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전에도 살았었고, 지금도 살고 있고, 이후에도 살아갈 것이다
우리는 이전에도 살았었고, 지금도 살고 있고, 이후에도 살아갈 것이다
  • 승인 2020.10.1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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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장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미루고 미루던 사망신고를 한 달이라는 신고 기한이 다 되어서야 하게 되었다. 사망신고, 그 간단한 걸 이렇게 한 달 가까이 미루게 된 건 그냥 마음이 그곳을 향하지 않은 이유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은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사망신고와 함께 완전히 행정적으로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된다는 것이 아직은 인정할 수도 없고 정서적으로는 받아들여 지지가 않아서 미루었던 일이었다.
아버지의 장례를 마치고 내 삶은 멈춘 듯 한동안, 멍한 상태가 되었다. 사람은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다. 준비해오던 이별이었지만 막상 이별을 맞이하게 되니 이별은 참으로 아팠다. 아버지의 빈자리가 우리 가족 모두에게 매우 크게 다가왔다. 특히 나는 평생을 아버지와 함께 한집에서 살았다. 결혼하기 전에도 살았고, 결혼하고 난 후에도 줄곧 한 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말 그대로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다.
나보다 아내가 이별을 더 힘들어했다. 아내는 결혼 후 우리 집으로 와서 함께 산 세월이 벌써 22년이 되었다. 결혼하기 전 부모와 함께한 세월과 결혼 후 시 부모와 함께한 세월이 같다. 44년의 절반을 친정에서, 절반을 시댁에서 살았다. 부모와 함께 산 것은 같지만 시집오기 전에는 자신이 돌봄을 받았던 부모였다면, 결혼 후에는 자신이 돌보았던 부모라는 차이가 있다. 아내에게 결혼 후 22년을 함께 한 부모의 빈자리는 참으로 크게 다가온 듯했다.
특히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한 달은 걷지도 못하시고, 드시지도 못해서 갓난아이 돌보듯 보살폈기에 물리적 이별보다 정서적 이별이 더 힘들게 느껴진다고 했다.
이별의 아픔을 뒤로하고 신고 기한이 다 되어서 결국에는 사망신고를 하게 되었다. 서류에 아버지의 이름을 쓰고, 나의 인적사항을 한자씩 적어 내려갈 때마다 아버지와 이 세상의 인연의 끈은 짧아지고 있었다. 서류작성과 사망을 증명할 서류를 제출하고 나서야 담당 공무원의 “다 되셨습니다.”라는 짧은 말 한마디로 아버지와 이별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끝이 나는구나.’라는 생각에 잠겨 헛헛한 마음으로 뒤돌아 나오는데 형제들과 조카들 모두 모인 가족단체 대화방에 반가운 소식이 하나 올려져 있었다. 큰 누나의 아들, 큰 조카가 멀리 말레이시아에서 기쁜 소식을 보내온 것이다. 예쁜 공주님이 탄생했다는 소식이었다. 타이밍이 참으로 묘했다. 한 세대가 가니, 바통 이어받듯 다시 한 세대가 시작된 것이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동영상 보시면서 증손주 보았다고 얼마나 기뻐하셨을지 눈에 선하다.
조카가 보내준 아기의 동영상을 보고 있자니 삶이란 것이 참으로 경이롭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모든 삶을 다하고 사라지고 없어지나 싶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더해지고 덧대져 또 다른 삶으로 영속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이내 깨닫게 되었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죽음으로 끝이 나는 존재가 아니라 또 다른 모습으로 영원히 살아가는 영원불멸의 존재라는 사실을 그 순간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는 이 세상을 떠나고 안 계시지만 아버지의 DNA를 물려받은 많은 자녀가 현재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다시 다음 세대에 걸쳐 아버지는 살아가실 거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했다. 모든 것이 이전 것의 연장 선상에 있다. 즉, 이전 것은 그다음 것에게 영향을 준다. 저절로 혼자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맞물려 돌아간다. 봄이 되면 우리는 새로운 봄이라 해서 새봄이라 이름 붙인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봄은 이전의 겨울과 가을을 품고 있다. 유난히 눈이 많이 온 겨울은 그 이듬해 봄에도 영향을 끼친다. 유난히 추웠던 날씨도 고스란히 봄에 영향을 끼친다.
세상은 돌고 도는 물레방아 같다. 모든 것이 반복으로 완성되어 간다. 해가 뜨고 해가 지고, 바닷물이 밀물과 썰물로 반복되며, 우리의 호흡이 들숨과 날숨으로 반복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전에도 살았었고, 지금도 살고 있고, 이후에도 살아갈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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