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탑승 버스·캔 음료 점자…배려가 미래를 선도한다
휠체어 탑승 버스·캔 음료 점자…배려가 미래를 선도한다
  • 류지희
  • 승인 2020.10.0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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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성마비 앓는 美 주립대 교수 ‘배려하는 디자인’ 개념 제안
“특정 장애인이 아닌 모두를 위한 꿈”꾸며 사각지대 보완 고민
캔 음료 점자 표시 덕분에 정보 지각 가능해지는 인구 5%↑
비접촉시대 UI 향한 요구 확대…유저 중심 스마트폰 대표적
국내 대표 디자인 건축물 DDP, 미학적 넘어 인간에 힐링 전달
사람·사회·환경 잇는 세심한 디자인으로 삶 더 편리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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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준공 당시 서울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유니버셜디자인을 접목한 우리나라의 대표적 건축물로 호평받았다.

 

[일상 속 디자인 기행] 유니버셜 디자인

디자인을 보면 그 시대상을 알 수 있다. 그만큼 디자인이 인류의 역사에 끼친 영향은 매우 지대하다.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밀려드는 오늘날, AI(인공지능)의 등장과 함께 시대는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주목받고 있는 분야 중 하나가 디자인이다. 급속한 시대변화와 더불어 매일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더 쉽고 더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필요성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1인 콘텐츠 창작시대와 플랫폼시대가 도래하면서 이제는 누구나 사회혁신 활동을 준비하고 실행하며 모두가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디자이너는 사회와 인류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 및 콘텐츠에 효과적으로 접근하고, 이를 확산할 수 있도록 촉진하고 공유하는 가교역할을 해야 한다. 디자인은 그런 디자이너들의 고뇌와 상상력, 창의력의 소산이다. 그러기에 전문디자이너는 급변하는 시대적 트렌드를 읽고 그에 발맞춰, 때로는 한 발 더 앞서 대응해야 하는 것이 숙명이 됐다. 현직 디자이너인 필자는 현시대에서 디자이너의 가치와 디자인의 역할에 대해 연구하고 고민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디자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편집자 주)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온전히 독립적인 존재로써 살아갈 수는 없다. 좋은 점이든 나쁜 점이든 상부상조하며 서로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간다. 살아가는데 있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며, 그렇기에 우리들에게 ‘배려’는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이기도 하다. 배려하는 사람은 아름답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일테니.

그런데 배려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인간관계에서만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미쳐 잘 인지하지 못하지만, 지금 우리 생활 속에서 매일 같이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람과 물건, 사람과 공간사이에서 말이다. 우리는 오늘 하루도 얼마나 많은 사물과 건축물, 시스템 속에 둘러쌓여 있었던가. 그리고 그것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가. 그럼에도 너무도 익숙하고 당연한 나머지 그것들의 고마움과 수고로움에 대해 무감각해져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배려하는 디자인들은 곳곳에 자리잡고 제 역할과 책임을 묵묵히 다하고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의 로널드 메이스 교수는 배려하는 디자인을 ‘유니버셜 디자인’이라는 개념으로 처음 제안했다. 그는 뇌성마비 장애를 갖고 있었지만 ‘장애인을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꿈꾸었다. 누군가를 위한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이미 배려받고 있는 사람과 아직 배려받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배려의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디자인을 고민하였다.

예를 들어, 대다수의 물건은 오른손잡이를 기준으로 고안되어 있다. 오른손잡이는 이미 배려를 받고 있는 셈이다. 이때 왼손잡이를 위한 디자인은 기울어진 배려의 균형을 맞추는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 된다. 이처럼 유니버설 디자인은 작게는 제품디자인에서 처음 시작됐지만 현재는 건축과 공공디자인으로, ‘공간복지’의 개념으로 발전하고 있다. 설계부터 ‘모두’를 염두에 둔 디자인은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하는 ‘마음의 디자인’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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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중소기업의 디자인 경쟁력을 높이고 디자인 트렌드를 선도하는 글로벌 아이콘 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우리나라에 2008년에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 현재는 복지적 가치로 재평가되면서 우리주변 어디에서나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휠체어를 탄 사람도 이용할 수 있는 버스, 키가 작아도 잡을 수 있는 지하철 손잡이, 손아귀 힘이 약한 사람을 위한 레버형 손잡이 등이다. 더불9어 사는 사회를 향한 ‘통합의 기능’을 발휘하는 유니버설 디자인은 나와 남의 경계를 허물어주고 있는 것이다. 장애와 비장애 사이에는 벽이 없으며, 노화가 남의 일이 아닐 수 있음을 디자인을 통해 자각할 수 있게 해준다.

