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만나는 ‘충과 효를 겸비한 국헌 오수눌’
책으로 만나는 ‘충과 효를 겸비한 국헌 오수눌’
  • 이재춘
  • 승인 2020.09.29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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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산촌생활박물관 발간
임진왜란 참전 큰 공 세워
귀향 후 부모님 봉양 매진
영양산촌생활박물관개관제14주년출판물
충과 효를 겸비한 국헌 오수눌.

영양산촌생활박물관은 개관 제14주년을 기념, 임진왜란에서 큰 공을 세우고, 부모님을 극진히 봉양했던 국헌 오수눌의 이야기를 담은 ‘충과 효를 겸비한 국헌 오수눌’을 발간했다.

박물관은 2006년 개관한 이후 매년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은 출판물을 정기적으로 제작, 배포함으로써 지역민의 정체성 함양에 기여하고 있다. 올해는 조선 중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참전하여 큰 공을 세운 국헌(菊軒) 오수눌(吳受訥; 1565~1648)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담았다.

국헌 오수눌은 1565년 영양읍 감천리에서 무신의 집안인 낙안오씨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무과를 준비하던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초유사 김성일(1538~1593) 휘하로 들어가 참전했다.

영해읍성 전투에 승리한 뒤 목숨을 걸고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서 상경한 국헌 오수눌을 보자 선조는 “충과 효를 모두 겸비한 자로다”고 평했다.

평양성을 비롯해 울산왜성까지 크고 작은 전투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으나, 국헌 오수눌은 “백성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했을 뿐”이라며 전공을 다투지 않았다. 무관으로서 맡겨진 의무만 충실했던 오수눌은 ‘선무원종공신록’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만족하며, 전쟁이 끝난 뒤 귀향하여 부모님을 봉양하며 종신토록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국헌 오수눌의 아름다운 행적은 유림과 문중을 움직여 사망 후인 1766년 정3품 어모장군의 증직에 이어서 1799년에는 ‘충효사(忠孝祠)’에 불천위(不遷位)로 모셔지도록 했다.

영양=이재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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