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소풍
  • 승인 2020.09.1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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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 소장
며칠 전 92세의 나이로 나의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의 행복한 소풍을 끝 마치셨다. 길었다면 길었고, 짧았다면 짧았을 92년의 인생. 아버지께서는 참으로 유쾌하게 사셨다. 늘 웃으셨고 힘든 순간에도 아버지만의 독특한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어린아이 같은 유쾌한 웃음으로 잘 이겨내셨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소풍을 끝낸 것이 아니라 어찌 보면 또 다른 곳으로 소풍을 떠나신 지도 모르겠다.

평생을 소년으로 살았던 故 천상병 시인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소풍’에 비유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천 시인은 이 세상을 영원히 머물러 살 수 있는 곳이라 말하지 않고, 따뜻한 봄날 산과 들로 소풍 나온 것으로 표현했다. 그의 표현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세상도 잠시 잠깐 놀다가는 ‘소풍’이라고 한다면 삶의 태도를 조금 유연하게 바꿀 필요가 있겠다. 즉, 남의 눈치는 좀 덜 보고, 한판 신명 나게 잘 놀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 소풍 갔던 기억을 떠올려보니 소풍 가기 며칠 전부터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 소풍 전날 밤에는 잠까지 설쳐가면서 소풍날을 기다렸던 기억과, 입고 갈 옷도 머리맡에 따로 준비해 두고 친구들과 함께 먹을 맛있는 과자와 사이다도 한 병 가방에 꼭 꼭 챙겨 두었었다. 마침내 소풍날이 되면 그렇게 아침잠이 많던 아이들이 누가 깨우지 않아도 벌떡 일어나는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 생기기도 했었다. 그렇게 잠에서 깨어 졸린 눈 비비며 엄마 곁으로 모여 앉는다. 엄마가 싸고 있는 김밥의 꼬투리라도 하나 얻어먹으려고 제비 새끼 마냥 동생과 엄마 옆에 찰싹 붙어 순서 정해가며 ‘시작 꼬투리는 내 것’, ‘끝에 남는 건 네 것’하며 서로 더 많이 먹으려 실랑이하던 기억 또한 생생하다.

소풍을 가던 장소는 항상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솔밭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솔밭에는 각 학년별, 반별로 자리가 정해지면 인원 확인 후 점심 먹기 전까지 자유시간 이었다.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이 본격적으로 아이들은 솔밭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놀기 시작한다. 말 타기, 비석치기, 술래잡기를 하면서 재미나게 놀았다. 그리고 맛있는 점심시간에는 각자의 도시락 속 김밥을 조금씩 나눠 먹으며 누구 집의 김밥이 더 맛있나 맛보기도 하였다. 점심 식사를 마치면 오후 시간 선생님들이 미리 숨겨둔 보물찾기를 했다. 그 후 장기 자랑까지 끝이 나면 우리들의 소풍은 그제야 끝이 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갈 때쯤에는 입고 온 옷은 이미 얼룩이 가득했었다. 등에 메고 온 가방에는 빈 도시락만 딸랑거렸다. 그렇게 가벼운 걸음으로 선생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갔다. 소풍이 그렇게 끝난 것이다.

소풍은 소풍답게 즐거워야 한다. 그래서 즐겁게 잘 놀아야 한다. 집으로 돌아갈 때는 홀가분히 돌아가야 한다. 그저 앉아서 눈치나 보면서 남들이 노는 것 구경만 해서는 안 된다. 어머니께서 싸주신 도시락이랑 과자도 맛있게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장기자랑 시간에도 ‘쭈뼛쭈뼛’ 하다가 선생님이 집으로 가자 할 때 그때가 되어서야 “선생님~좀 더 놀다 갈래요. 저는 아직 놀지도 못했는데요. 먹을 과자랑 김밥도 그대로란 말이에요. 더 놀다가요. 선생님~” 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삶도 소풍이라 했다. 그래서 잘 놀아야 한다. 가족과 친구들과 아주 재미있고 신명 나게 잘 놀아야 한다. 그리고 난 후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원래 내가 살았던 하늘나라로 다시 돌아가는 날은 “참 아름다웠다” “참 잘 놀았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겠다.

소풍 같은 이 세상, 남들이 노는 거 구경하며 눈치 보고 가만히 앉아 있지도 말고, 마지막 날 아쉬워서 “못 간다.” “시간 더 필요하다” 하지는 말아야겠다. 소풍날 선생님께서 “자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할 때처럼 하늘이 “자~이제 돌아가야지”라고 부를 때는 “네~”하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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