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자루 값이 너무 많이 들어요
빗자루 값이 너무 많이 들어요
  • 여인호
  • 승인 2020.10.19 21: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감 선생님, 빗자루 값이 너무 많이 들어요.”

“실장님, 빗자루 살 돈도 없는데 대충 할까요?”

“그건 아니고 너무 무리하시는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아, 그래요. 더 열심히 쓸게요.”

교대부초에서 교감으로 근무할 때 행정실장님과 주고받은 이야기입니다.

영호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기 전부터 비질을 했습니다. 마당을 쓰는 게 맡은 역할이었습니다. 싸리나무빗자루와 대나무빗자루를 번갈아 사용했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는 비질을 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대신초등학교의 운동장 가장자리에 늘어선 느티나무의 낙엽을 쓰는 일, 가을걷이 후에 벼타작을 할 때도 비질을 했습니다.

영호가 경험한 가장 어려운 비질은 벼타작을 할 때입니다. 당시의 벼타작은 탈곡기로 했습니다. 발판을 발로 밟아서 원통형의 탈곡기를 돌리면서 볏단의 벼알갱이를 훑어냅니다. 탈곡기 앞에는 벼알갱이와 볏짚 부서진 지푸라기가 함께 뒤섞여서 떨어집니다. 갈퀴로 벼알갱이와 지푸라기가 뒤섞인 것을 끌어내서 넓게 폅니다. 허리를 최대한 굽혀서 왕대나무빗자루를 수평으로 해서 지푸라기 쓸어냅니다. 지푸라기만 쓸리도록 비질의 강도도 적절하게 해야 합니다. 이 과정이 어설프면 다음 과정인 풍구질을 하는 데 더 많은 힘이 듭니다.

1993학년도에 대구경운초등학교 5학년 6반을 담임할 때는 교문 주변의 나무가 많은 곳이 청소 구역이었습니다. 가을부터 봄이 될 때까지 하루에 두 번씩 낙엽을 쓸었습니다. 남자 아이들이 서로 청소를 하려고 경쟁을 했습니다. 청소를 마치고 먹는 라면이나 어묵 때문입니다. 아침에 청소를 하기 전에 미리 학교 앞 분식집에 라면을 주문해 놓았습니다. 비질을 마치고 1교시 공부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아이들과 함께 허겁지겁 라면을 먹던 때가 엊그제 같습니다.

2013년 9월 1일부터 대구태현초등학교 교감으로 근무하면서 매일 교문 주변을 쓸었습니다. 낙엽이 문제가 아니라 담배꽁초가 너무 많아서 아이들 보기에 민망했습니다. ‘깨진 유리창 법칙’에서 보듯이 더러운 곳은 점점 더 더러워집니다. 2014년 9월 1일부터 대구교육대학교대구부설초등학교 교감으로 근무를 하면서도 매일 같이 교문 주변 비질을 하고 아이들을 맞이했습니다.

2019년 3월 1일부터 대구교동초등학교 교장으로 근무할 때도 비질을 했습니다.아침 8시 전후로 빗자루를 들고 교문으로 나갔습니다. 일주일에 2~3일은 교문에서 비질을 하고 아이들을 맞이했습니다. 2~3일은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맨발축구를 했습니다. 노란 은행나무잎이 떨어질 때는 한쪽으로 모아 두었습니다. 아이들이 길 가장자리의 낙엽을 감상하면서 계절의 변화를 생각하는 행복한 등굣길이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2020년 9월 1일부터 대구교육대학교대구부설초등학교 교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의 친구 한 분은 교대부초 교문 앞이 더 깨끗해지겠다는 덕담도 주셨습니다. 학교의 주사님 두 분이 교문 앞까지 청소를 해서 교감 때 같이 매일 교문 주변을 쓸지는 않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아이들의 등교 시간이 거의 1시간 정도로 길어져서 비질보다는 등굣길 아이맞이에 더 신경을 씁니다. 대신에 가끔씩 등교 시간이 끝나고 낙엽 청소용 송풍기로 교문 앞과 등굣길 청소를 합니다.

비질은 청소, 정돈, 청결의 의미가 있습니다. 빗자루는 그 목적을 달성하는 도구입니다. 영호는 준비, 정리, 인내, 수양, 겸손의 의미까지 더하고 싶습니다. 준비는 새로운 만남을 위한 것입니다. 정리는 마무리이자 새로운 만남의 의미도 있습니다. 지속적인 비질은 필연적으로 인내를 동반합니다. 그 과정에서 시나브로 마음의 수양과 겸손도 따라올 것입니다.

영호의 수업철학이자 인생철학은 절차탁마(切磋琢磨)입니다. 절차탁마는 자르고 썰고 쪼고 가는 옥을 만드는 네 가지 과정입니다. 그저 세월만 흐른다고 좋은 수업이나 인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수업이나 인생도 부지런히 비질을 하는 게 절차탁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빗자루 값 걱정 없는 마음빗자루 하나씩 준비하면 어떻겠습니까? 그 마음빗자루에 이름도 붙이면 좋겠습니다. 영호는 마음빗자루는 절차탁마입니다. 근심걱정은 깨끗이 쓸어버리고, 좋은 일은 널리 퍼트리는 마음빗자루 하나씩 준비하시지요. 당신의 마음빗자루 이름은 무엇인가요?



김영호 대구교육대학교 대구부설초등학교 교장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