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 그림 같다는 말, 내겐 칭찬” 갤러리 오모크, 신수원 개인전
“어린아이 그림 같다는 말, 내겐 칭찬” 갤러리 오모크, 신수원 개인전
  • 황인옥
  • 승인 2020.10.26 2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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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장으로 외유내강 묘사
기존 양식 벗은 천진난만 화풍
소재 잇는 연결고리는 ‘이야기’
여유롭고 싶어 주제 ‘안단테’로
신수원작-안단테
신수원 작 ‘안단테’

고래등1
신수원 작 ‘고래등’

낮은 언덕 위에 튤립이 만개했는데 초현실에 가깝다. 하늘에 닿을 듯한 대형 튤립과 땅에 붙은 튤립이 대비를 이루며 방긋 웃고 있다. 꽃밭 사이에 난데없이 오선지에 음표도 등장한다. 전통 원근법이 무시된 것도 모자라 꽃의 형태와 색채까지 작가의 미적 감각으로 재해석 됐다.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이라고 해도 믿길 만큼 작품에 동심의 천진난만함이 스며있는 작가 신수원의 작품이다.

신 작가가 “내 그림을 보고 우리 아이에게 ‘참 잘 그렸다’며 칭찬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기쁘다”며 환하게 웃었다. 중견에 접어든 작가의 작품을 두고 “어린아이 같다”는 평가가 충격일 수 있지만 그녀에게는 자신의 의도가 받아들여진 것 같아 칭찬으로 들렸던 것.

신수원의 23번째 개인전이 갤러리 오모크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은 ‘Andante andante…’. 가파른 호흡으로 쫓기듯 작업했던 지난 시간에 대한 회환과 “삶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라는 최근의 깨달음이 반영됐다.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온 저를 돌아보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올해는 좀 더 느리게 여유를 가지고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그 염원이 ‘Andante’라는 주제로 녹아졌어요.”

동심을 기반으로 한 순수한 그림이 시작된 것은 2010년부터. 병 속에 여자의 인체를 그리는 등 페미니스트적인 그림을 그리다가 불현 듯 페미니즘이 자신의 옷이 아니라는 자각을 하면서 ‘정체성 찾기’가 시작되면서 나온 형식이다.

당시 ‘정체성 찾기’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는 의외의 경험에서 풀렸다. 꿈이었다. “어느 날 꿈을 꾸는데 제가 어린 시절 살았던 경주의 시골집이 나왔어요. 꿈에 비친 고향 경주의 풍경은 너무 예뻤어요. 창으로 들어오는 푸른 소나무와 누른 가을 들판에 탄성을 질렀죠.”

2010년부터 5년 간은 민화의 형식을 빌려 경주 왕릉을 산처럼 그리고 집과 닭, 나무, 새 , 꽃 등에 작가의 해석을 가미했다.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역시 동심 특유의 순수. 그러나 2015년이 되면서 어린시절 추억은 바닥을 드러냈다.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한 시점. 그때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프랑스 유학 초기 6개월은 그야말로 혼돈이었다. 남편과 아이를 두고 그림을 위해 혼자 결행한 프랑스행이었지만 막상 도착하자 불안감이 엄습했고, 그녀는 흔들렸다. 6개월간 열병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긴 아픔의 시간을 신고식처럼 치른 후에야 비로소 프랑스가 보이기 시작했고, 1년 반을 여행을 다녔다.

프랑스 유학 생활 2년만에 2회의 개인전을 열고 귀국했다. 자신을 찾기 위한 여정이었는데 2년만에 해답을 찾아 미련없이 돌아왔다. “프랑스에서 현재의 제가 보였어요. 그때부터 현재의 제가 보거나, 경험하거나, 생각하거나, 골똘히 고민하는 것들을 그리기 시작했죠.”

그림에 등장하는 단골소재에 튤립이나 새, 피아노, 말, 선인장, 기차 등이 있다. 작가는 이러한 소재에 관념을 개입시킨다. 겉은 거칠지만 속은 부드러운 선인장에 외유내강의 자신을 비유하거나 피아노에 어린시절 짝사랑을 회상하고, 새에는 남을 비방하는 세태를 꼬집는다.

순수한 형상과 대조적으로 색채는 화려하다. 색이 거침없이 쓰였다. 색에 대한 과감성 역시 어린시절의 영향으로부터 왔다. 옆집에 살던 화가가 오방색으로 그린 무당 그림과 창으로 들어오던 경주의 자연 색상들이 강렬하게 뇌리에 남았고, 작업을 하면서 잠재된 색채들이 올라왔다.

“어린아이들이 본능적으로 색을 쓰듯이 저도 계산 없이 무의식적으로 색을 씁니다. 제 색채의 느낌은 따뜻함인 것 같아요.”

매해 주제를 달리해 개인전을 열었고, 그에 따라 그림의 내용도 달라졌다.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그림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작가가 자신의 그림을 일기에 비유했다. “나의 일상을 그림의 소재로 했기 때문에 스토리가 고갈될 이유는 없었어요.”

일기 같은 그림은 스토리가 필수다. 소재 자체의 의미나 소재들 간의 구성에는 필연적인 이야기들이 얽혀야 한다. 작가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한 점의 그림이 한 편의 동화처럼 이야기로 넘실댄다.

일기같은 그림의 영감은 여행을 통해 얻는다. 제주나 네팔 등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여행을 떠나고, 여행길에서 만난 풍경이나 사람, 동물들에서 영감을 받아 그림으로 표현한다. 지금은 제주와 경주, 프랑스 풍경들이 혼재되어 하나의 화폭에서 어우러지고 있다.

“제가 아는 풍경들을 하나의 화면에서 재구성해요. 그 풍경은 저의 내면의 풍경이자 제가 꿈꾸면서 제가 만드는 세상이죠.” 전시는 31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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