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례를 위해 입은 붉은 스란치마
삼베옷처럼 색이 바랬네
목이 부러져라 겹쳐 쓴 붉은 족두리
화관이 빛을 잃었네
꽃 지는 일, 쉽다고 누가 말하나
겹겹이 차려입은 강철갑옷
화려한 다홍치마
한창 빛 고운 절정에서 벗지 못했을까
합방을 놓친 신부가 매달려 있네
신랑도 없이
신방을 차린 나무에
제 몫의 수분을 다 한 꽃들
미련 없이 뛰어내릴 때
기꺼이 뛰어내리지 못한 꽃들의 조바심을
짐작하는 봄날, 동백은
쉽게 목을 던진다고 누가 말하나
홑치마처럼 가벼이 봄날은 지나가는데
붉은 당의 누런 삼베옷 되도록
나무에 목을 매단 채
기다리고 기다리는 저 끝없는 기다림을
시들었다고 감히 누가 말하나
-시집 <장미키스>
◇최정란= 경북 상주 출생, 계명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계명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여우장갑』 『입술거울』 『사슴목발애인』 『장미키스』,<요산창작기금> <부산문화재단창작기금> 2016년
제7회 <시산맥작품상> 2017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해설> 떨어지지도 못하는 시든 꽃잎 하나, 신방을 차리고도 첫날밤조차 지새우지 못한 신부로 환치되는 정황에 명치끝이 아려온다. 한데 우리는 저 시든 꽃잎 애정의 파노라마는 말하지 않는다.
천수를 다하고 미련 없이 뛰어내리는 꽃잎으로 클로즈업되지 못하는 신부의 처참한 심정이 적나라하게 표출되고 있어 시의 정감미가 독자 가슴을 짜릿한 황홀감에 젖게 한다. -제왕국(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