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의 화려한 잔치, 이웃집 어르신 환갑상으로 변모
무장의 화려한 잔치, 이웃집 어르신 환갑상으로 변모
  • 윤덕우
  • 승인 2020.09.23 2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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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온의 민화이야기] 행복한 인생의 조건- 곽분양행락도
당나라 곽자의의 생일잔치 장면
사슴은 장수·공작은 출세…
요소 하나하나가 복록 상징
궁중 의례용 병풍으로 사용
19세기 후반 서민 재해석
기교 대신 예스러운 멋 ‘풀풀’
궁중장식화와 주제는 같지만
건넛집 사연처럼 현실감 넘쳐
아침 저녁으로 찬 기운이 느껴지며 계절의 변화와 함께 벌써 추석 다가온다.

올 추석은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명절을 맞이할 듯하다.

‘아들, 딸, 며느리야. 이번 추석엔 고향에 안 와도 된당께’ ‘얘들아, 이번 벌초는 아버지가 한다. 너희는 오지 말고 편히 쉬어라잉’ ‘아범아, 추석에 코로나 몰고 오지 말고 용돈만 보내라’ 요즘 전국 거리엔 이런 현수막들이 붙어있다. 명절에 뉴스 화면에 민족의 대이동으로 어디에서 어디까지 몇 시간인지 실시간으로 중계되던 기억도 올해는 추억이 될듯하다.

어쩌면 앞으로 명절에 모든 가족이 모여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영영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어르신들은 자식과 손주를 못 만나는 명절이 무슨 낙이 있으랴....

옛날 사람들이 생각한 가장 행복한 인생의 조건은 무엇이었을까? 병 없이 오래 살고, 높은 관직에 오르며, 자손들의 번성함을 지켜보는 것을 가장 큰 행복으로 여겼던 것 같다. 실제로 누군가 이렇게 된다면 단연 성공한 인생의 주인공으로 주목을 받을 것이다. 여기에 소개하는 중국의 곽자의(郭子儀 697~781)가 바로 그러한 화제의 인물이었다. 곽자의는 중국의 당나라 현종(玄宗) 때 무장(武將)으로 활약한 실존 인물이다. 안녹산(安祿山)의 난(755~763)을 평정한 공으로 지방의 제후인 분양왕(汾陽王)에 봉해져 ‘곽분양郭汾陽’으로 불렸으며, 당나라 최고의 공신으로 권세를 누렸다. 또한, 80세를 넘어 장수하였고, 85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8명의 아들과 7명의 사위를 두고 그 자손들이 모두 고위 관료나 귀족으로 출세를 하였다. 조선 후기에 곽자의를 주제로 한 곽분양행락도가 유행하면서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된 인물이다.

속담에 ‘곽분양 팔자’, ‘팔자 좋은 백자천손(百子千孫) 곽분양’이란 말도 그를 지칭한 것이다.

그림의 초기 도상은 중국에서 전래했겠지만, 이후 화려한 궁중장식화로 정착되어 조선 말기의 궁중은 물론 사대부층에서도 선호하였고, 민간으로 전해져 민화의 주요 모티프로 변용되기도 했다.
 

곽분양행락도
<그림1> 곽분양행락도 8첩 병풍, 견본채색, 19세기제작 추정 131.0×415.0㎝, 삼성미술관 Leeum 소장

위 그림은 궁중 장식화의 양식을 가지고 있으며 궁중행사용으로 쓰였다. 임금의 즉위나 세자의 책봉과 혼인 등 경사스러운 잔치인 가례에 이 병풍을 치고 행사를 치러졌다고 한다.

궁중장식화의 곽분양행락도는 곽자의의 별장에서 벌어진 잔치 모습을 중심으로 연폭으로 그려진 그림이다. 잔치는 당대에도 아름답기로 유명했던 그의 별장에서 열리고 있다. 화면의 좌측에는 기암절벽, 첩첩산중을 떠올리게 하는 구름에 쌓인 청록의 산수와 폭포가 보인다. 잔치에 초대되어 선물을 들고 오는 사람들을 비롯해 잔치의 중심이 되는 곽자의의 용상 주변으로 크고 작은 전각에는 잔치를 즐기는 사람들이 다양하게 그려져 있고, 얼굴을 일일이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였다는 그의 손자들까지 전반적으로 들썩이는 잔치마당이 잘 표현되어 있다.

