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실에만 계시지
교장실에만 계시지
  • 여인호
  • 승인 2020.09.1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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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선생님, 안 더우니껴?” “예, 저도 더운데요.”

“더운데 뭐 할라꼬 돌아다니는교. 교장실에만 가만히 계시지.”

“교장도 좀 다녀야지요. 시설도 보고 아이들도 보고.”

“교장 선생님이 이건데(엄지척) 가만 계시도 되잖는교.”

“어르신 요즘은 교장이 이게(엄지척) 아니고 머슴이라요.”

“교장 선생님이 머심(머슴)은 무슨 머심(머슴)이라요.”

“아니에요. 머슴 중에서도 상머슴입니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인 유월의 어느 날 아침에 등굣길 아이맞이를 마치고 북구청에서 지원하는 시니어 봉사단 어르신과 주고받은 내용입니다. 잡초제거, 화단관리, 빗자루질 등을 하시는 분들입니다. 지난 해에도 하신 분이라 낯이 익습니다. 저를 걱정해서 해주신 말입니다. 참 고마운 일입니다.

유월에 학년군별, 직군별로 소통과 공감의 날을 여섯 번을 했습니다. 교직원 두어 분이 어르신과 같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너무 부지런해서 탈이라고 합니다. 너무 많이 돌아다닌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제발 건강 생각하라는 말씀을 덧붙입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영호는 이런 답을 드렸습니다. “제가 하는 일에 너무 걱정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마음이 가고, 제 몸이 따라주기 때문에 합니다. 혹 교장이 잘 보이지 않거든 어디 탈이 났는가 보다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웃으면서 말했지만 영호의 진심입니다.

마지막 소통ㆍ공감의 시간을 마칠 무렵에 선생님 한 분이 이런 질문을 주셨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이런저런 고민이 많으실 텐데 전혀 내색을 하지 않으시는 걸 보면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교장 선생님 하실 말씀은…….”영호는 이렇게 답을 했습니다.

“화가 날 때도 있고, 답답할 때도 있습니다. 초임 교사 시절의 성질이면 참기 어려운 일도 많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면 그리 화를 낼 일도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말과 글로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러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시끄러운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 어떤 어려운 일이 닥쳐도 당황하기 않고 해결할 수 있습니다. 권위적인 지시에 의한 일사분란과 자발적인 일사분란은 천양지차입니다. 일이 일을 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일이나 사람이 합니다. 어느 조직이나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은 다양하겠지요. 모든 일을 내 입장에서만 생각해서는 소통과 공감이 될 수가 없습니다…”

초중등교육법 제20조에 “교장은 교무를 통할(統轄)하고, 소속 교직원을 지도,감독하며, 학생을 교육한다.”라는 교장의 임무가 있습니다. 통할은 ‘모두 거느려 다스림’이라는 뜻입니다. 교장이 통할, 지도, 감독을 사전적인 의미로만 한정하고 권한을 행사한다면 교직원과 많은 갈등이 생기는 것은 명약관화입니다.

그래서 영호는 제20조를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합니다. “교장은 교무를 잘 이해하며, 소속 교직원과 소통,공감하면서, 학생을 교육한다.” 교장의 역할은 교육법의 문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교육철학(수업철학)을 정립하고 실천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교육의 답은 학교에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교장실이 아니라 아이들이 있는 교실입니다. 그래서 교장실은 교실과 같은 역할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정기적이면 좋겠지만 가끔씩이라도 아이들과 직접 수업을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제 등굣길 아이맞이를 위해 교장실을 나설 시간입니다.


대구교동초교장-김영호


김영호 대구교대부설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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