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준 것 같고 더 받은 것 같은
덜 준 것 같고 더 받은 것 같은
  • 승인 2020.10.2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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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우체국에 들었다. 구석진 자리에 자릴 잡고 앉은 그녀가 눈에 들어온다. 스카치테이프를 자르거나 이어 붙여가며 무엇인가 정성껏 포장 하고 있다. 모양대로, 크기대로 분류한 뭉치마다 빼곡하게 글씨를 적은 포스트잇을 붙인다. 꽤 큼지막해 보이는 상자 속을 미어터지도록 채워 넣는다. 누구에게 어디로 보내는지 궁금했지만 애써 물어보진 않았다. 다만 내가 선물을 받은 것처럼 그녀 곁에서 덩달아 설레었다.

자판기가 건네준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그녀의 분주한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앉아 있다. 어쩌면 받는 것보단 줄 때가 더 행복한 일일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본다. 택배를 창구에 맡긴 후, 옆자리에 나란히 앉은 그녀는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농사라고는 처음이라고 한다. 처음 수확한 깨로 손수 짠 참기름 한 병도 함께 넣었다며 가지런한 이가 보이도록 환하게 웃는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고 쓴 청마 시인의 시구를 알사탕처럼 입안에 넣고 살살 굴려본다. '결혼 축하해'라며 깨소금 볶듯 고소하게 잘 살라는 덕담을 주고받는다. 상대의 음성까진 들을 수 없었지만 들뜬 그녀의 목소리는 오래도록 내 기억의 창고에 저장되어 윤슬처럼 반짝인다.

"제가 뭘 한 게 있나요 하늘이 주신 선물인걸요."

서른 두 해를 함께 살아온 큰딸이 얼마 전, 시집을 갔다. 예전과는 달리 시대가 많이 변했다며 요즘은 '딸을 보냈다'라기 보다간 '사위를 얻었다'는 말이 오히려 더 맞는 말이라고들 한다. 떠난 건지 떠나보낸 것인지, 얻은 건지 잃은 것인지 아직은 잘 알 수 없지만, 삶이란 시소와 같아서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준 것이 있으면 받을 때가 있는 것이란 걸 안다. 하지만 어떤 일을 어떻게 경험하듯 한참 지나 돌아보면 늘 덜 준 것 같고 더 받은 것 같은 후회 같은 것이 들불처럼 일었다. 결혼식을 치르고 돌아와 부조(扶助)금 노트를 펼쳐 본 후, 그러한 생각이 더더욱 굳혀지는 계기가 되었다. 정작 기다리던 사람은 오지 않았고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이 오기도 했으니까.

아무리 좋은 파스도 오래 붙였다 떼어내면 가장자리엔 울타리처럼 시커먼 테두리가 쳐지고 흔적이 남듯,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떠나고 남은 자리엔 어김없이 흔적이 남는다. 끈끈한 느낌까지도. 그러한 흔적들이 모여서 추억이 되고 그리움이 자라듯.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던 시인은 누구에게 한 번이라고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묻는다. 이 가을 누군가에게 파스 한 장도 되어주지 못하고 산 건 아닐까 되돌아본다.

사랑을 주기만 하는 사람은 퍼내면 퍼낼수록 차고 넘치는 샘물이 되지만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는 사람은 조금만 퍼내도 바닥을 드러내는 우물과 같을 것이다. 인도의 성자 까비르의 '천국으로 가는 시'중에는 ?'물속의 물고기가 목마르다' 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는 시구다.

"물속의 물고기가 목마르다는 것을/ 듣고 나는 웃는다./ 진리가 그대의 집 안에 있다는 것을/ 그대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대는 숲에서 숲으로/ 기운 없이 방황한다./ 여기에 진리가 있다!/ 어디든 가고 싶은 곳으로 가보라,/ 베나레스로 마투라로/ 그대의 영혼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세상은 환상에 지나지 않으리라"

누군가에게 '사랑한다', '고마웠다'는 말과 함께 작은 정성을 담은 선물을 마침 하게 잘하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엇인가 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받는 것보다 더 많은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한다면 물속의 물고기처럼 늘 목이 마를 것이다.

하루를 24시간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1,440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듯 천국이 따로 있지 않다. 내가 사는 곳, 이곳이 천국이 됐다가 지옥이 되기도 한다. 누구나 하루라는 시간의 선물을 받는다. 하지만 시간은 이월되지 않는다, 다만 쓰고 갈 뿐. 오늘이라는 주어진 시간 안에 매우 즐겁고 알차게 다 쓰고 살기를 바라본다. 혹여 흐지부지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가는 줄도 모른 채 넋 놓고 앉아 그냥 흘려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어가는 가을 저녁 가슴이 미어터지도록 껴안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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