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禿盡千毫>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禿盡千毫>
  • 승인 2020.09.10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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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대구예임회 회장˙전 중리초등학교 교장
며칠 전 대구수목원에 갔다. 방지원도(方池圓島)의 수목정자에 가는 길에는 커다란 ‘플라타너스(양버즘나무)’가 서 있었다. 문득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플라타너스/너의 미래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있다./……/플라타너스/나는 너를 지켜 오직 이웃이 되고 싶을 뿐/그 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라는 김현승의 시가 생각났다.

그 옆 화장실 안에는 많은 위인들의 명언들이 붙어 있었다. ‘모든 죄악의 기본은 조바심과 게으름이다.(프란츠 카프카)’라는 명구가 가슴에 와 닿았다.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 ‘성(城)’은 초임교사 시절 ‘동화문고’판이어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무턱대고 읽었었다. 주인공 K는 성(城)에 측량기사로 초대받아서 들어가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다. ‘K는 이 세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너무나도 협소하고 비애, 약점, 질환 등의 망상이 한꺼번에 일어나서 K를 위로해줄 대상은 전혀 없는 것이다.’

‘성(城)’의 작품에서 ‘모든 죄악의 기본은 조바심과 게으름이다.’라는 구절을 찾지 못했다. ‘조바심’은 어원이 ‘조(좁쌀)를 바심한다.’에서 온듯하다. ‘바심’은 ‘곡식의 낟알을 떨어서 거두는 일’이다. 좁쌀은 곡식 중에서 크기도 작지만 바심이 힘들다. 도리깨질을 힘차게 여러 번 해야 낟알이 떨어진다. 그래서 어떤 일을 이루고자 할 때는 불안한 마음이 생기고 급한 마음이 생긴다고 한다.

프란츠 카프카는 스물한 살에 친구 오스카 폴락에게 편지를 보낸다. ‘책을 읽을 때는 끊임없이 생각을 깨물고, 정곡을 찌르는 것만 읽어야 돼. 읽는 책이 우리의 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쳐서 깨우침을 줘야 해. 폴락아, 네가 말한 대로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일까? 아니지 우리는 책이 없더라도 행복할 수 있어. 그것이 꼭 필요하다면 우리는 스스로 책을 쓸 수도 있으니까.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불행 같은, 지극히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 같은, 사회에서 버림받아 깊은 숲속으로 추방당하는 것 같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 같은, 그런 책이 필요해. 우리들의 마음은 언제나 얼어붙은 바다잖아. 그 바다의 얼음을 깨기 위해 책은 날카로운 도끼여야 해. 나는 그렇게 믿는다.’

책 읽기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 때 버려야 할 자세가 바로 ‘조바심’과 ‘게으름’이리라.

추사 김정희는 벗인 권돈인에게 ‘내가 말로 다 하기는 어렵지만, 칠십 년 동안 벼루 10개를 구멍 냈고, 독진천호(禿盡千毫)했네.’라고 편지를 보냈다. ‘독진천호(禿盡千毫)’는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돌로 만든 벼루를 얼마나 먹으로 갈았으면 10개가 뚫렸을까? 연필을 일천 자루 닳도록 써서 몽당연필이 되도록 쓰기도 어려운데,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이 되도록 썼다고 하니 참으로 대단한 노력파였음을 알 수 있다. 놀랍지 않은가?

추사는 제자 조면호에게 ‘팔뚝 밑에 309개의 글감이 들어 있지 않으면, 글을 짓거나 비문을 예서(隸書)로 하루아침 사이에 아주 쉽게 써내기 어렵다.’고 편지를 보냈다. 추사는 평소 ‘추지대엽(枝大葉)’을 생각했다. 추지대엽은 ‘거친 가지와 커다란 잎’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글을 지을 때에는 작은 것에 얽매이지 말고 느긋하면서도 대범하게 붓을 놀리라는 의미이다. 어쩌면 ‘조바심’과 ‘게으름’을 경계한 말일 듯하다.

아이들이 배우는 ‘동몽수지(童蒙須知)’에는 독서와 글자쓰기가 있다. 다섯 가지의 불가(不可)가 있다. 반드시 ‘한 글자라도 틀리지 말고, 빼지도 말고, 보태지도 말고, 뒤집지도 말며, 억지로 끌어다가 암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독서엔 심도(心到), 안도(眼到), 구도(口到)가 있다. 마음을 집중하지 못하면, 눈이 자세히 보지 못하고, 마음과 눈이 전일하지 못하면 입은 건성으로 읽게 된다. 삼도(三到) 중에는 심도가 가장 중요하다.

‘조바심’은, 우왕좌왕하며 아무것도 못하고 딴 짓을 한다. 설왕설래하며 발전이 없고 핑계가 늘어난다. 횡설수설하며 시야가 좁아지고 인간관계가 어려워진다. 좌고우면하며 눈치를 보고 망상하길 좋아한다. ‘게으름’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어쩌면 모든 죄악의 기본일 런지도 모른다. 요즘 정치가 그렇다.

추사체를 만든 김정희는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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