜻 보면 어린아이의 색종이 놀이 같지만 사실은 작가 홍해은의 작업 과정 중 일부다. “색종이를 반으로 접고 그것을 다시 반으로 접어 손이 가는 대로 형태를 오려내어 종이를 펴면 4개의 반복적인 대칭 무늬가 생기죠. 이 대칭 무늬들이 그림의 재료가 됩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한 재료 수집은 또 다른 방향에서도 진행된다. 다른 작가의 작품 속에서 시각을 자극하는 색을 만나면 그 색을 손바닥만한 크기의 종이에 드로잉으로 남긴다. 작가는 이를 ‘색채수집’으로 표현했다. “‘색채수집’은 다른 작가의 그림에서 마음에 든 색의 비율과 위치 등을 작은 종이에 수채로 빠르게 옮겨 그린 그림이에요.” ‘색채수집’은 색채와 비정형의 선들로 구성되는데 선은 색채 인식을 최적화하는 기호 정도로만 활용되고 의미는 두지 않는다.

작가로서 누군가의 색을 차용한다는 사실을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을 법도 한데 그녀는 당당하게 밝혔다. 이러한 태도 속에서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그러니 누군가의 색을 쓰는 것은 공부”라는 철학이 묻어났다. “화가가 색을 수집하는 것은 글쓰는 작가가 풍부한 어휘력을 위해 단어를 수집하는 것과 같아요. 색 수집이 제게는 제가 가진 색에 대한 한계를 확장하는 과정에 해당되죠.”

그리기를 위한 기초 재료가 수집되었다고 곧바로 본 그림 그리기에 돌입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하나의 단계가 남아있다. 본 그림에 앞서 작은 종이 위에 수집한 재료들을 조합하는 예비 그림 그리기가 선행된다. “예비 그리기에서 형태와 색이 하나의 가치선상에서 최정점을 달릴 때 예비그림이 비로소 캔버스에 본그림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종이접기와 자르기로 대칭적인 형태를 만드는 것은 규칙을 도입하기 위한 방편에 해당된다. 작가는 ‘규칙’을 작업의 이론적인 토대로 깐다. 이 규칙은 인간이 태어나면서 부여받는 태생적 조건들이 해당된다. 왼쪽과 오른쪽의 대칭이 대표적이다. “사람도 태어날 때 오른쪽과 왼쪽 대칭을 전제로 하는데 우주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하지만 정작 작가가 작품에서 주장하는 주제는 규칙과 정반대의 개념. 우주의 질서로 대칭성을 부여받고 태어났지만 살아가면서 대칭이 깨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강조한다.

대칭성을 부여받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대칭의 균열을 경험하는 과정이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 그대로 이입된다. 이는 삶과 그림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하기보다 하나의 궤적 속에서 수렴하고자 하는 태도로부터 왔다. 예비그림이 본 그림으로 옮기지는 상황에 작가 손의 움직임에 따라 미세한 차이가 생기거나 어떤 경우에는 의도적으로 차이를 만들며 균열은 진행된다.

작가가 “나는 이 대칭의 균열에서 오히려 미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한다”고 고백했다.

작업에 대칭이라는 우주의 질서를 끌어들인 것은 SF나 우주과학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왔다. 하지만 작가는 우주의 질서를 진리로 받아들이기보다 깨트리는 쪽을 선택했다. 대칭과 대칭의 균열이라는 두 개념이 향하는 대상이 작가 자신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인간이라는 더 큰 범위로 확장될 수 밖에 없다.

“평생 작가로 살게 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를 생각해 봤어요. 그때 어떤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것보다 내 주변에서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들을 해 보자는 결론을 내렸죠.”

2차원 평면회화에 대한 선호는 작가의 세계관과 연결된다. 작가는 세상을 이차원으로 인식한다고 믿고 있다. “공간은 삼차원이지만 시각적으로 우리는 정면과 측면 등 여러 방향에서 각각 이차원으로 보고 그것을 3차원으로 조합해 인식한다고 생각해요.”

추상에 가까운 형상과 밝고 흥미로운 색의 조화로 이루어진 화면이어서 그럴까? 누군가가 재미있게 놀다간 흔적같은 느낌이 강렬하다. 보는 이를 상상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작가는 이 흥미로운 화면들의 성찬을 ‘꽃밭’이라는 제목에 은유했다. 그가 “시각적으로 보는 즐거움이 가득하기를 바라며 밝고 흥미롭게 그렸다”고 전제하며 “단지 ‘즐거움’을 재현하거나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으로만 할 수 있는 수행이자 언어로서 즐거움을 표현하려 했다”고 고백했다.

“‘그림 같은’, ‘그리고 싶은’ 것들을 그러모아 즐거움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저에겐 미적인 순간이자 삶을 사랑하는 방식과 닮아 있습니다.” 갤러리 팔조(경북 청도) 영아티스트 시리즈 Ⅳ에 초대된 홍해은 개인전은 9월 23일까지. 054-373-6802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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