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효과
나비효과
  • 승인 2020.10.04 2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준엽 이비인후과 원장 대구시의사회 공보이사
2016년 뇌경색으로 입원한 80대 환자의 복부단층촬영(CT)상 대장암 및 장폐색이 의심되어 대장 내시경을 하기 위해 장 정결제를 투여한 후 사망한 사건이 있었으며 당시 주치의였던 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는 업무상과실치사죄로 법정 구속됐다.

장 정결제는 대장내시경 전 장을 청소할 목적으로 물에 녹여 마셔 대변을 배출하는 약품으로 검진 대장내시경전 다들 복용해본 적이 있는 약품이다. 단, 장폐색이 있는 환자에게 투여시 다량의 변이 배출되지 못하고 쌓이게 되어 장천공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

주치교수는 당시 환자 진찰상 통증이 없고, 정상 장음이 들렸고, 전신 상태는 비교적 양호, 복통·변비 등의 증상도 없어 임상적으로 장폐색이 없거나 부분적 장폐색으로 판단하여 장 정결제 투약 후 대장내시경을 실시해 대장암 여부를 확인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정말 안타깝게도 환자는 정 정결제 투여후 장천공이 발생하여 사망하였다.

이후 환자 유족들에게 피해변제를 위한 노력함과는 별개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업무상과실치사죄로 교수를 법정 구속하였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함에 있어 아무리 선의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여 치료하더라도 항상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더욱이 생명의 촌각을 다루는 중증의료는 위험도가 높을 수밖에 없어 의료 행위로 인한 득과 실을 따져서 시행 여부를 판단하며 안타깝게도 시술 전 최선이라 생각한 결정이 항상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의사가 악의를 가지고 의료행위를 하였다면 민· 형사상의 극히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고

선의로 의료 행위를 하였더라도 실수가 있었다면 그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줘야 함은 당연지사이다. 그러나 선의로 행한 의료 행위에 대하여, 특히 중환자를 돌보며 발생하는 사고에 법정 구속이라는 형사 처벌을 가한다면 앞으로 의사들은 진료현장 특히나 생사의 갈림길에서 환자를 진료함에 있어 행여나 환자가 잘못되면 구속될까봐 위축되어 소극적 진료를 할 수 있고 종국에는 아무도 중증 의료를 전담하지 않으려 할 수도 있다.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이라고 의료계에서 유명한 판결이 하나 있다.

당시 의식을 잃은 환자가 보호자 없이 응급실로 내원하였다. 당시 의료진은 사명감을 가지고 생명의 촌각을 다투던 무연고 환자 뇌수술을 하였다. 수술은 잘 끝났으나 다음 날 나타난 환자의 보호자(아내)는 ‘의사가 보호자 동의 없이 마음대로 수술했다면서 퇴원을 요구하였다. 담당 의사는 보호자를 설득하였으나 의사가 보호자 뜻을 거스를 수는 없었기에 보호자에게 각서를 받은 후 환자를 퇴원시켰고 안타깝게도 환자는 사망하였다. 이 후 환자의 다른 보호자가 아내와 담당 의사를 고발했고 아내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담당 의사는 살인죄의 종범으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의사는 최선을 다해 무연고 환자를 수술하였음에도 말이다. 이 판결의 파장은 실로 엄청났다. 보호자가 원할 경우 소생할 가능성이 낮은 환자를 퇴원시키던 의사들은 이 판결 이후 살인죄로 고소 당할까봐 환자의 퇴원을 거부하게 되었고 이후 의료현장에서는 연명치료 중단을 요구하는 보호자와 의사 간 마찰이 숱하게 빚어졌으며 현재도 연명치료 논란은 진행형이다.

지금 정부에서 공공의대를 만들어 외상 외과등 지원자가 적은 소위 기피과 담당 의사를 양성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의사가 많이 배출된다고 한들 선의로 행한 의료 행위에 대하여 결과가 안 좋다고 법정 구속이라는 형사 처벌을 가한다면 중증 의료 기피 현상은 가속화되고 의사들은 의료사고 가능성이 낮은 경증 질환만을 보려고 할 것이다.

‘나비효과’란 말이 있다.

브라질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미국에 태풍을 일으키듯, 미세한 변화나 작은 사건이 추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로 이어진다는 의미이다.

선의로 의료행위를 하였으나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해서 의사를 구속한 이 사건은 추후 대한민국 중증의료의 멸망이라는 ‘나비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2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