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가도]잘 정렬된 서가를 보듯…학덕에 대한 열망 표현
[책가도]잘 정렬된 서가를 보듯…학덕에 대한 열망 표현
  • 윤덕우
  • 승인 2020.10.21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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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책장과 책 중심 회화
학덕을 쌓기 위한 의지 표현
사대부 사이서 큰 인기 끌어
서양화서 창안한 표현법 소화
역원근법·다시점·입체감 특징
시간 흐르며 화훼와 과물 등장
정조 “비록 책을 읽을 수 없어도
서재에 들어가면 기분이 좋아져”
학문으로 나라 살피겠단 의지

[박승온의 민화이야기] 존엄을 위한 그림 ‘책가도’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가을은 언제부터 '독서의 계절'이 되었을까? 이같은 원초적 궁금증이 생길 만한 이유가 있다. 가을은 통념과 달리 1년 중 책이 가장 안 팔리는 계절이란다. 한마디로 가을은 '이름값'을 못하는 계절이다. 책 판매량만 놓고 보면 의외로 여름이 독서의 계절이다. 여름철 책 판매량은 다른 계절보다 15% 가량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책을 안 읽는 계절인 가을은 언제부터 무슨 이유로 독서의 계절이 됐을까.

출판업계에 따르면 가을이 독서의 계절로 규정된 것은 농경 문화의 관습에서 유래한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흔히 가을에 독서를 장려하기 위해 쓰이는 사자성어인 '등화가친(燈火可親)'은 그런 관습을 담은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등화가친(燈火可親)은 당나라 시인 한유(韓愈)가 아들의 독서(讀書 : 책읽기)를 권장하고자 지은 《부독서성남시 符讀書城南詩》 가운데 한 구절에서 비롯된 성어이다.

時秋積雨霽(시추적우제)

新凉入郊墟(신량입교허)

燈火稍可親(등화초가친)

簡編可舒卷(간편가서권)

여기서 <등화가친 燈火可親>은 <등화가친지절 燈火可親之節>의 줄임말이다. 가을을 가리키는 이 말은 곧 <가을이 날씨가 서늘하고 하늘이 맑으며, 수확이 풍성해 마음이 안정되어 공부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라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

한 해 농사를 마쳐 먹거리가 풍성한 가을은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공부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가을의 넉넉함 덕분에 마음을 쌀 찌울 수 있는 여건도 됨으로 이처럼 독서의 계절로 자리매김했다는 설명이다.

이제 책의 계절에서 책이 있는 그림으로 이야기를 옮겨보자.

책거리는 책가도의 순 우리말이다. 길거리, 반찬거리, 볼거리, 일거리, 굿거리라는 말처럼 '거리'는 명사와 결합하여 '내용이 될 만한 재료'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책거리에서 '거리'는 '구경거리'의 뜻으로 사용하는데 책을 중심으로 늘어놓았거나 책장 속에 배치해 놓은 여러 문방구나 관련한 물건들을 구경한다는 말이다.

책거리의 종류를 구분할 때 특히 시렁 위에 책과 물건을 올려놓고 그린 그림을 책가도라고 부르며 시렁 없이 서안이나 방바닥 위에 책과 문방사우 등 상징적 의미가 있는 과일과 꽃을 함께 넣어 그린 그림을 책거리라고 구분한다. 시렁이 들어간 그림도 책거리라 부르기 때문에 책거리라는 명칭이 책가도 보다 더 넒은 의미의 명칭이라고 할 수 있다. 책거리 속 책은 구체적인 제목을 가진 책이 아니라 그냥 지식과 학문이라는 뜻을 가진 상징으로 사용한다. 그것에 반해 책과 함께 등장하는 사물은 구체적인 쓰임새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책가도의 핵심은 책이다. 조선시대는 학문과 지식을 숭상한 선비의 사회였다.

학문은 최고의 가치였고 관직이나 출세, 혹은 권력의 중심에는 언제나 학문이 있다.

