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태 경영칼럼] 유일한의 기업가정신을 되돌아본다
[배종태 경영칼럼] 유일한의 기업가정신을 되돌아본다
  • 승인 2020.09.24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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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 전 중소기업학회장
몇 년 전 우리나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우리나라의 기업가들 중에서 가장 기업가정신이 강했던 분이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그 결과는 현대그룹의 창업주인 정주영 회장으로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처음 대형조선소를 만들 때 외국의 투자를 받는 과정, 천수만 방조제 물막이 공사에서 고철유조선을 가라앉힌 일, 한국 최초의 고유모델 포니자동차 개발 사례 등을 통해 창업 1세대로서 그의 도전정신과 기업가정신, 그리고 “이봐 해봤어”로 대표되는 그의 현장중심 실천중시의 경영철학에서 많은 영감을 받고 있다.



△ 기업가 유일한

그런데 한국 산업화의 주역인 정주영 회장, 이병철 회장보다 먼저 우리나라에 기업가로서 선각자의 삶을 사신 분이 있다. 바로 유한양행을 창업한 유일한 박사이다. 그는 1895년 평양에서 태어나 1904년 아홉 살의 나이에 미국 유학 길에 올랐고, 1919년 미시간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하고, 1923년 미국에서 라초이식품회사를 설립했다. 이어 한국에 귀국하여 1926년에 유한양행을 설립하였다. 1962년에 유한양행은 우리나라 제약업체로는 최초로 상장기업이 되었고, 유일한 박사는 1971년 “내 명의의 주식은 모두 한국 사회 및 교육기금에 기증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별세했다.

많은 분들이 유일한 박사를 기업 활동을 통해 축적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신 분으로 기억한다. 유일한 박사는 늘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이며, 개인은 단지 관리를 할 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실천했다. 그가 남긴 “기업의 제일 목표는 이윤의 추구이다. 그러나 그것은 성실한 기업 활동의 대가로 얻어야 한다.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말은 그의 경영철학을 잘 보여준다.

최근 들어 기업의 사명이 이익 창출을 넘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이해관계자들의 성공을 돕고, 경제적•사회적 가치를 함께 창출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각성이 공감을 얻고 있지만, 유일한 박사는 이미 94년 전에 이러한 기업의 사명에 대한 분명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기업경영의 선각자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그는 1936년 유한양행을 주식회사로 바꾸면서 주식의 일부를 임직원에게 나누어주기도 했고, 소유 경영이 아닌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하는 등 자본주의 체제가 발전되지 못했던 당시 상황에서도, 독립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던 그의 국가관과 미국 유학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적 경영방식을 실천하기도 했다.



△ 유일한의 기업가정신

이처럼 유일한 박사는 기업을 통해 “사회적 가치 창출”을 실천한 분으로 유명하지만, 기업가정신이 투철했던 기업가(起業家)로서 그의 활동과 성과는 크게 조명이 되지 못했다. 기업가는 새로운 기회를 추구하여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기회는 사회•시장의 문제(problem)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혁신적인 해결책(solution)을 모색하여 제시할 때 실현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유일한 박사는 진정한 기업가이다.

당시 일제 치하의 암울했던 한국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는 ‘국민 보건 등 삶의 질을 향상하는 것’과 ‘국민 계몽을 위해서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본 유일한 박사는 유한양행의 설립을 통해 국민 보건 문제 개선을 위해 노력했고, 교육재단과 학교를 만들어 교육 사업에도 몰두했다. 이러한 사업이념과 접근방법은 문제와 해결책을 찾아내고 사업기회를 추구하는 기업가정신의 전형적인 방식을 보여준다.

특히 사업 활동에 있어서 그의 기업가정신은 잘 드러난다. 그는 유한양행의 경영신조를 ‘진보(progress)와 신실(integrity)’로 정하고 국가 발전을 위한 기업의 노력을 강조했다. “정성껏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 봉사하고, 정직, 성실, 양심적인 인재를 배출하며, 기업이익은 사회에 환원한다”는 그의 기업이념에는 ‘애국형’ 기업가정신, ‘사업보국형’ 기업가정신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의 기업가정신이나 사업에 대한 접근방식이 현대의 국가 경영이나 기업 경영에도 여전히 유효할까? 물론 시대정신과 사업환경이 그 당시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지금, 세부적인 경영방식이나 의사결정 등은 많이 달라져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기업가의 비전과 사명,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사회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사업기회를 추구하고, 부족한 자원을 열정과 협력, 실천정신을 통해 확보하고, 궁극적으로 경제적•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그의 기업가정신에 기반한 사고방식과 경영방식은 여전히 현대의 기업가들에게도 큰 교훈과 시사점을 준다. 유일한 박사는 우리에게 자랑스러운 기업가정신의 유산을 함께 남겼다. 멈추어 서서 그의 삶과 철학 속에 녹아있는 기업가정신을 되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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