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물살을 넘을 힘이 있다면, 벼슬을 얻게 되리라”
“거친 물살을 넘을 힘이 있다면, 벼슬을 얻게 되리라”
  • 윤덕우
  • 승인 2020.10.0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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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가 거친 용문을 넘어
용 됐다는 중국 고사 형상화
잉어는 선비를, 태양은 임금
파도는 고난, 용은 벼슬 의미
조선 사대부에 과거 급제 상징
출세 기원 바라며 공부방 장식

[박승온의 민화이야기] 성공은 노력하는 자의 것 ‘어변성룡도’

바야흐로 시험의 계절이 돌아왔다. 각종 지방직, 국가직 공무원 시험이 있고, 직무와 관련된 자격증 시험이 있고 무엇보다도 우리 고3 학생들의 수능이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졸업을 하고 사회생활을 위해 또는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 출세를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오늘은 그러한 성공과 출세에 관한 그림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용문(龍門)에 오르다’라는 의미의 ‘등용문(登龍門)’이라는 단어를 독자들은 많이 들어보셨으리라. 성공하기 위해 마침내 통과해야 하는 어려운 관문을 일컫는 말로 고시학원이나 입시학원 이름 중에 제일 빈도수가 많을 듯 하다.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여 크게 출세하게 되거나 또는 관문(官門)에 이르는 것을 의미하는 등용문의 고사는 잉어가 중국 황하(黃河)강 상류의 급류인 용문을 오르면 용이 된다는 후한서(後漢書) 이응전(李膺傳)에서 비롯한다. 환관(宦官)의 횡포가 심한 후한(後漢) 말 환제(桓齊) 때 이러한 환관들에게 저항한 정의파 관료 중 두드러진 이응(李膺)은 혼탁한 궁정 안에 있으면서 항시 몸가짐을 조심했다. 고결한 삶의 자세로 당시 ‘천하의 모범 이응’이라는 칭송이 자자했다. 특히 젊은 관료들은 이응을 경모해 그의 추천을 받음을 최고의 명예로 여겼으니 이를 등용문이라 일컬었다.

자 이제 뛰어 오르는 잉어 이야기부터 해보자. 용문 근처는 매우 급히 흐르는 여울이 있어 급류를 빠르고, 얼음장 같이 차서 여간해서는 큰 물고기도 잘 오르지 못한다. 반면에 한 번 오르기만 하면 물고기는 용으로 변한다는 전설이 있다. 이에 연유하여 모든 난관을 돌파하고 입신출세의 가도에 오르게 되는 것을 ‘용문에 오르다’라고 했고 어쩌면 ‘개천에서 용 난다’는 우리의 속담도 여기에 기인했을 것이다. 과거급제로 벼슬살이인 관직에 나아감, 즉 출세를 뜻한다. 이에 연원을 둔 조형예술은 중국을 비롯해 우리나라에서 이른 시기의 공예와 회화에서부터 살필 수 있다.

정선- 어변성룡도
<그림1> 겸재 정선 작, 솟구치는 물고기 18세기,지본채색, 20x31cm,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고기 한 마리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펄쩍 뛰어오른다. 씨알이 탱탱하고 힘이 센 놈이다. 등 짝을 돌려 아가미와 비늘의 모양으로 보아 분명 잉어인 듯 싶다. 물 위로 몸통이 반 남짓 솟아올랐다. 머리 부분은 짙고 단단하게, 배 쪽은 옅고 부드럽게 그렸다. 겸재 정선이 소품으로 그렸으나 기운 찬 동세가 드러나 자그마해도 크게 보이는 작품이다. 그러면 더 험난한 곳을 오르는 잉어도 한번 보자.
 

심사정-어약영일
<그림2> 현재 심사정 작 어약영일 지본담채 129 x 57.6 cm 1767년 간송미술관 소장.

일렁이는 파도가 하늘까지 삼킬 듯 거세다. 돌고 도는 물결 가운데 수염이 멋진 잉어 한 마리가 몸통을 비틀고 비늘을 퍼덕이며 물 위로 솟구치려 한다. 잠깐이라도 방심하면 높은 파도에 휩쓸릴 것 같은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맑은 눈빛은 태양을 향한다. 눈동자에 정기가 담기는 건 만물이 그러하다. 어떤 난관도 저 태양을 향해 솟구쳐 오르려는 의지를 막지 못하리라는 자신감이 눈빛에 담겨 있다. 잉어는 글공부하는 선비를, 태양은 임금을, 파도는 벼슬길에 오르는 어려움을 상징한다.이 그림에서는 폭포 대신 바다로 표현했다는 점이 특이한데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의 독창성이 돋보인다. 이 그림은 심사정이 환갑인 1767년에 그린 것이다. 평생 벼슬길에 나아갈 수 없어 그림에 모든 것을 바친 선비 화가의 원숙한 붓질이 종이 위에서 천연스럽게 미끄러졌다.