책은 예나 지금이나 지식과 학문의 상징이며 마은의 양식이라고 하지 않는가! 책가도는 주로 글 읽기를 즐기고 학문의 길을 추구하던 선비의 사랑방이나 서재에 두어 책을 아끼고 늘 가까이 두겠다는 그들의 마음을 반영하는 그림이다. 학덕을 쌓아 큰 뜻을 이루기 위한 문인들의 소망과 열망, 학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그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사랑방에 책거리 병풍을 펼쳐놓았다는 것은 '학문에 정진한다', '학문을 사랑한다', '학문을 통해 출세를 하겠다', 혹은 '나의 지식과 학문이 이렇게 많고 깊다'라는 복합적인 의미를 간접적으로 전달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초창기 책거리 그림은 그야말로 책을 넣을 수 있는 가구와 그 안에 채워진 책이 중심이었다.

김훈책가도- 임수식
책가도/10첩 병풍/비단에 채색/ 각 161.7*39.5cm/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서기 791년 조선의 중흥 군주라는 정조(재위 1776~1800)는 자신의 집무실에 군왕의 상징 그림이라는 '일월오봉도'를 내리고 이른바 책가도(冊架圖) 병풍을 내걸었다.

정조가 일월오봉도 병풍을 내리고 책가도 병풍을 건 이유가 무엇일까. 이때 정조와 신하들과의 대화가 실마리를 풀어준다. 정조는 책가도 그림을 내건 뒤 신하들에게 "경들은 보이느냐"고 물었다.

"보입니다."

그러자 정조는 신료들을 놀리는 듯 하며 "경들은 이것을 진짜 책이라 여길지도 모르지만 그림이다."라며 일월오봉도를 내리고 책가도 그림을 건 이유를 밝힌다.

"정자(북송의 정이천·정명도 형제)가 이르기를 '비록 책을 읽을 수 없더라도 서재에 들어가 책을 어루만지면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의 의미를 이 그림으로 인해 알게 되었다."

원래 왕의 뒤편에 있던 그림은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 병풍을 치우고 책가도를 내세우며 글과 학문으로써 세상을 다스리겠다는 의지를 천명한다. '공부, 제대로 하라'는 당대의 지식층을 향한 묵언의 일침이기도 했다. 당시 유행하던 패관소설과 잡서, 그곳에 담긴 '속된' 문장을 바로잡는 것 역시 '책 정치'의 목적이었다.

이 책가도 병풍을 잘 그린 화가는 바로 단원 김홍도(1745~?)였다. 이규상(1727~1799)의 저서 '일몽고'에서 "김홍도는 서양의 화법을 모방했는데, 이 법을 따라 그린 그림을 한 눈을 감고 보면 그림 속의 모든 물건이 잘 정돈되어 서 있는 것 같이 보인다"면서 "세속에서는 이를 책가화라 칭하며 반드시 채색을 가했다"고 전했다.

책가도는 정조 임금 이후 잘난 체 하는 사대부 사이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규상은 "귀한 신분의 사람들은 너도나도 이 그림을 벽에 붙여놓고 유식한 체 했다"고 전했다. 책가도는 주로 글 읽기를 즐기고 학문의 길을 추구하던 선비의 사랑방이나 서재에 두어 책을 아끼고 늘 가까이 두겠다는 그들의 마음을 반영하는 그림이다. 학덕을 쌓아 큰 뜻을 이루기 위한 문인들의 소망과 열망, 학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그림으로, 서양이나 중국에서처럼 그저 골동품 같은 온갖 물품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책 위주의 책거리 그림을 그것도 2차원 병풍으로 항상 뒤에 두고 감상하면서 지식에 대한 욕망을 드러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책가도 그림은 민간에 퍼지면서 다양한 형태로 바뀌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책가도는 다른 장르의 민화와 달리 입체적인 느낌이 나도록 사물을 표현한 것이 특징이며, 책이나 포갑의 형태를 보면 가까운 쪽이 좁고 먼 쪽으로 갈수록 넓어 보이는 역원근법을 사용하여 그려진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책과 사물들은 각각 다른 쪽을 향하고 있어 한 화폭에 여러 면에서 바라본 시점을 그리는 다시점기법을 사용하였다. 게다가 책가의 상단은 시선을 아래에서 위로 향하게 하고, 중단은 정면, 하단은 위에서 아래도 내려다보이게 그려 나름의 질서를 취하고 있으며 이는 조선시대 궁중 책가도에서 보이는 다시점기법과 같은 방식이기도 하다.
 

