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년의 퇴사
한 청년의 퇴사
  • 승인 2020.09.21 21: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우윤 SQ힉스아카데미 대표, 경영학 박사
얼마 전, 서울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청년에게서 상담 요청이 왔다.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가 근무하는 직장은 중견기업으로 업무여건이 좋기로 소문이 나있는 회사였다. 그는 그곳에서 4년 정도 근무하다가 개인적인 일로 사표를 내었는데 곧 수리되리라 생각했던 사표가 수리가 되지 않아 상담을 요청해 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사표 수리가 지연되는 이유는 회사가 그 청년에게 퇴사하지 말고 계속 근무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퇴사하려는 사람에게 하는 한두 번 쯤의 만류로 이해했다고 한다. 그러나 팀장의 보고를 받은 이사도 퇴사를 만류해 왔고 심지어 인사팀에서도 원하는 부서로 보내주겠다며 퇴사를 만류한다는 것이다.

그런 회사의 제안은 무척 예외적인 것이어서 그 청년은 살짝 기분이 들떠 있었다. 나도 흥미가 생겨서 회사에서 보내온 내용을 한번 보자 했더니 금방 보내주었다. 궁금하여 열어 보았더니 문장 하나하나에 그 청년에 대한 깊은 애정과 기대가 담겨있었다.

그 청년이 내 생각을 묻기에 “와, 네가 직장에서 매우 인정을 받고 있나 보네. 퇴사하는 직원에게 이런 제안을 해 오다니 참 놀랍다. 내용이 진솔하고 따뜻하네. 요즘 이런 기업이 있다니 참 신기하네.”라고 말해 주었다. 그는 “저도 우리 회사가 이런 정도로 저를 평가하고 있었다는 것을 전혀 몰랐어요. 지금까지 다들 잘해 주셨지만 과분할 만큼 제 퇴사를 만류하시고 여러 가지 제안을 해 주시네요.”라며 감동을 한다.

더 감동한 것은 오히려 듣고 있는 나였다. 그런 평가를 받고 있는 그 청년도 대견했지만 수차례 퇴사를 만류하며 떠나는 사람을 아쉬워하는 그 회사가 더 귀하게 느껴졌다. 그 청년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더니 결국 퇴사하기로 결정했다며 연락을 해 왔다. 그러면서 그렇게 만류하는 회사를 떠나는 것이 정말 잘한 결정인지 모르겠다고 슬며시 말을 흐린다. 이해할 만도 하다. 난들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까? 떠나는 자를 붙잡는 회사의 관심과 배려가 오히려 가벼운 독이 되어 떠나는 자를 비틀거리게 한다.

그런 청년을 보며 나도 즐거운 농담을 한다. “거참 정말 나쁜 회사로구나. 떠나겠다는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흔들어놓다니 참 기막힌 보복일세.” 그와 나는 크게 웃으며 아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 마음을 씻어 냈다. 그가 자신의 마음을 다지며, 마지막 말을 건넨다.

“퇴사하면서 제게 대한 윗분들의 평가와 기대를 알게 된 것이 감사하네요. 나중에 때가 되면 다시 만나자는 말씀도 해 주시더군요.”

그러고 보니 나도 벌써 두 번의 퇴임을 겪었다. 한 번은 학교, 한 번은 교회의 퇴임이었는데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감사함이 더 많았다. 상처도 있었지만 격려도 많이 받아 비틀거리지 않고 내 갈 길로 갈 수 있었다.

가을이다. 거리에는 벌써 서늘한 바람이 분다. 꽁꽁 얼어붙은 고용 현장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마음이 더욱 시리다. 요즘의 청년들은 취업도 어렵거니와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이직의 경험을 갖는다. 평균 3~4년 마다 이직을 한다 하니 평생의 직장 생활동안 예닐곱 번 이상의 퇴사 경험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그 청년을 생각하면 서늘한 바람은 시원한 바람이 된다. 답답한 미래는 기분 좋은 상상이 된다.

그 청년처럼 우리 대학생들도 취업을 하여 열심히 일하게 될 것이다. 직장 상사들은 대견한 마음으로 은근히 그들을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때가 되어 퇴사하려고 하면 직장 상사들은 한사코 만류하며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이다. 또 회사는 관심과 배려라는 고도의 전략으로 퇴사하는 그들의 걸음을 비틀거리게 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한번 휘청하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비틀거리며 다시 제 길을 갈 것이다.

그 청년에게서 곧 출근하게 될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쉽지 않은 취업 현장가운데서도 용케 길을 찾았나 보다. 정말 우리 청년들에게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일터는 고맙고 절실하다. 기업은 그래서 존재해야 하고 경영자는 존경받아야 마땅하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