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 경영칼럼] 전통시장 길을 잃다
[박명호 경영칼럼] 전통시장 길을 잃다
  • 승인 2020.09.2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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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호 계명대학교 석좌교수, 전 계명문화대학교 총장
민족의 대명절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비대면 생활이 일상화되면서 올해 추석은 가족과의 상봉이 어려워 보인다. 대신 영상통화로 부모와 자녀들이 명절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새로운 풍속도로 자리 잡게 될 전망이다. 소위 뉴노멀(new normal)이 고유 명절의 모습마저 변화시키는 것이 우려되는 까닭은, 코로나19로 많은 피해를 입었던 전통시장의 상인들이 이번 추석에도 고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명절선물과 제수용품 구입이 백화점, 온라인쇼핑몰, 대형 쇼핑몰 등으로 몰리면서 전통시장을 찾는 사람은 드물다고 한다.

올해 초부터 전통시장의 경기는 그야말로 악화일로를 달렸다. 매출이 지난 5월 반짝 개선된 이후 3개월 연속 추락했고, 당분간 회복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시장에 사람 구경하기가 어렵고, 장사가 안 돼도 너무 안 된다’는 상인들의 탄식은 이제 그리 낯설지 않다. 상인들은 어려움을 극복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정책당국도 마땅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야말로 전통시장이 길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는 지난주 ‘전통상업보존구역 지정제도 일몰 기한 연장’을 골자로 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이는 전통시장 1km 이내 대형마트 개설을 규제하는 제도다. 최근에는 20km로 확대하자는 개정안도 발의되었다. 대구에서는 유명 대중음악인들과 함께 ‘시장가요’를 만들어 전통시장의 장점을 알려서 시장이용을 활성화하겠다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정부는 소상공인 디지털전환 지원 방안으로 대구의 두 전통시장을 스마트시범상가로 선정했다. 서문야시장에 스마트오더시스템을 구축하고, 와룡시장에는 스마트미러, 서빙로봇 등을 구축할 예정이다.

이 같은 입법부와 행정부의 지원책, 그리고 전통시장의 자구노력들은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한 발상으로 나름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과연 상인이나 소비자에게 근본적인 실익을 가져오는지는 의문이다. 전통시장이 당면한 위기의 근본원인을 정확히 보지 못한 까닭이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우리의 운명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이처럼 전통시장의 문제도 핵심을 바로 보아야 해결 방법이 있다.

전통시장에는 복잡한 문제들이 뒤엉켜 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현상은 복잡하지만 본질은 단순하다. 전통시장의 본질적 문제는 ‘다름’과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다름’의 문제다. 전통시장은 시설도 낡고, 상인들은 고령화되고, 상품의 구색이 부족하고, 유행에도 덜 민감하며, 유통기술의 도입과 활용도도 낮다. 이러한 부분에서 다른 유통업태를 앞서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어설프게 다른 유통업태의 장사방식을 모방하려는 것도 생존과 번영의 길이 아니다. 따라서 전통시장은 반드시 ‘다름’의 장사방식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 ‘다름’을 소비자들에게 인식시키고 공감하게 하는 것이 생존의 관건이다. 하버드 대학의 문영미 교수가 지적한대로 ‘다름’은 외형적 차이가 아니라, 고객과 함께 호흡하는 ‘인간적 숨결’을 형성해 나갈 때 비로소 실현된다.

다음은 ‘관계’다. 디지털기술기반의 온라인시스템은 고객들과 활발하게 소통하여 거래로 연결하는 훌륭한 도구다. 그러나 발상을 바꾸어 보면, 온라인시스템이 고객과의 소통과 거래에 유일한 최선의 방법이 아닐 수도 있다. 첨단기술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첨단기술기반의 거래는 상품을 사고파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전통시장은 본래 단순한 상품의 거래를 넘어 삶의 이야기들과 정(情)을 공유했던 인간적 ‘관계’의 장소였다. 고객으로 하여금 특별한 사람으로 느끼도록 해주는 공간이다.

수년째 서문시장의 옷감가게 단골인 한 지인은 가게 주인과 가족처럼 지낸다. 이들은 단지 옷감을 사고파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서로가 자녀의 진로와 인생 상담까지도 하는 사이다. 감히 대형유통업체에서는 상상조차 못할 고객관계다. 우리의 전통시장격인 일본의 상점가(商店街)에서는 가게의 위치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고객의 대부분이 2∼3대에 걸친 단골들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겉으로는 볼 수 없는 고객과의 ‘관계’ 가치가 바로 전통시장의 최첨단 경쟁 도구다.

노스웨스턴 대학의 필립 코틀러 교수는 뉴노멀 시대에서 ‘사람을 위한 기술(technology for humanity)’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인본주의가 마케팅의 핵심이라는 주장이다. 전통시장이 잃어버린 길을 되찾기 위해 가장 필요로 하는 덕목도 ‘인간다움’이다. 상인들이 ‘인간 친화적’ 가치를 실천할 때 전통시장의 밝은 미래가 있다. 오늘도 전통시장 상인들은 고객을 맞이하기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고군분투하고 있다. 하루 속히 이들의 얼굴에서 한가위 보름달처럼 환한 미소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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