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너른 품에 예술 재료가 가득했다…갤러리 오모크, 박시현 개인전
지리산 너른 품에 예술 재료가 가득했다…갤러리 오모크, 박시현 개인전
  • 황인옥
  • 승인 2020.09.1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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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재료 혼합 추상화가
24년간 중국 생활 접고 귀국
버려진 종이와 한지 콜라주
캔버스 대신 나무에 드로잉
여성 향한 불평등 주로 다뤄
“재료보다 표현법이 중요”
박시현작-Confession
박시현 작 ’confession’

적어도 작가 박시현에게 코로나 19는 야만으로 흐르지만은 않았다. 코로나 19의 세계적 확산으로 어쩔 수 없이 입국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24년간 단절되었던 고국과의 인연을 새롭게 이어주는 계기가 되었고, 고국의 품에 안긴 그녀의 예술은 증폭 일로에 있다. 중국에서의 아웃사이더 박시현은 사라지고 정서적으로 예술적으로 충만한 박시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박시현 개인전이 최근에 갤러리 오모크에서 개막했다. 20대 중반에 부산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고 24년 만에 국내에서 여는 작가의 두 번째 전시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설치작품은 조국과의 단절된 24년의 시간을 이어주는 매개처럼 다가온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하얀 웨딩드레스 치마에 푸른 돌과 잡초의 뿌리를 매달아 놓은 작품이다. 푸른돌은 차마 이땅에서 뿌리 내리지 못한 슬픈 여인들에 대한 서사적 표현이며, 잡초의 뿌리는 불평등한 시대적 속박에 억압 받았던 우리네 어머니들에 대한 위로의 상징물이다.

“어린시절 어머니 세대로부터 느꼈고, 지금까지고 이어지고 있는 여성들의 애환을 표현했어요.”

‘자유’는 인간으로서, 특히 여성으로서 작가가 지향하는 가치였다. 20대 청년 시절 인도 여행길에 오른 것도 영혼의 자유를 갈구했던 이유가 컸다. 그녀가 인식하기에 한국사회는 여성에게 강요하는 유·무형의 잣대들이 여전히 존재했고, 그녀는 이 잣대들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더 넓은 세상으로의 여행을 떠났다. 작가에게 여행은 탈출구였고, 구원처였던 것. 20대 후반 2달간의 인도 여행을 다녀 온 후 확장한 인식의 지평을 작업에 담아냈고, 부산에서 첫 개인전을 열 수 있었다.

그로부터 24년 후인 올해, 코로나 19의 세계적 확산으로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야 하는 상황에 되었다. 갑자기 찾아든 고국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던 때에 우연한 기회로 지인의 소개를 받아 지리산 청학골에 한 달 정도 머무르는 인연을 갖게 되었다. 우연으로부터 시작된 작업이었지만 작품은 필연인것처럼 분출했다. 중국에서 아웃사이드 속의 아웃사이드로 살아온 그녀의 고달팠던 상처가 지리산의 너른 품에서 녹아내리면서 작업이 활화산처럼 분출하기 시작한 것. 
 

임시로 마련된 공간에 제대로 된 작업실이 있을리 만무했다. 하지만 이동식 작업장이라는 한계가 작가의 열정을 꺾지는 못했다. 캔버스 작업이 여의치 않자 주변에서 보이는 버려지고 찢겨진 종이나 나무판을 수집해 캔버스 대신 활용하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결의 작업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예기치 않은 작업의 증폭이 시작된 것.

“중국에서 한지에 동양화의 발묵을 표현했어요. 동서양이 혼재된 추상회화였죠. 고국에 와서 작업 환경에 제약을 받으면서 색과 선이라는 정돈된 추상에서 보자 자유분방한 추상으로 증폭되었어요.”

24년 전 중국으로 떠날 때는 여행이 목적이었다. 아시아 작가로서 아시아의 뿌리를 보겠다는 목표로 중국 여행길에 올랐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게 되면서 국내에 돌아오고 얼마 후 다시 중국행을 택했다. 중국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고 세 아이의 엄마로 살면서도 몇 차례의 개인전을 열 정도로 작업에 대한 끈은 놓지 않고 살았다. 그러나 남편의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남편의 사업체를 이끌게 되면서 10여년간 작업을 접고 사업가로 살았다.

천신만고 끝에 사업이 안정될 무렵, 예술에 대한 갈증을 더 이상 묻어둘 수 없게 될 즈음에 프랑스 파리 여행길에 올랐다. 파리에서 미술관 투어를 하면서 반드시 “예술가의 삶을 살겠노”라 다짐하고 상하이 와이틴 강자락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이때 상하이 추상작가들과 긴밀하게 교류하며 다시 작업이 시작되었다. “전업 작가로 뛰어든지 5년 정도 되었어요.”

중국에서 발표한 작품은 추상이었다. 색을 중첩하고 자유로운 선들로 색과 선의 추상을 표현했다. 이러한 영향은 중국 생활 초기에 3여년을 배운 중국화의 영향이 컸다. 서양화로 표현한 색면추상이었지만 선(線)적 요소가 강했고, 캔버스에 서양물감으로 그렸지만 한지와 먹의 발묵(潑墨) 효과가 스며있었다.

“유화로 그렸지만 기름을 많이 쓰고 먹(墨)을 혼용하기도 했어요. 번짐 현상을 위해 붓으로 그릴 때 손의 떨림을 주는 등 남다른 기법을 활용하기도 했죠.”

이번 전시에 동서양이 혼재된 특유의 추상 작품 30여점이 걸렸다. 한국에 머무르는 3개월여 기간 동안 작업한 작품들이다. 특히 한지 작업이 다수 포함됐다. 한지의 사용은 상하이 춘미술관에서 열린 현대수묵화전에 참여하면서 시도됐다. 20여년 전에 중국화를 배우면서 사서 묵혀두었던 한지를 다시 꺼낸 것.

그녀의 한지 작업은 그야말로 자유분방하다. 아크릴과 먹을 동시에 쓰고 그 위에 바느질을 시도하는 등 한지가 갖는 선입견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국내에 들어와서 한지 작업은 더욱 드라마틱해졌다. 버려진 종이나 나무판을 수집해 한지와 함께 사용하면서 종교적 근원과 기독교적 성찰이라는 숭고한 가치까지 더해졌다.

작가로 본격적인 국내 활동을 알리는 이번 갤러리 오모크 개인전은 30일까지. 054-971-8855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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