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침묵
잃어버린 침묵
  • 승인 2020.09.0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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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윤 SQ힉스아카데미 대표, 경영학 박사
돌아가신 아버지를 회고할 때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 분의 침묵이었다. ‘한 가정의 가장인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침묵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버지는 말이 없으셨다. 집에 돌아오시면 식사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시간에 책을 보거나 붓글씨를 쓰셨다. 그 때문에 집에는 조용한 정적이 감돌았고, 분위기가 불편할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침묵은 집안을 중심을 잡아주는 정신적 기둥이었다. 그런 아버지의 침묵은 은근히 멋이 있어서 나는 침묵을 좋아하는 조용한 아이로 성장기를 보냈다.

내가 침묵에 대한 매력을 더 깊이 느낀 것은 고등학교 때 일시적으로 접하게 된 가톨릭을 통해서였다. 그때 만난 가톨릭 신부님과 수녀님 그리고 친구들은 거의 모두가 조용히 말하는 사람들이었다. 침묵 속에 기도하는 그들의 모습은 아직도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성당이나 피정의 집에서 조용히 웃으며 맞아주던 수녀님, 햇빛이 비치는 조용한 기도실, 조용한 식사 시간. 가톨릭의 침묵은 어색하지 않고 포근해서 좋았다. 침묵이 불편하지 않고 이렇게 편안할 수 있다니 참 신기한 일이었다.

이렇게 침묵을 좋아했던 내가 개신교인이 되어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다. 개신교인들은 살짝 말이 많고 또 말을 잘하는 편이다. 입교 초기에 만난 개신교인들은 빠르고 많은 말로 내게 관심을 가져 주었다. 조금도 나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고 끊임없이 말을 걸어와 나를 불편하게 하기도 했다.

심지어 말을 한번 하기 시작하면 한 두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었다. 교인들이 그런 정도이니 목사들은 더 말 할 것도 없다. 그 분들은 분위기가 어색하지 않도록 대화의 주도권을 잡고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습성이 몸에 배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침묵을 좋아하고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싫어하는 내가 개신교 목사가 된 것이다. 개신교에 입교한 후에 나도 점점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되어 갔다. 특별한 종교적 체험을 한 후에는 나도 말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목사가 되자 대화의 주도권을 잡고 더 말을 많이 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물론 명분은 어색한 침묵을 깨고 내가 알고 경험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한번 잃은 침묵은 더욱더 멀어져 갔다. 어머니의 연세가 많아지면서 점점 귀가 어두워지셨다. 그로 인해 평소 목소리의 두 세배는 더 크게 말해야 서로 소통이 되었다. 홀로 계시는 어머니에게 효도라도 할 마음으로 한 나절 함께 있을 때면 얘기하느라고 목이 아플 정도였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는 내가 지른 소리의 메아리가 내 몸 안에 울려오기도 했다. 말이 많은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이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듯 말하는 내가 낯설었다. 이것은 내가 아닌데, 조용한 나, 침묵을 좋아하던 나는 어디 가 버리고 이렇게 수다스럽고 시끌벅적한 내가 여기 있단 말인가?

아내의 잔소리가 잦아졌다.

“당신, 말을 좀 적게 하세요. 남보고 말이 많다 하면서도 당신이 말을 더 많이 하네요. 그러면 꼰대 취급받습니다” 아니 아내는 내가 말이 많은 것은 그들을 돕기 위한 것임을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거기까지는 참을 만했다. 그러나 “당신, 요즘 왜 그리 목소리가 커졌어요? 좀 조용히 얘기해요”라는 잔소리에는 서러움이 울컥 밀려왔다. 아니 내 목소리가 커진 것은 어머니에게 효도한다고 그런 것이 아닌가? 그것도 몰라주는 아내가 섭섭하기 짝이 없다. 아, 정말 나는 말이 많고 시끄러운 사람이 되어 버렸구나. 그런 내가 정말 낯설고 싫기만 하다.

그런데 코로나 19사태는 잃어버린 침묵을 되찾는 시간이 되었다. 거의 모든 모임이 중지되면서 갑자기 침묵이 찾아왔다. 그 침묵은 참으로 묵직하여 어색한 침묵을 용납하지 않는 목사라 하더라도 어찌해 볼 수 없었다. 심지어 말 많고 시끄러운 목사를 용납하지 않고 침묵하기를 강요했다. 그렇게 조용히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시끄러운 내가 잠잠해지자 서서히 내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아, 그래. 이게 나인데. 코르나 19 덕분에 나와 반가운 재회를 했다. 그 만남을 더욱 즐겨 볼 참이다. 그래도 코르나 19는 빨리 잠잠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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