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석 위에 떨어진 것과 뒷간에 떨어진 것(추인낙혼)
방석 위에 떨어진 것과 뒷간에 떨어진 것(추인낙혼)
  • 승인 2020.10.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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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대구예임회 회장
전 중리초등학교 교장
며칠 전 횡성에 있는 청태산자연휴양림에 갔다. 그곳은 벌써 참회나무, 들메나무, 함박꽃나무, 귀룽나무의 잎이 떨어져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숲속 산책로를 걸었다. 시점이란 시간의 흐름가운데 ‘어느 한 순간(찰나)’을 말하는데. 자연에 존재하는 만물의 이치가 순간마다 참 오묘함을 느꼈다.

아인슈타인은 ‘1초란 늘 일정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관찰자)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그 길이가 틀려진다’고 말했다. 지구의 1초가 우주의 1초와는 다르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대구의 시공간이 청태산자연휴양림과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일체 만물은 모두 상대적 의존관계에 의하여 형성된 것을 불교에서는 ‘인연(因緣)’이라 하였다. 인연은 주관과 객관에 따라 동시적 의존관계가 되기도 하고, 원인과 결과에 따라서 이시적(異時的) 의존관계가 되기도 한다고 한다. 결과를 만들어 내는 직접적인 원인을 인(因)이라 하고, 그 인(因)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간접적인 결과물을 연(緣)이라 한다.

그렇다면 나무의 자람도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의 상대적 의존관계에 의하여 인연을 맺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동시적이든 이시적이든 원인이 되는 결과의 과정인 것이다.

‘추인낙혼’이라는 말이 있다. ‘방석 위에 떨어진 것과 뒷간에 떨어진 것.’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사람이 때를 잘 만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음을 비유한 말이다. 일종의 복불복(福不福)과 같은 운수이기도 하다.

중국 양나라 때의 학자 범진(范縝)은 불교의 인연설을 믿지 않았다. 당시 남제의 경릉왕 소자량(蕭子良)과 ‘인연’에 대한 논쟁을 벌였다.

범진은 “사람의 삶을 나무에 핀 꽃에 비유해봅시다. 모두 동시에 한 가지에서 피고, 같은 꼭지에서 열립니다. 그렇지만 바람이 불어 떨어질 때는, 어떤 것은 궁궐의 주렴 휘장에 스쳐서 방석위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것은 울타리 담장에 걸려 뒷간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방석 위에 떨어진 것은 바로 전하의 경우입니다. 뒷간에 떨어진 것은 바로 소인과 같은 경우입니다. 부귀하고 비천한 것은 분명 길이 다릅니다. 여기에 무슨 인연이 있겠습니까?”하고 ‘추인낙혼’을 이야기 하였다. 소자량도 굴하지 않고 “참 괴이한 생각이요.”하였다.

범진은 부귀와 빈천은 길이 다르다고 했다. 우리는 걸어 다니는 길을 ‘도(道)’라고 한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하는 이치, 만물을 만드는 음양의 법칙, 우주의 질서도 도이다. 숲속 산책로에 있는 여러 갈래의 길처럼 도는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노자는 ‘천하에 도가 행해지면, 파발마로 쓰는 빠른 말은 농사에 긴요하게 쓰이게 된다. 그런데 천하에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전쟁하는 군마가 도성 밖에 우글거리며 반란의 기회를 엿보게 된다. 욕심이 많은 것보다 더 큰 죄는 없고,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불행은 없다. 남의 것을 욕심 부리는 것보다 더 큰 허물은 없다. 그런 까닭에 이것이면 넉넉하다고 생각하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항상 넉넉하다.’고 했다.

공자도 ‘천하에 도가 행해지면, 예악과 군사에 관한 일이 지도자에 의해 결정된다. 천하에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예악과 군사에 관한 일이 아랫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나라의 운명이 위태롭게 된다.’고 했다. 맹자 역시 ‘천하에 도가 행해지면, 도를 가지고 몸에 따르게 하고, 반면 천하에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몸을 가지고 도에 따르게 한다. 여태껏 도를 실행하는 사람이 남을 따른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고 하였다.

어떤 일이 지루하게 계속됨을 비유하여 ‘갑주생기슬(甲胄生기蝨)’이라 한다. 전쟁을 오래하면 병사들의 ‘갑옷과 투구에 서캐와 이가 생긴다.’는 뜻이다. 코로나19도 잔인한데, 정치지도자들의 싸움은 너무 지루하다. 천하에 도가 행해지지 못하는 까닭이다. 모두들 방석 위에 떨어진 것과 뒷간에 떨어진 것의 차이일 뿐일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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