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시내에서 산다는 것
[문화칼럼] 시내에서 산다는 것
  • 승인 2020.09.1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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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대구문화예술회관장
같은 곳을 두고 지역에 따라 호칭이 다른 것이 있다. 서울은 신사 사거리, 목동 사거리. 반면 대구에서는 범어네거리, 죽전네거리라고 한다. 대구, 경산, 구미, 대전 등에서는 네거리라고 하는 반면 그 외의 지방 대부분은 사거리로 부른다고 한다. 물론 대구에서도 극히 일부구역은 사거리라고 부른다. 대부분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한 때 이를 두고 사거리가 조금 더 큰 느낌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었으나 그것보다는 관용에 의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또 하나 서울과 다른 표현이 있다. 우리는 약속을 할 때 “시내에서 보자”이렇게 말하면 어딘지 다들 안다. 반면 서울에서 시내라고 하면 종로? 강남? 어딘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가 시내에서… 운운하면 서울 사람은 좀 생소해 하며 그 표현을 재미있어 한다. 우리가 말하는 시내란 동성로, 한일극장, 대백 등을 아우르는 공간을 말한다. 지금은 그 범위가 조금 넓어져 방천시장, 동인동, 삼덕동 그리고 북성로까지 아우른다고 본다. 아무튼 우리가 말하는 시내는 골목의 재발견에 의해 지금도 여전히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는 지역이다.

과거의 ‘시내’는 특별한 날 친구들과의 약속에 설레며 찾던 곳. 음악 감상실을 비롯하여 영화관 그리고 싸고 맛난 음식과 한잔 술을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이 가득한 곳이었다. ‘시내’라는 단어는 단순한 어떤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인생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는 추억의 공간이다. 타지에 계시는 어르신 중 대구에 오면 따로국밥, 향촌동 차돌박이를 늘 찾는 분이 있다. “옛날엔 이게 최고였다. 어쩌다 용돈이 넉넉하면, 그때야 먹을 수 있던 음식이었다.” 그래서 그분에게는 식사가 아니라 추억을 소환하는 의식 같아 보인다.

나는 그동안 주로 외곽지역에서 살았다. 최근 어쩌다 보니 시내에서 살게 되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시내 방면에서 살고 싶어 집을 옮기게 된 것이다. 그런데 살던 집은 약속 날짜에 맞춰 비켜 줘야했고 들어갈 집은 수리 등의 일정이 더 필요해 할 수없이 에어비앤비를 통하여 인근의 작은 집에서 3주 정도 지내게 되었다. 시내 중심가에 있다 보니 어디든 다 가깝게 이동할 수 있다. 우선 출 퇴근길이 가까워졌다는 것이 가장 좋다. 그리고 평소 가보고 싶었으나 주차 등의 문제로 자주 갈 수 없던 곳에 대한 접근성이 아주 좋아졌다. 인근에 맛 집이 많다는 것도 아주 즐거운 일이다.

칠성시장은 주차시설이 잘 되어 있지만 왠지 차를 가지고 가기에는 살짝 부담스럽다. 그래서 그동안 운동 삼아 자전저를 타거나 걷던 중 지나는 길에 들리던 곳이었다. 지금은 걸어서 10분 남짓이면 갈 수 있다. 저녁 찬거리가 마땅찮으면 이곳에 한번 가볼만하다. 싸고 질 좋은 먹거리가 가득하다. 단 같은 품목이라도 가게에 따라 가격대는 좀 차이가 난다. 거기에는 어떤 법칙이 있음을 한두 번만 가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것만 알게 되면 아주 맘 편히 메뉴를 고르면 된다. 천천히 둘러보다 입맛 당기는 것으로 골라 에코백에 담아 울러 메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인근에 찜 갈비 골목도 있다. 대구 대표 음식답게 외지에서도 많이 찾는 곳이다. 가능하면 육류는 삼가고 싶지만, 아무튼 맛있는 음식이다. 술을 부르는 음식이라는 게 함정. 이렇게 매콤 달달한 음식을 소주 없이 먹는 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하고 있는 시절이라 저녁 9시면 영업을 중단하기에 거리가 적막하다.

저녁 식사 후 운동 삼아 길을 나서면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타지에서 관광차 찾는 근대골목 투어길이 인근에 있다 보니 걷는 코스를 다양하게 잡을 수 있다. 신천변은 잘 찾지 않는다. 단조롭기 때문이다. 근대골목 코스를 따라 걷거나 시내 뒷골목을 누비며 걸으면 볼거리가 가득하다. 동부교회 인근 카페는 참 예쁘다. 그 수가 너무 많아 걱정되지만, 쓸쓸한 밤거리 보다는 아름다운 것이 사실이다. 가게에 따라, 구역에 따라 손님의 다소가 확연히 차이난다. 다만 지금 시절에 다닥다닥 모여앉아 맥주잔을 기울이는 청춘들을 보면 우려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이사를 한 번에 하지 못하고 몇 주씩 기다렸다가 마무리 한다는 것이 스트레스를 받는 일임은 분명하다. 게다가 집을 수리 한다는 것 또한 대단한 수련(?)을 하게 되는 일이다. 하지만 스트레스 사이사이에 접하는 이런 작은 즐거움은 그 모든 것을 상쇄시키고도 남는 것 같다. 앞으로 살아갈 시내생활(?) 연습 삼아 지낸다고 생각하니 그런대로 낭만도 있다. 유학시절을 포함하여 거주지를 꽤 옮겨 다녔다. 그 모든 곳이 결이 다른, 나름의 문화가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이제는 대구의 ‘시내에서 산다는 것’에 대하여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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