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닮은 홍희
엄마를 닮은 홍희
  • 승인 2020.09.0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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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학교는 홍희에게 넓은 놀이터이다. 예쁜 선생님과, 친구들과 공부하는 시간도 홍희에겐 놀이와 같다. 넓은 운동장, 큰 느티나무, 놀이기구, 목이 마르면 마실 수 있는 수도, 빠알간 맨드라미와 분홍꽃잎의 과꽃. 학교는 새로운 세상이다. 새로운 세상의 가운데에 선생님이 있고, 홍희가 있다. 교실은 새로운 집이다. 새로운 집의 엄마가 선생님이다.

홍희는 학교에서 자기가 진짜 공주인 것 같다. 친구들이 조그맣고 귀여운 홍희를 둘러싸고 머리를 빗기고 묶어주었다. 친구들이 홍희의 긴 머리채를 양쪽에서 잡고 묶어준다고 난리를 칠 때면 홍희는 공주마냥 우아한 미소가 가슴으로 흘러든다.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저절로 홍희의 기분을 구름위에 떠 있는 것처럼 만드는 것이다.

집에 가도 엄마보다 할머니가 엄마같다. 할머니의 손이 쭈글하지만, 홍희에게 내미는 손은 따사롭다. 할머니에게만 주는 하얀 쌀밥을 다 먹지 않고 홍희가 먹도록 남겨준다. 동글한 얼굴에 주름이 졌고 흰머리에 비녀를 꽂아 옛날 한복입는 조선시대 여자 같은 할머니는 늘 따뜻했다.

홍희네 집에는 동네어른들이 자주, 많이 온다. 겨울이면 아랫방에 모여, 여름이면 마당 마루에 모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가 심심하게 놀고 있는 홍희를 보고 놀린다.
"니, 너 엄마 안 보고 싶나? 여기 있는 엄마 니 엄마 아니다. 너 안계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 너 엄마 안계 장터에서 호떡 굽는다. 너 엄마한테 갈래?"
한 명이 이런 말을 하면, 그 옆에 있는 사람도 덩달아 한 마디 거든다.
"그래, 내 며칠전에도 안계장에 갔는데 너 엄마가 니 잘 있냐고 묻더라. 니 보고 싶어 하더라."
진지한 표정을 짓느라 인상을 구기면서, 한 편으로는 차마 나오는 웃음을 어쩌지 못해 실실 입가로 새어나온다. 홍희랑 엄마는 혈액형도 다르고 생김새도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는데 어른들이 진짜 엄마가 아니란다. 홍희는 그 말이 참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 말을 같이 듣고 있는 엄마는 뚝한 표정만 짓고 있을뿐 '기다', '아니다' 말이 없다. 그렇다는 말인지 그렇지 않다는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어른들은 몇 번을 그러더니 홍희가 가만히 있자 말을 닫는다. 아니라는 반박을 하지 못하고, 의문만 가슴에 담은 채 홍희는 잠을 자러 간다. 잠자리에 누워 있는데 잠이 오질 않는다. 꿈은 아닌데 꿈을 꾼다. 안계장을 버스를 타고 간다. 버스에서 내리니 콧등에 점이 커다란 퉁퉁한 아줌마가 홍희를 반긴다. 야가 누고 홍희 아이가. 이마이 컷나. 이리 온나. 내 니 보고 싶었다. 니는 내 안 보고 싶었나
누군지도 모르는 아줌마가 보고 싶을 게 뭐람. 아줌마가 누구냐고 묻고 싶었지만 아줌마의 대답이 내 니 엄마 아이가. 동네어른들이 이야기 안 하더나. 내가 니 얘기 많이 했는데. 내가 니를 왜 버›노하면...등의 이야기들을 할까봐 겁이 나 묻지를 못하겠다. 이끄는 팔을 거부하지도 못한 채 팔을 붙잡혀 질질 끌려간다. 뒤를 돌아봐도 끌려가는 홍희를 붙잡는 사람이 없다.

홍희는 와락 겁이 나서 꿈을 깬다. 마루에 아직 어른들이 두런거리는 소리가 나고 엄마,아버지도 같이 있는걸 보고 다시 잠이 든다. 꿈속에서 홍희는 날아다닌다. 못속에서 이무기같은 괴물이 긴 팔을 뻗어 날아다니는 홍희를 붙잡으려고 한다. 홍희는 잡히지 않으려고 엉덩이를 앞뒤로 밀어 속력을 낸다. 못수면에 닿을 듯 말 듯 하다가 쓩 하고 위로 치솟는다. 너무 높이 올라가니 집이 까만점으로 보인다. 다시 내려가려고 방향을 틀고 엉덩이를 아래로 향하니 이번에는 길을 잘못 잡아 못둑아래로 미끄러지듯 내려간다. 가속도가 붙어 점점 빠르게 내려가 곤두박질칠 것 같을 때 엄마가 깨운다.
"홍희야, 일나라. 얼른 밥 묵고 학교 가라. 늦겠다."

나이가 들면서 엄마를 닮아가고 있다. 엄마처럼 짧은 머리를 하니 홍희속에 엄마가 있다. 분명 홍희 엄마가 맞다. 어른들은 왜 놀렸을까? 장난으로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는 맞아 죽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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