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차림의 비밀
알아차림의 비밀
  • 여인호
  • 승인 2020.10.12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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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마음으로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그 어떤 관심과 사랑보다 더 의미 있는 일입니다. 마주한 사람의 존재를 그대로 받아 주며 마음이 다른 곳으로 떠돌지 않도록 전심으로 집중해 주는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

함께 있으면 가장 ‘나’다워지고 스스로 괜찮은 사람으로 느끼게 해주는 그런 사람과의 만남은 늘 행복할 것 같습니다. 사소한 것을 기억해 세심하게 챙겨주는 마음 씀씀이로 늘 감동을 주는 사람, 어찌할 수 없는 갈등이 생기더라도 마음을 먼저 헤아려 손 내밀어 화해를 이끌어내는 그 사람은 정말 귀하고 소중한 선물이 됩니다.

얼마 전 어린이 상담 프로그램을 통해서 삐뚤어진 아이들의 심각한 행동에는 반드시 그럴만한 이유나 원인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더 깊이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까닭을 살펴보고 그 마음을 알아차려 잘 풀어주니 아이의 행동이 건강하게 회복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과 마음이 온전히 만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미워, 동생이 죽었으면 좋겠어.”, “엄마 없이 나 혼자 살았으면 좋겠어.”

감정적으로 감당하기 버거운 말을 들은 부모는 나쁜 말이니 하지 말라 야단치며 좋은 관계 맺기에 앞서 잔소리를 길게 늘어놓게 됩니다. 그러나 상담자는 아이가 표현하는 감정이 좀거칠더라도 나무라지 말고 감정을 그 자체로 수긍해 주어야만 마음이 연결되는 창이 열릴 거라는 도움말을 합니다.

만약 그 아이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어긋난 마음으로 계속 살아가게 두었다면 과연 어떤 어른으로 자라가게 되었을지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서늘해집니다.

아이의 감정을 아이의 생각으로 잘못 받아들여 훈계부터 시작했던 지난 경험들이 떠오르면서 상대의 마음을 알아차려 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절실한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여러 상담 사례를 보면 어릴 때 부모로부터 충분한 이해를 받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의견이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정서적으로 방치된 듯한 비참함까지도 느낀다고 합니다. 또 자식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맹목적인 사랑으로 고통만 주는 심맹 부모 밑에서 살아온 사람은 조금만 섭섭해도 부모를 공격자로 생각하며 분노 조절 장애로 갈등을 자주 일으킨다고 합니다.

이처럼 사람에 따라 상처의 깊이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마음 안에도 어릴 적에 제대로 치유 받지 못한 상처로 인해 과거의 특정한 시점에 고착된 모습이 인격의 한 측면으로 나타나는 ‘내면 아이’가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 아이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불쑥 나타나 심적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고 고통의 원인이 되기도 한답니다.

살다 보면 우리가 모르는 무의식의 깊은 곳에 숨어있던 그 아이가 불현듯 우리에게 찾아올 수도 있다는데, 당황하지 않고 그 아이를 알아차릴 수 있을지 염려가 앞서기도 합니다. 그러나 용기 내어 그 마음 상태와 마주 앉아 ‘내면 아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남이 나를 인정하는 것보다 내가 나를 인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에 남의 의식을 내려놓고 나를 알아차리는 일에 집중해야만 합니다.

어쩌면 그 아이는 속절없이 외면당했던 아이, 부모와 형제를 미워했던 아이, 자존감은 흔적조차 없는 형편없는 아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할지라도 그 아이를 만나서 그때 왜 속상했는지, 왜 미워했는지, 왜 그렇게 움츠려 있었는지 물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속상해한 것은 당연하다고, 그때는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거라고, 어릴 때는 힘이 없어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지만 지금은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으며 그때와는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힘을 가졌다고 거듭 말해 주어야 합니다. 이제는 너와 함께 할 힘이 생겼다고 그 마음을 만져주며 아이를 꼭 안아주어야 합니다. 너를 알아차리지 못해 미안하다며 손 내밀어 먼저 사과하는 진실한 친구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나를 기다리는 ‘내면의 아이’를 먼저 알아차리고 그 아이의 마음에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이 아름다운 화해의 시작입니다. 이 알아차림은 아픔의 시작점을 감사의 시작점으로 바꾸어줄 귀한 선물이 될 것입니다.




배은희 대구도림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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