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인형
걱정 인형
  • 승인 2020.10.05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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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걱정은 걱정 인형에게 주고 잠을 푹 자도록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내용을 영화로 본 적이 있다. 작은 천조각으로 만든 인형이었다. 아이들이 걱정으로 잠 못 이룰 때 부모가 걱정인형을 주면서 이야기하도록 하고, 걱정인형을 치워버리면 아이들은 자신의 걱정거리를 주어버려 걱정이 없어졌다고 믿고 홀가분하게 잠이 들도록 하는 것이다. 홍희에게도 지금 걱정 인형이 필요하다. 가을과 함께 걱정은 시작되었다.

아들은 새해가 시작할 때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부모는 동의하지 않았다. 작년 아이의 행동이 앞으로의 행동에 별 기대를 하지 못하게 했다. 목표를 향한 노력을 온전히 기울였다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되었고, 전력으로 노력을 하지 않은 아이의 성품이 한 해가 바뀐다고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돈과 시간을 들여서 허비만 하고 말 것이라면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부모의 생각과 달리, 아들은 2020년 한 해를 자신의 '인생'을 위해 투자하고자 하니 지원해달라고 아주 격렬하게 호소했다. 자식이 해 보겠다는데 지원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를 하고 자식에게 원망을 들을 것 같아서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벌써 9개월이 지났다. 달라진 아들의 언행에 기대를 하게 되었다. 홍희의 마음만큼 열정을 투자하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했다. 무엇보다도 생각과 말이 작년과 달라졌다. 어쩌면 올해는 좋은 결과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100일 되기 전까지는 마음이 편했다.

100일이 남고, 70일이 남고 시험 날은 점점 다가왔다. 그 날이 다가올수록 아들도 불안해지기 시작하나 보다. 올 초에 말했던 목표는 불가능하다며 순위가 낮은 목표로 변했다. 최소한 이 정도면 되겠냐며 엄마인 홍희에게 묻기도 했다. 아들이 불안한 마음을 표현하면 엄마가 격려를 해주어야 하겠고, 아들이 바라는 것도 그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홍희는 아들만큼이나 불안감과 걱정이 커졌다. 아들이 원하는 격려를 해 줄 수가 없었다.

올 해는 작년처럼 불안과 초조로 우울한 가을을 겪고 싶지 않았고,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어김없이 가을이 시작되고 70일도 남지 않은 날수를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았다. 혹시나 작년처럼 실망하면 어떻게 하나, 돈과 시간을 투자한 한 해가 헛되이 끝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와 아들이 좌절을 하면 어떻게 하나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앞으로 70일을 이렇게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아들의 불안감이 엄마에게 전염되고, 엄마의 불안감이 다시 아들에게 옮겨가서 서로가 악순환이 되었다. 아들은 엄마가 버팀목이 되어 주기를 바란 것 같은데 말이다.

홍희는 걱정을 멈추어야 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걱정을 하면서 아들의 불안감을 누그러뜨리고 격려를 해주지 못하는 것이 아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것 같았다. 오히려 엄마의 걱정이 아들의 불안을 더욱 크게 할 뿐으로 집중력에 방해가 될 뿐이다. 홍희 자신도 불안한 나날을 보내자니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말처럼 걱정을 한다고 나아지는 것은 없다. 걱정을 한다고 결과가 좋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결과가 어떨지 모르지만, 결과가 나오기 까지 걱정만 하기 보다는 차라리 긍정적인 마음으로 더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도록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아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걱정을 멈추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기 위해서 '걱정 인형'에게 걱정을 주어버리는 것과 같은 '의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홍희는 추석 연휴 갓바위에 올랐다. 혼자서 낯선 길을 운전해 가는 것이 또 '걱정'이 되었지만, 용기를 냈다. 차선을 지키고, 신호를 잘 보고, 앞 차와 옆 차, 뒷 차를 잘 보며 안전하게 주차장까지 도착했다. 그리고 1시간 30분 동안 천천히 돌계단을 올랐다. 한 계단 오를 때마다 아들을 위해 기도했다. 힘들면 잠시 숨을 고르며 쉬었다. 정상에 올라 아들의 목표달성을 위한 촛불을 밝혔다. 그리고 갓바위에 절을 했다. 소원 하나는 꼭 들어준다고 하니 한 가지 소원만 빌었다. 걱정 인형에게 걱정을 주어버리고 푹 자는 아이들처럼, 절하는 의식을 통해 기원을 들어줄거라 믿고 걱정을 내려 놓았다. 그래서 그날부터 아들에게 웃으며 말할수 있었다. "넌 할 수 있어, 열심히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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