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 진료과 의사가 사라지게 하는 우리의 모습
필수 진료과 의사가 사라지게 하는 우리의 모습
  • 승인 2020.09.20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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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둥
대구시의사회 정보통신 이사·마크원외과 원장


지역 공공의대 설립 등을 골자로 한 의료악법. 가장 ‘과학적’이고 ‘논리적’이어야 하는 의료정책이 ‘정치적’이고 ‘비논리적’인 정치인들 표심용으로 악용됐다는 점은 이제 많은 국민들이 인지했으리라 믿는다. ‘의사들 밥그릇 싸움’, ‘이제 좀 농갈라묵자’ 따위 비아냥거림으로 정책의 근본 문제점을 덮으려는 도처의 헛발질들은 계속되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과정에서 국민들의 공분을 자아냈기에 여당과 보건복지부가 의사협회와 합의문을 문서화하는 정치적 스탠스를 취하게 된 것이 사실이며, 미심쩍으나마 이런 결과는 대한전공의협의회와 전국 의과대학생들의 피눈물 나는 저항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대한민국 의료의 앞날 그 자체인 그들이 그토록 결사적이었던 그때, 정부가 꺼내든 카드는 대화와 협의가 아니라 ‘겁박’이었다. 파업 강행을 시사한 전공의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고 파업에 동참한 이들을 확인하여 고발조치하겠다고 한 것이다. 다시 떠올려 봤자 괜히 마음만 더 상하지만, 최근 의사들, 특히 정부가 말하는 소위 ‘필수, 기피과’ 의사들을 더욱 낙담케 하는 중요한 사건을 접하면서 당시 외과 후배 전공의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내과, 외과, 흉부외과 위주로 잡아가려고 하니 이제 우리 외과는 더더욱 후배님들이 없어지겠습니다, 하하….” 당시 보건복지부가 소위 ‘기피과’ 전공의들을 우선 고발했던 것이다. ‘필수 기피과가 부족하니 공공의대를 설립해서 강제 복역하는 기피과 의사를 늘리겠다’는 쌍팔년도에도 안 통할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랏일 하는 사람들의 진심도 조금 섞였겠거니 생각했던 내 순진함에 치를 떨었던 순간이었다. 애당초 기피과 부족현상을 해결하겠다는 슬로건은 지역 공공의대 설립이라는 정치적 의지 실현을 위한 겉포장이었을 뿐이라는 사실이 증명된 순간이었다.

지금부터 앞서 언급한 최근의 중요한 사건을 말하고자 한다. 며칠 전 두 아이의 엄마이자 수년간 대학병원 교수로 재직하던 내과 교수가 ‘도주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법정에서 구속되었다. 뇌경색을 앓고 있던 82세 환자가 어느 날 복부CT에서 장폐색, 대장암 의심 소견을 보였으나 지속적으로 설사를 하고 있었기에 부분 장폐색을 의심하고 대장암 병변 확진을 위한 대장내시경을 시행하기 위해 관장을 시행하였는데, 이후 장 천공과 그에 따른 합병증으로 결국 사망하였다.

유가족들이 담당 교수와 주치의였던 내과 전공의를 의료과실로 고소하여 2016년도부터 지금까지 소송을 이어왔고, 2020년 9월 10일 1심 재판부는 담당 교수와 전공의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금고 10개월을 선고하고 도주 위험을 이유로 담당교수를 법정 구속하였다. 해당 교수는 대형 대학병원 소화기내과 소속으로 오랜 시간 헌신적으로 환자진료에 힘써 왔으며 가정에서는 두 아이를 사랑으로 보살피던 어머니였다.

해당 사건은 여러 가지 면에서 유무죄를 다툴 여지가 아직 많이 있고 형이 확정된 상태도 아니다. 또한 구속 수감된 교수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중증 환자를 치료하는 ‘필수, 기피과’인 내과 교수로서 촌각을 다투는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환자의 생명이 꺼져갈 때 슬퍼하며, 그래서 더 많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노력해 온 환자를 위한 의사였다. ‘도주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법정 구속한 재판부의 판결을 납득하기 힘들다. 사망한 환자는 대장암과 장폐색이 의심되던 뇌경색을 동반한 고령의 환자로 당시 어떠한 치료를 선택하더라도 위험성이 있는 상태였다. 환자분의 가족들이 겪는 아픔과 안타까운 심정은 그 누구보다 주치의와 담당교수가 더 깊게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환자를 치료함에 있어 선의의 치료가 항상 좋은 결과로 돌아올 수는 없다. 환자의 생명을 다투는 중증의료 현장에서는 치료를 위해 어려운 판단을 해야 하는 순간도 있고 환자와 의료진 모두가 원하지 않는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의료 소송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고 일반적인 상해 사건과 동일한 양형 기준을 잣대로 삼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판결이다.

정부, 언론, 국민들뿐만 아니라 법원 조차도 이해와 격려는커녕 ’사람 죽였네.‘, ’사명감 없네.‘, ’중환자 버렸네.‘ 라는 질타를 계속 한다면, 필수 의료에 몸담고자 했던 많은 젊은 의사들의 의지는 으깨질 수밖에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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