중앙에는 주인공인 곽자의가 금관을 쓰고 용상에 앉아 마당에서 펼쳐지는 춤추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고, 아들과 사위, 처첩, 신하, 궁녀들이 그를 중심으로 둘러싸고 있다. 대체로 곽자의의 오른쪽으로는 여덟 아들이, 왼쪽으로는 일곱 사위가 조복을 입은 모습으로 그려진다. 곽자의의 부인은 중앙마당 주변 건물에 앉아 역시 잔치장면을 보고 있다.
 

곽분양-부인
<그림2> 곽분양행락도 부분 김득신(1754~1822)작 견본채색 18세기 후반 143.9×123.6㎝,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득신이 그린 곽분양행락도에 곽분양을 보라!! 곽분양이 자손과 신하들에 둘러싸여 연회를 즐기는 장면이 그림의 중앙에 펼쳐져 있다. 궁궐을 연상케 하는 가옥에 화려한 옷차림을 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 그림은 흥이 잔뜩 오른 잔치의 한 장면을 사실적으로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장면과 요소 하나하나가 복록을 의미하는 상징물로 표현되어 있다. 주변 산과 전각들을 포함해 화면 전체를 휘감듯이 그려진 구름은 그림 전체에 상서로운 기운과 현실을 벗어난 이상향을 표현한다. 춤추는 학과 한가롭게 노니는 사슴은 역시 장수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먹이를 먹고 있는 공작은 출세를 의미하며, 마당에는 기암괴석이 즐비하고 곳곳에 부귀와 평안을 상징하는 모란이 만발해 있다. 이른바 실존했던 한 인물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인물이 지니는 다복의 상징성과 곳곳에 부귀, 다복, 장수 등 기복의 상징물들을 그려 전체적으로 복록의 상징성으로 가득 찬 그림이 되었다. 궁중화로서의 장중한 스케일과 치밀한 묘사는 김득신과 같은 뛰어난 기량의 화원이 아니고서는 가능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나 1848년경에 지어진 가사집 <한양가漢陽歌>에는 광통교 아래의 그림 가게에 병풍용 곽분양행락도가 걸렸었다고 전해진다. 이제 민간으로 이 그림이 전해지고 있음을 말한다.

19세기 후반 곽분양행락도는 민간으로 전해지면서 민화로 재해석되었다.
 

곽분양
<그림3> 곽분양행락도 부분(곽분양) 지본채색 91세기 후반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곽분양-부인
<그림4> 곽분양행락도 부분(곽분양 부인) 지본채색 91세기 후반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우선 궁궐과 같은 장엄한 스케일은 다소 소박해지고, 잔치도 간소화되었으며 더불어 중국의 전통춤 호선무를 추는 늘씬한 무희들도 조선의 춤인 무고(舞鼓)로 바뀌면서 무희들의 모습도 오히려 친근감이 느껴진다. 민화의 곽분양행락도는 소박하고 친근감이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 정말 우리 이웃의 할아버지 팔순잔치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같은 그림의 주제이지만 궁중장식화는 이상의 세계라면 민화는 지금 막 우리 이웃에서 일어날 것 같은 현실감이 있어 좋다. 그리고 민화의 곽분양행락도는 다른 민화의 주제와 융합을 한 부분도 있다. 위의 민화 곽분양행락도의 곽분양 부인의 묘사부분에 앞마당을 뛰어다니는 어린 동자들이 앞서 언급했던 ‘팔자 좋은 백자천손(百子千孫) 곽분양’에서처럼 백동자도(百童子圖)와 적절하게 결합하여 자손번창에 대한 염원까지 재구성하여 그림에 담아냈다. 결국 곽분양행락도는 명예로운 출세, 자손번창, 부富, 장수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누릴 수는 없었지만, 누구나 누리고 싶었던 삶, 그 삶을 함께 하고픈 사람들의 열망이 탄생시킨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역병이 돌거나 특수한 사정이 있을 땐 추석 차례를 건너뛰었다. 그래도 예법에 어긋나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 올해도 그 옛날의 사례가 아닐까 싶다.
 

태평성대
<그림5> 김화순 작 <태평성대> 2019년작 지본채색, 개인소장

올 추석 차례상은 실시간 화상회의 플렛폼으로 해야 되나? 보름달 뜬 추석의 한가위는 이런 그림으로 대신해야 할까. 이러다 어느 날 추석날 밤에 뜨는 보름달도 언택트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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