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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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9.1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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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란 시인

봄비는 그치고 봄은 아득한데
철없이 너는 누구의 무심한 마음을 긁어대는 거니

자라기를 멈추지 않는 몸의 말단에서
비애는 출발하고,
아니 아니 거기 거기 바로 거기

아무리 해도 닿지 않는 곳이 있어
가려움은 미답의 오지에서 기다리는데

무슨 색을 발라야 더 쓸모없는 무기가 될까
몸이 가진 이 어여쁜 도구는
자라고 자라고 또 자라고,

자르고 자르고 또 자르고
주기적으로 잘라주지 않으면
찢어지고 갈라지는 화사한 생각들, 멈추지 않고

봄비는 그치고 봄은 아득한데

기어코 너는 누구의 가슴을 후벼 파려는 거니

독하고 모질기도 해라 어떤 사나운 말로
누구의 가슴도 후벼 팔 수 없어
제 혀를 하나하나 뽑아버리는 벚나무
제 손톱을 통째로 뽑아버리는 벚나무

톡톡톡 진다 봄에서 뽑혀 나온 꽃의 혀들
톡톡톡 진다 꽃에서 뽑혀 나온 봄의 손톱들

◇ 최정란= 경북상주 출생, 계명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계명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여우장갑』 『입술거울』 『사슴목발애인』 『장미키스』,<요산창작기금> <부산문화재단창작기금> 2016년 제7회 <시산맥작품상> 2017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해설> 자연스럽다는 것은 삶이나 존재를 한계 짓거나 단정 짓지 않고, 새로운 변화에 가능성을 열어 놓는 것이다. "사람들이 '나'라고 여기는 대상은 마음의 집착에 불과하고 아무런 실체가 없는 '무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나'는 우리가 구하고자 했던 '아(我)'이기보다는 어쩌면 순간순간에 집착하고 변화무쌍한 존재이던 바로 그 무상한 '비아(非我)'가 '아'의 실체일 수 있다. 그럼에도 '나'란, 영원한 숙제이고 수수께끼이며 생의 가장 큰 원인이자 동력이다.

세상의 이치는 극으로 통한다. 채움은 비움에서 오고 선은 악에서 생겨났고 생은 소멸로 영원해진다. 봄이 봄비와 구분되는 개념이라면 '아(我)'는 '비아(非我)'에서 찾아질 수 있다. 어떻게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있을까. 무엇이 미답의 오지이며 또한 무엇이 비애가 아닌 걸까. 적어도 무기(武器)가 되는 요소들을 전부 빼낼 수 있다면 무심한 마음만 남게 되는 것처럼, 사람도 자기가 아닌 요소들을 빼내어 볼 수만 있다면 본래의 자기와 마주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은 철저히 혼자인 존재이다. 자신의 삶을 외부와의 관계에 얽으려는 태도는 고독과 불안을 감추려는 은폐에 가깝다. 홀로 서길 꺼려하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소망하던 자유가 나오지 않음에도 맨 몸으로 자기 앞에 설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하여, 자신과의 대면을 미룬 채 무리 속에 숨거나 무리의 흐름만 좇아간다. 이렇듯 무지는 사람의 정신세계를 메마르게 한다. 항상 해답은 외부에 있지 않다.

불순함이 득세하는 세상이 사람을 얼마나 가치 없는 존재로 전락시키는지를 보여준다면, 자연스러운 변화를 구하는 세상에선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보여줄 수 있다. 살아 있는 한 이 세상은 피할 수 없는 곳, 꽃이 피는 시간만큼은 전체가 아닌 나 홀로의 가치로, 내가 오롯이 세상의 중심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니체의 말대로 우리는 우리에게 필연적으로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 왜곡의 시간들이 오히려 변화를 향한 커다란 지렛대가 될 수 있다.

-성군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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