김훈책가도- 임수식
장한종 책가도 8폭 병품 지본채색 195 x 361 cm 지본채색 경기도 박물관 소장

얼핏 파격적인 화면 구성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물들의 공간배분이며 전체적인 구조는 혼란스럽지 않고 조화로우며 오히려 간결해 보이기까지 한다. 서양화 기법에서 창안한 독특한 시각과 역원근법의 표현으로 책장 속의 사물들이 강조되어 보이고 입체감을 돋보이게 하는 효과를 준다. 이러한 책가도의 비현실적 표현 구사가 오히려 민화의 매력으로 다가오는 점이기도 하다. 고관대작의 상징인 공작과 산호 등은 물론, 다산과 풍요를 의미하는 불수감(부처님 손을 닮은 과잉)과 석류, 포도, 오이, 수박, 가지 등과, 장수와 성공, 부부 금슬 등을 뜻하는 잉어, 금붕어, 나비, 호랑이 등까지 책 뿐 아니라 다양한 그림을 책가도에 그렸다.
 

김훈책가도- 임수식
책가도 19세기말~20세기 초 지본채색 호주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상설전시

책가도는 이렇게 정조에서 비롯되어 19~20세기 민간에까지 대유행한 그림이다. 그런 책가도 1점과 함께 연꽃을 주제로 그린 연화도 1점이 국내 문화재 가운데는 처음으로 합법적인 경로를 통해 외국에 영구 반출되었다. 문화재청은 근대에 제작한 전통 회화 병풍 '책가도'(冊架圖·19세기말~20세기초)와 '연화도'(蓮花圖·20세기초)를 호주 멜버른 빅토리아 국립미술관으로 영구 반출하기로 했다. 빅토리아 국립미술관은 1861년 설립된 호주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미술관이다. 미술관측은 미술관의 '한국실'이 중국실이나 일본실에 비해 전시품이 크게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해외전시가 가능한 한국 문화재를 조사한 끝에 이들 문화재 2점을 소장자로부터 정식구매한 뒤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이 책가도는 이제 호주로 이민(^^;)을 가게 된 것이다.

이제 오늘날의 현대적이며 색다른 책가도를 만나 보자.
 

김훈책가도- 임수식
임수식 작 ‘소설가 김훈의 책가도’ 한지에 프린팅 후 바느질. 서울도서관 소장.

진짜 말 그대로 책장 속 책이 쌓여 있다. 임수식 작가는 사진작가이다. 2007년부터 10년간 책가도를 사진예술로 표현하고, 지난 10년간의 조선시대 '책가도'의 역원근법의 시점과 다시점의 표현방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계승한 임수식의 '책가도'는 우리 시대 작가들의 초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먼저 서재 사진을 찍어 한지로 프린트 한 후 손 바늘질로 이어 하나의 책가도를 완성하는 단계를 수행하면서 책가도의 전통미와 서재와 책의 이야기들을 하나에 담아냈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가 어우러진 그의 책가도는 우리가 만나고 싶어 했던 유명 작가들의 책가도와 더불어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내어 책과 사람을 작가의 시선에서 담아냈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현대적 책가도라고 생각한다.

몇 해 전 일본의 유명한 건축가 안도타다오의 건축물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일본의 국민소설가 시바 료타로 (司馬 遼太郞) 기념관이었는데 바닥부터 천장까지 책장이었고 그가 수집한 수 만권의 책이 꼽혀 있었다. 조선시대의 정조 임금이 그 장면을 보았다면 자신의 집무실도 그렇게 만들었을 거라는 상상도 해보았다. 책가도에 심취해 있었던 필자 역시 너무 부러웠고. 언젠가는 나도 저런 공간을 만들어 보리라는 다짐도 하게 되었다.
 

김훈책가도- 임수식
시바료타로 기념관의 서재

다시 처음 책가도로 돌아 가보자. 책가도를 방 한 켠에 펼쳐 두고 이를 배경삼아 열심히 책을 읽고 있을 선비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그의 삶과 내면이 그림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듯하다. 책가도는 기본적으로 과시나 멋 부리기가 아닌 흐트러지지 않는 선비 자세의 표현한 것이며, 이렇게 자신의 내면을 수양하면서 타인이 보게 될 자신의 존엄을 위한 그림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책가도라는 그림에 뜻을 담아 그렇게 살고자 노력했던 선조들의 자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박승온·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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