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 천’ 대신 ‘청바지’를 깁다…카페 ‘별을 헤다’ 고금화展
‘자투리 천’ 대신 ‘청바지’를 깁다…카페 ‘별을 헤다’ 고금화展
  • 황인옥
  • 승인 2020.10.13 2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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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조각에 복주머니 콜라주
조각보 현대화 변용 작품도
올 처음으로 청바지 바느질
여러 조각 해체 후 색동 결합
청바지로제작한고금화전시작
청바지로 제작한 고금화 전시작.

작가 고금화가 청바지를 해체한 후 재구성한 작품을 대구의 핫플레이스 카페 ‘별을 헤다’(대구 남구 대명동) 공간에 걸었다. 젊음과 반항의 아이콘인 청바지 특유의 상징성에 작가의 예술적인 감수성이 더해져 격정으로 거듭났다. 올해부터 시작된 작업이다. “어느 순간 청바지의 거친 바느질 선을 보자 가슴이 뛰었어요.”

청바지의 작품 가능성을 발견하자 곧바로 행동에 돌입했다. 주변 지인들에게 옷장에서 묵히고 있는 청바지를 기증해 줄 것을 요청한 것. 결과는 의외였다. 수많은 종류의 청바지들이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왔고, 작가는 쾌재를 불렀다. “원 없이, 마음 가는대로 청바지를 가지고 놀 수 있겠다”는 기쁨의 탄성이었다. “청바지의 대중적 인기를 확인하는 순간이었어요.”

작업의 첫 과정은 수집된 청바지의 해체였다. 주로 주머니나 허리, 바짓단 등 재봉선이 거칠게 지나간 부분들을 중심으로 해체가 진행됐다. 해체된 조각들은 작가의 바느질 행위로 재조합됐고, 해체된 조각들 사이에 전통 색동을 오브제로 곁들여졌다. “바느질한 라인이 좋아서 바느질한 부분을 살려서 이어 붙였어요. 스티치의 점과 바느질한 선이 모여 평면이 되었으니 회화의 기본은 충족된 거죠.”

청바지 작품이 일으키는 반향은 적지 않다. 카페 방문객들이 전시된 작품에 호기심을 보이며 실물 청바지인지 꼼꼼하게 관찰하기도 하고, 일행들과 청바지에 대한 담소를 나누며 추억에 잠기기도 한다.

미술전문가의 반응은 더욱 구체적이다. 서울 소재의 아트페어 참여 갤러리로부터 아트페어 참가 작가로 초청도 받았다. 현재 청바지 작품에 보내는 호의적인 반응에 고무되어 3m짜리 작품 제작을 준비 중에 있다.

“거친 야생마 같은 청바지 본연의 이미지에 젊은 시절 한 번쯤은 입어보았던 기억들이 더해져 관람객들이 청바지 작품에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아요.”

고금화하면 조각보 작가로 통한다. 민화의 소재인 목단이나 새, 옛 여인들이 바느질 도구로 사용했던 골무, 한국색채 미학의 정수인 색동, 전통 복주머니 등의 꼴라쥬를 전통 조각보에 바느질로 접목한 조각보 작품들을 선보여왔다. 조각보는 수집한 전통조각보와 작가가 의뢰해 제작한 현대 보자기 등 다양하게 사용된다.

전통보자기는 옛 여인들의 필수 아이템이다. 손에 잡히는 가까운 곳에 두고 밥상을 덮거나 물건을 싸는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했다. 여인들에게 가장 만만한 도구인 만큼 작가가 만드는 과정도 소박하고 단순했다. 옷이나 이불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을 바느질로 무심하게 이어붙여 만들었다.
 

내몇백년이 흘러 추상회회화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른 몬드리안의 작품에서 전통조각보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게 된다. 직선과 사각이 만들어내는 그의 추상적인 형상들이 전통조각보와 닮아있는 것. “재료가 부족하던 시기에 임기웅변으로 소박하게 만든 전통보자기에서 현대의 그 어떤 미니멀한 아름다움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만큼의 높은 예술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고 작가에 의해 거듭난 보자기 작품은 과거와 현대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작가는 보자기 뿐만 아니라 수집한 버선도 작품의 재료로 활용한다. 유난히 옛여인들의 잡화에 관심을 기울였던 고 작가의 취향 속에는 그녀가 몸담았던 환경이 있었다. 뼈대있는 가문인 윤판관댁 손녀였던 시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여고시절부터 오래된 물건들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수집은 이어졌다. 고가구, 한복, 그릇, 침구류 등 종류를 가지지 않았고, 그 수집력이 자연스럽게 작품 제작으로 연계되었다.

“대학에서 공예과를 전공하고 도자공예와 목칠공예를 먼저 시작했지만 결국 조각보 작품으로 넘어오게 되었어요. 결정적인 계기는 제가 수집해 놓은 조각보에 있었죠.”

조각보를 소재로한 신작도 이번 전시에 내놓았다. 광목이나 삼베, 무명 등의 천을 선의 형태로 잘라 조각보 위에 바느질해 반입체 평면을 구현한 것. 이 작품에도 골무나 색동조각 등의 전통적인 소품들이 꼴라쥬로 사용되었다. 이 작업은 전통조각보 보다 작가가 제작한 조각보가 주로 활용된다. “수집한 전통조각보는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각보를 직접 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버려지는 자투리 천들이 생겨났어요. 그 천 조각들이 의외로 느낌이 좋아서 작업으로 활용하게 되었어요.”

물감 대신 천 조각, 붓 대신 바느질로 작품을 만든다. 바느질이 천과 천, 천 위에 꼴라주를 소통하는 매개물이 된다. 한 땀 한 땀, 작가의 손끝에서 작은 바늘과 얇은 실이 지나간 흔적의 아우라에 알 수 없는 연민과 사랑이 묻어난다. 그녀가 “바느질을 하면 명상 상태에 빠져든다”고 했다. “바느질 선을 낮에 힘겹게 일한 노고를 바느질에 풀어냈던 옛여인들의 감성으로 유희처럼 하면 6~7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무상무념 명상의 경지에서 시간가는 줄을 모르죠. 제게는 바느질 작업이 곧 명상인 것 같아요.”

조각보나 청바지를 바느질을 매개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고 작가. 역사나 소재, 조형성에서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이 두 소재는 작가의 의식에서 하나의 가치로 응집된다. 그것은 바로 ‘숭고함’. 작가가 “시대를 초월한 소시민들의 치열한 삶 속에서 숭고함을 발견했다”고 회상했다. “가장 낮은 위치에서 헌신과 희생의 삶을 살았던 이들의 땀이 배어있는 조각보나 청바지야말로 숭고함의 상징이 아니겠느냐”는 의미였다. 전시는 31일까지. 010-8784-4587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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