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빼’에서 시작한 무한 상상…보나갤러리, 김현희 개인전
‘몸빼’에서 시작한 무한 상상…보나갤러리, 김현희 개인전
  • 황인옥
  • 승인 2020.09.07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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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의 선·색·패턴 등 발견
일바지의 구상성 해체·재구성
원형과 전혀 다른 이미지 생산
김현희작
김현희 작 ‘닮다르다’

‘몸빼바지’는 한국인 특유의 일바지다. 신축성 있는 소재와 품이 넓은 풍성한 여유로움으로 시골 아낙네들의 일옷으로는 그야말로 넘사벽 패션이지만 특유의 무늬와 강렬한 색상, 멋보다 실용성에 맞춰진 디자인 등에서 촌스러움을 자랑한다. 이 묘한 대척점에서 ‘몸빼바지’는 여전히 일옷으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작가 김현희는 일명 ‘몸빼바지’를 작업의 소재로 채택하며 ‘싼티 일바지’의 품격있는 변신을 주도한다. ‘몸빼바지’를 작업의 소재로 선택한 것은 유년시절의 기억과 맞물린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추억하며 할머니하면 떠오르던 ‘몸빼바지’를 그리기 시작했다. “‘몸빼바지’에서 한국화의 선과 민화의 색을 발견했고, 회화나 판화 등의 서양적인 표현법으로 표현하고자 했어요.”

‘몸빼바지’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라는 설명을 곁들이지 않으면 화폭에서 ‘몸빼바지’의 실체는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색과 선 등의 요소들로 다양하게 변주가 진행됐기 때문.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색인데 이는 작가의 남다는 감각의 결과다. 그녀는 대상을 감각할 때 형상 이전으로 색으로 먼저 감각한다.

색에 대한 예민한 감각의 촉에 대한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할머니가 있다. 색채감각이 뛰어났던 할머니에게서 어머니에게로, 그리고 작가 자신에게로 유산처럼 대물림된 결과였던 것. “어떤 사람은 감정 상태를 선이나 형태로 드러내기도 하지만 저는 색으로 드러나는 것 같아요.”

‘몸빼바지’는 형태나 무늬, 색채 등이 해체되거나 재구성되는 과정을 거치며 화폭에서 존재감을 확장해간다. ‘몸빼바지’의 리듬을 타는 변주가 그야말로 끝간 데를 모를 정도로 다양하게 시도된다. 어떤 경우에는 패턴이나 색만 독립시켜 개별성을 부여하기도 한다.이는 곧 구상에서 비구상으로의 변화를 의미했다.

작가는 학부에서 동양화를,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초기에는 기억 속 시골 풍경을 구상으로 표현하다, 이후 ‘몸빼바지’라는 사물로 대상을 구체화하고, 구상에서 비구상으로 변화했다.

이번 작품제목과 전시제목이 ‘닮다르다’다. 닮음과 다름을 주제로 한 제목이다. 무늬나 색채적인 측면에서 원초적인 본능에 가깝게 표현된 ‘몸빼바지’의 기본 뼈대는 유지한다는 점에서 ‘닮음’을 언급했고,다양한 변형과 해체, 그리고 재구성이라는 작가적인 해석에서 ‘다름’이 읽힌다.

“‘몸빼바지’의 원초적인 형태나 색을 적극을 수용했다는 점에서 닮아있고, 제 나름의 해석으로 새로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열망적인 측면에서는 다르다고 할 수 있어요.”

초기 ‘몸빼바지’는 과거 기억 속 감정에 의지했다면 현재의 ‘몸빼바지’는 작가 자신의 현재 감정에 몰입된다. 과거에서 현재로의 시점의 이동이며, ‘몸빼바지’의 변주는 더욱 드러마틱해 졌다. 예컨대 선에 갇혀있던 색에 자유를 부여하며 선과 색을 분리하기도 하고, 색을 버리고 선을 쓰기도 하는 식이다. 어떤 경우에는 선을 버리고 색만 바라보기도 한다. 이같은 자유로운 변주 이면에 변화무쌍한 현재의 삶이 자리한다.

특히 선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선과 색을 분리해 선이 떨어져 나가자 구속하던 틀에서 해방된 색의 존재감이 드러난다. 선에서 벗어난 색의 무한자유다. “색이 선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다고 보았어요. 그래서 화면을 분리하고 색과 선이 만날 수 없게 했죠.”

작가가 경계를 언급했다. “과거와 현재, 구상과 비구상의 경계, 판화와 회화의 경계를 기꺼운 마음으로 넘나들고 있다”는 의미였다. 이 경계는 ‘흔들리는 자아’ 상태다. 비록 여전히 혼란스러운 감정이 없지 않지만 그 혼란은 진화의 과정에서 딛고 넘어가야 할 과제로 인식하며 기꺼이 즐기는 쪽을 택하고 있다.

“현재의 내 모습이 위태로운 것은 사실이에요. 이것 같은가 싶으면 저것이고, 저것이다 싶다가도 이것인가 의심이 들기도 하죠. 그러나 경계에서 흔들리는 모습 또한 저 자신이라고 받아들이면 편안해지는 것 같아요.”

최근 시작한 보나갤러리 대봉점(대구 중구 동덕로8길) 개인전에 작품 30여점을 걸었다. 대구문화재단 개인예술가창작지원 일환으로 마련된 전시다. 작가가 판화 기법으로 제작한 이번 전시작을 ‘판화적 회화’라고 언급했다. 에디션 없이 기법적으로만 접근한 결과라는 의미였다. 그녀에게 판화는 매체의 차이만 있을 뿐 회화와 동일하게 인식된다.

“판화라는 매체가 나와 잘 맞아 회화와 판화를 병행할 뿐입니다. 같은 대상을 다양한 감정으로 담아내고 다시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판화의 장점을 활용하는 거죠.”

유년시절의 그리운 기억을 작품 속 주된 감성으로 도입했다. 그녀 인생에서 가장 순수하고 따뜻했던 기억들이기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쉼이자 치유였다. 작가의 그리움은 곧 누군가의 행복한 기억으로 확장된다. 작가는 이 감정을 현재로 가져와서 관람자와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 바람으로 오늘도 캔버스 앞에 앉는다.

보나갤러리 1층에서 ‘그 곳의 풍경’을, 2층에서 ‘시골집 사랑방의 작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김현희 개인전은 14일까지. 010-9181-9689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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