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자, 아끼꼬, 쏘냐
명자, 아끼꼬, 쏘냐
  • 승인 2020.09.29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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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광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정책실장·경제학박사
이장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영화배우 김지미 씨가 출연한 <명자, 아끼꼬, 쏘냐>라는 영화는 그 당시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일제강점기 시대에 명자라는 조선인 여성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조선, 일본, 러시아 사할린을 전전하면서 겪은 기구한 삶을 담은 작품이다. 명자는 동경 유학생 출신인 유민호를 사랑하지만 알콜 중독자가 된 약혼자에 의해 매춘업자에게 팔려갔으며, 자신을 사랑했던 공산주의자 동진이 사할린에서 파업을 주도한 협의로 큰 어려움을 겪자 명자는 그를 도와 탈출시켜준다. 해방 이후 동진은 자신이 사랑했고 그를 도와준 명자를 천신만고 끝에 만나지만 북한국적자인 명자는 귀국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있음을 알고, 두 사람은 조국의 하늘을 보며 망국의 한을 달래며, 그녀는 끝내 고향땅을 밟지 못한다는 가슴 아픈 영화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동토의 땅 사할린은 한민족의 피와 눈물과 한숨이 서려있는 디아스포라의 현장이다. 1910부터 시작된 일제의 토지사업으로 인해 농토를 잃은 조선 농민들이 살길을 찾아 이곳 사할린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으며, 1938년에는 일제의 국가총동원령에 의해 많은 조선인들이 강제 징집되어 끌려가 벌목공, 광부, 철도와 비행장 건설 노동자로 모진 삶을 살았던 곳이다. 1945년 해방을 맞으면서 사할린이 러시아 영토로 편입되면서 고국으로 귀향하지 못한 조선인들은 러시안 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역사적 상처가 깊은 곳이다. 사할린 동포들은 일제감점기의 혹독한 시련기와 광복 이후에도 일본, 러시아, 남북 모두에게버림받았다.

일제강점기와 냉전체제가 남겨 놓은 명자의 이야기는 1960~1970년대 역동적인 산업화 시대의 그늘진 곳에서 상처를 입고 살아간 영자로 부활한다.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는 가난한 농촌의 소녀인 영자가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들어와 가정부와 버스차장, 몸을 파는 여성으로 전락하다가 불에 타 죽는 인물이다. 이 영화는 가부장제도의 폭력성에 피해를 입은 우리의 누이이기도 한 여성의 삶을 그린 영화다. 가난한 시절 이 땅의 여성들은 모진 고초를 겪으면서도 때로는 가족을 위해 때로는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가족이나 사회, 국가는 그녀들의 삶을 기억도 책임도 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땅의 남성들은 편안한 삶을 누렸던가? 태평양전쟁, 6.25동란, 베트남전쟁, 때로는 낯선땅 서독으로 광부와 간호사로 파견되어 지하 1000미터 갱도에서, 열사의 땅 중동 사막에서 건설노동자로 땀을 흘리면서도 밝은 미래를 위해 치열하게 살았다.

한일국교정상화를 통해 받은 대일청구권자금, 베트남 전쟁에서 피의 대가로 받은 병사들의 몸값을 투자해 고도 경제성장을 이룬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한일국교정상화를 위해 당시에는 소외되었던 원폭피해자, 위안부, 강제징용자 등의 문제는 법적인 문제를 떠나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그들이 입은 아픈 상처를 치유해 주는 것이 국가의 일이 아닐까. 이러한 문제는 그들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문제이고 그 당시 미약했던 국가의 문제라는 것을 정부가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결은 다르지만 산업화 시대 주도 세력이었던 보수정당이 죽을 쑤고 있다. 정당들은 국민으로부터 지탄을 받으면 개혁과 쇄신을 외치고,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당명을 변경한다. 야당인 보수당도 짧은 시간에 몇 번이나 당명을 변경했다. 박근혜 전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한 뒤 박전대통령의 색체가 강한 새누리당을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변경하였지만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통령 후보가 낙선했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총선 승리를 위한 보수정당의 통합 명분으로 미래통합당을 창당하였지만 여당인 더불어 민주당에 완패했고,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국민의 힘으로 당명을 변경하였지만 조만간에 다시 당명을 변경할 운명인 것 같다.

우리 역사는 일제 강점기, 해방과 6.25, 60년대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국민들이 흘린 땀과 피눈물이 있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희생과 고통도 따랐다. 국가는 그들에 대한 고마움과 희생을 기억하고 그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보수 정당의 당명이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 국민의 힘>으로 변경됐지만 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시대정신을 반영한 정책적 유연성과 인물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사의 굴곡진 곳에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기억과 ‘명자와 영자’에 대한 문제의식을 페미니즘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고통을 함께하는 것이 가족과 국가를 위해 희생된 인간에 대한 예의이며, 보수정당이 가져야 할 역사에 대한 부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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