노년의 내가 휠체어를 타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디자인, 노안으로 시력이 약해져 글씨를 읽을 수 없게 될 나를 위한 디자인이 유니버설 디자인이다. 결국 ‘모두’이자 ‘나’를 위한 디자인이 유니버셜 디자인이다. 특히나 오늘날과 같이 고령화시대에 접어들면서 100세 시대 노인을 위한 디자인은 매우 중요하면서도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고 있다. 지하철역 계단에 설치돼 있는 손잡이 라인은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한 유니버설 디자인의 사례이다. 사회적 약자도 별도의 설비를 사용하지 않고 대다수 사람과 같은 제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유니버설 디자인의 철학이다. 그러니 우리 주변의 시선이 머무는 어느 곳 하나에도 적용되지 않는 것이 없다.

예를 들어, 캔음료를 마실 때 뚜껑부분에 있는 점자 표시를 본적이 있는가? 이 점자는 캔 디자인을 확인할 수 없는 시각장애인에게 음료 정보를 제공하는 기능을 한다. 이로 인해 동일한 캔을 집었을 때 이것이 ‘음료’라는 사실을 지각할 수 있는 인구가 5% 증가한다. 이 작은 변화 덕분에 더 많은 사람이 동일한 캔으로 음료를 사 마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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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이 분신처럼 다루는 휴대전화는 배려를 강조한 유니버셜 디자인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같은 맥락에서 남녀노소 모두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은 접근성 기능의 제품으로 같은 기능을 이용할 수 있는 구매자 폭을 확대한 가장 대표적인 유니버설 디자인에 해당한다. 손쉬운 문자 타이핑, 글자 크기 조절, 카메라 기능 등 사용자의 편의성을 고려한 디스플레이 구성 및 지원 서비스 등은 우리 삶을 더욱 윤택하고 효율적으로 변화시켰다.

더구나 요즘과 같이 세계가 비접촉 시대에 접어들면서 온라인상에서의 UI(User Interface·사용자 인터페이스), UX(User Experience·사용자 경험)디자인의 편리함은 더욱 확대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화상 면접은 물론, 업무시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버튼 한 번만 클릭하면 배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소소하지만 삶을 변화시키는 시스템들이 결국엔 모두 디자인과 밀접하게 접목되어 있다.

2012년에 개관한 서울동대문디자인프라자(DDP)는 유니버셜디자인을 접목한 우리나라 대표 디자인 건축물 중의 하나로 호평을 받았다. 당시 서울시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완공되면 우리나라 디자인 경쟁력이 현재 세계 9위에서 2015년 이내에 5위 이내로 도약하고, 동대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현재 연간 320만명에서 400만명으로 늘어 관광산업과 도심상권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리고 8년이 지난 현재,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중소기업의 디자인 경쟁력을 높이고 미래 세계 디자인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글로벌 아이콘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한 평가는 단지 건축학적, 미학적 개념의 아름다움 뿐만이 아니라 작은 부분 하나하나 세심하게 인간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평등한 가치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휴먼컨베니언트 개념이 녹아든 산물이기 때문이다. 지하철과 연결되어 있어 관람객들이 편하게 찾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으니 언제든 자유롭게 들러 다양한 볼거리들을 구경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매년 서울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는 유니버셜디자인박람회를 개최해왔다. 지난해 9월에는 ‘제 7회 서울시 유니버셜디자인 국제세미나’를 개최하여 국내외 8명의 전문가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 미래 도시의 방향성에 대해 토론하는 장을 가졌다. 하지만 올해는 여러 가지 상황들로 인해 아직까지 전시 소식이 없는 가운데 유니버셜디자인에도 새로운 과제의 바람이 불어온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언택트시대의 미래를 위해, 인간을 위해서는 사람과 기계, 시스템 할 것 없이 우리 서로가 서로에게 더욱더 세심하게 많은 배려가 필요한 세상이 왔다. 익숙한 듯 새롭게 변화될 미래의 생활상이 궁금하다면 매년 각 지역에서 개최되는 유니버셜디자인전시회 및 세미나, 각종 공모전에 참여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처럼 디자인은 사람, 사회, 환경을 서로 연결하는 책임과 태도를 갖추고 우리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 배려하는 디자인들 덕분에 오늘 하루도 우리의 일상이 보다 편리해졌으며, 기분좋은 경험들로 가득했다는 것을 좀 더 지각할 수 있다면 좋겠다. 아주 일상적인 것들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깨닫게 되는 요즈음,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자는 취지를 담은 ‘감사일기’ 쓰기가 재조명되고 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나를 배려하기 위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면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일상화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배려하는 마음이 담긴 디자인은 미래를 변화시키는 태도이다. 그렇다면 그런 디자인을 즐기고 사용하는 우리들에게도 이에 준하는 감사와 애정의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미래를 위해서, 우리들을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류지희(디자이너·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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