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악(檢察改惡)’ = ‘거미줄법(法)’
‘검찰개악(檢察改惡)’ = ‘거미줄법(法)’
  • 승인 2020.09.2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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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해남 시인·전 계명대겸임교수
필자는 유년시절부터 중2까지 꿈이 검사였다. 당시 유행했던 ‘검사와 여선생’이라는 영화 때문만은 아니었다. 5~60년대는 법 앞에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의 원칙이 교과서에만 있었다고나 할까? 사회 곳곳에서 강자의 횡포가 심했다. 절대빈곤의 시대. 막노동을 하시던 선친은 새벽별 보고 나가 저녁별이 뜰 때 귀가하여도 일곱 식구가 번번이 끼니를 건너뛰어야 했다. 실컷 일을 시켜놓고는 눈도 깜짝하지 않고 품삯을 떼어먹는 게 부지기수였다. 법(法)이 ‘거미줄법(法)’인 탓이다. 민초들은 어김없이 거미줄에 걸리었고, 부와 권력이 있는 자는 풍뎅이처럼 거미줄을 찢곤 했다. 여북하면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무죄(無錢有罪)’란 신조어가 사회에 회자되곤 했을까? 필자는 검사가 되어 법을 지키고 싶었다. 그리고 ‘검사는 수사가 근본이라’는 생각으로 ‘셜록 홈즈’같은 탐정소설을 탐닉했다.

어린 시절, 집안이나, 들판, 산을 쏘다니며 크고 작은 거미줄을 많이 보았다. 호랑거미의 거미줄은 방패연처럼 컸다. 그 거미줄에는 작은 곤충들이 여러 마리 걸려 있어서 ‘이 세계에는 이 놈이 강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무숲을 헤쳐 나가다가 풍뎅이 한 마리가 이 방패연 같은 거미줄을 “뻥”하고 찢으면서 날아가는 것을 목격했다. 그 순간 “아! 호랑거미줄도 찢는 놈이 있구나”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인간이 만든 법(法)은 어떤가. 독재시대를 50년 이상 지나고, 최고의 문명을 구가하는 21세기. 여전히 ‘거미줄법’ 그대로다. OECD 회원국이라며 마치 선진국이라도 된 듯이 거들먹거리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후진성을 면치 못한다.

소위 ‘촛불정부’가 들어서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가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국민들은 마음속으로 환호했다. 더러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3년이 지나가는 지금 우리는 더 괴로움에 빠졌다. 기회도, 과정도, 결과도 특권자 중심으로 더 변질되어버린 일그러진 모습을 마주해서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과 회의(懷疑)도 컸다.

‘거미줄법’이 된 이유는 간단하다. 조국 전청와대 민정수석 부부 사건, 김경수 경남지사사건(전청와대비서관) 사건, 유재수 전청와대비서관 사건, 전울산시장 청와대개입 선거부정사건 등 권력 핵심부가 관련된 사건의 수사가 지리멸렬해서다. 어디 그 뿐인가.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관련 성추행사건만 해도 안희정 전충남지사, 오거돈 전부산시장, 고박원순 전서울시장 등 거물급 정치인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수사는 미지근하거나 답보상태다. 모두들 거미줄을 찢는 풍뎅이란 말인가? 전정부의 적폐를 몰아세우며,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냈다. 더구나 문재인대통령은 윤석열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 “살아 있는 권력도 수사하라”는 지시를 내린 터다. 하지만 대통령의 지시대로 현 권력의 인사를 수사하다가 윤총장은 그만 식물 검찰총장이 된 신세다.

권력층 수사를 하고 있는 검찰을 ‘검찰개혁’이라는 허울을 씌워 일망타진해버린 ‘검찰개악’이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11개 죄목으로 검찰에 기소된 조국 전법무부장관이 검찰개혁의 선봉에 섰으니 우스개도 이런 우스개가 없다. 뒤를 이은 추미애법무부장관은 한 술 더 떠서 검찰인사권을 전횡했다. 권력층 수사를 해오던 검사 전원을 인사조치 해버렸다. 이것은 엄연한 수사방해가 될 수 있다. 검찰청법에 명시된 검찰총장과의 실질적인 협의를 하지 않은 것 또한 위법성이 다분하다. 더구나 자신의 아들 병역법 위반 수사검사도 교체해버렸다. 너무도 간단한 휴가미귀 수사조차 8개월이 걸려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추장관의 인사권이 위력을 발휘한 것만은 확실하다.

추장관은 국회도 안중에 없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국회의원의 질문에 “소설 쓰네…”다. 더욱 가관인 것은 추장관 아들 병역문제를 두고 중진 여당의원이 일제히 옹호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의 아들을 안중근 의사에 견주어 옹호하는 작태를 벌였다.

참 한심하다. 온 나라가 추장관 아들 병역문제로 들썩여서야 되겠는가? 이제 문재인대통령이 나설 때다. 청년의 날 행사 때도 ‘공정’을 강조한 것은 이런 암시를 준 것이 아닐까? 추장관이나 여권이 대통령의 심중을 못 헤아린다면 큰일이다. ‘자기편 봐주기’에 맞춘 ‘검찰개악’으로 거미줄법이나 찢는 몸집 큰 풍뎅이가 되면 무엇하랴. 코로나19도 좀처럼 숙지지 않고, 국민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 지는데 정부여당이 대통령 뜻을 거슬려가며 독단과 아집으로 민심을 흐려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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