잉어 아래에는 짙은 먹선과 선염으로 거친 물살을 표현애 오는 격랑을 표현했고, 잉어 위에는 한 띠의 여백으로 숨을 고른 후 다시 안개가 어슴푸레한 상태에서 옅은 먹선과 선염으로 원경으로 나타냈다.

그런 다음 다시 희미한 한 줄의 안개 위로 둥근 해를 띄웠고, 해 아랫부분을 안개로 가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안개가 해 주변을 감싸 태양이 붉은 노을에 파묻히지 않고 돋보이게 한 것은 대가의 솜씨이고, 커다란 인장을 찍어 태양과 균형을 맞춘 것 역시 거장의 능력이다.

심사정은 용 그림을 즐겨 그렸는데, 이는 아마도 벼슬길에 나아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 아닐까 싶다. 이 그림의 상단에 적힌 ‘정해춘중위삼현희작(丁亥春仲爲三玄戱作)’이란 화제가 ‘정해년인 1767년 음력 2월(중춘=춘중) 삼현을 위해 장난삼아 그리다’라는 의미이므로 삼현이란 선비의 급제를 축하하며 그려준 것으로 보인다. 자 이제 물에서 뛰어오르는 잉어의 그 다음 변신으로 이어 가보자.
 

민화-약리도
<그림3> 민화 약리도 지본 먹 채색 18세기 후반 62.5 x 116,5 cm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옛 화원들은 ‘용문’과 관련하여 잉어가 뛰어오르는 그림 곧 ‘약리도(躍鯉圖)’와 잉어가 용으로 변하는 그림 곧 ‘어변성룡도(魚變成龍圖)’를 그렸고, 그런 그림이 인기를 누려 공부하는 자손의 방에 어김없이 걸어두었다고 한다. 날개 없는 물고기가 그저 무작정 폭포 위로 뛰어오르는 모습은 높은 벼슬에 오르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은 길상도였다. 사람들은 용문에 오른 잉어는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었다. 이리하여 어변 성룡도가 탄생하게 되었다. 어변성룡(魚變成龍)의 정확한 명칭은 어리변성룡도(魚鯉變成龍圖)이나 이보다는 약리도(躍鯉圖)란 명칭이 일반화되어 있다.

옛 기록에 따르면, 꼬리로 물살을 가르며 있는 힘을 다해 용문을 오르는 잉어는 한 해에 겨우 칠십 마리에 불과하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공부하는 선비들이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을 얻는 것을 앞서 언급한 등용문에 비유하였는데 여기서 잉어는 공부하는 사람이고, 용문을 지나는 일은 시험에 통과하는 것과 같다.

용이 된다는 의미는 곧 벼슬을 얻게 된다는 것을 뜻하고, 붉은 아침 해는 어려운 난관을 뚫고 얻은 새 희망을 말한다.

우리 조상들은 공부하는 데 힘쓴다면 어떤 어려운 관문도 뚫고 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민화-어변성룡도2
<그림4> 민화 어변성룡도 지본 채색 19세기 74 x 43cm 조선민화박물관 소장.

민화의 어변성룡도는 구체적으로 잉어가 용으로 변하는 과정을 슬로우모션으로 보여준다. 그 옛날에 이런 영화를 찍을 줄 누가 알았을까! 무명 민화 작가의 현대적 예술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용문을 올라간 잉어가 여의주를 보고 뛰어올라 막 용으로 변신했다.

용은 예로부터 최고 권력을 상징하는 동물로, 용이 된다는 의미는 권력, 부, 명예 등을 성취하는 개인적 성공을 의미한다.

느닷없는 이 가을에 어변성룡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뜨거운 여름이 지나 한 해가 저물어 갈 때면 필자를 찾아와 자신의 전공을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다고 휴학을 하거나 자퇴를 한다는 학생들 때문이다. 예전에는 그들의 결심에 힘들고 성공하기 어렵다고 늘 반대를 했지만, 이제는 담담하게 그러라고 한다. 그 길이 맞는지 아닌지는 그 길을 가봐야 아는 것이고 성공을 위해서는 무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그림으로 말해줘야 할 듯하다.
 

김상철-어변성룡도1
<그림5> 김상철 작 어변성룡도 지본채색 2018년 작 160 x110cm 개인소장.

오늘날의 김상철 작가의 어변성룡도 작품이다. 예전 약리도 보다 더 높은 계곡이 등장하고 젊은 사람들이 영혼까지 끌어다 집을 산다는 그 집이 중간에 걸쳐져 있다. 딱히 내세울 것 없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자신의 노력으로 지위를 얻고 부를 쌓으면 ‘개천에서 용난다’는 속담을 글의 서두에서도 언급했지만 이제 우리나라에서 이런 속담을 쓸 수 있는 경우를 찾기는 거의 힘들어졌다. 이 그림 역시 그런 의미를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뛰어오르는 물고기를 보라. 험한 계곡이나 웅장한 기와집보다도 몇갑절 크게 그려져 있다. 자신의 노력으로 덩치를 크게 만들어 이제 빨간 여의주를 잡기 일보 직전이다. 그래도 ‘노력은 성공의 어머니’라 하지 않던가.

<박승온·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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