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부용정(芙蓉亭)
[문화칼럼] 부용정(芙蓉亭)
  • 승인 2020.10.2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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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대구문화예술회관장
가을이 깊어가는 지난 22일, 23일 이틀간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특별한 음악회가 열렸다. 엄밀히 말하면 회관 경내는 아니고 바로 앞 성당 못에 자리한 정자 '부용정'에서 열린 공연이다. '귀정'이라는 타이틀의 국악공연이 가을밤을 아름답게 물들였다. 이틀간 부용정을 찾은 관객은 매우 특별한 체험을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장소가 특별했고, 이 곳에서 들을 수 있는 최상의 음악 체험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코로나19 방역관계로 찬 기운에도 불구하고 창문을 연채 공연을 진행하였고 따뜻한 차 한 잔도 대접을 못했다. 하지만 이런 미안함과 불편함을 뛰어 넘는 연주회여서 다들 추억에 남는 시간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성당 못은 조선 중엽 채 씨 성을 가진 판서가 살던 집터였다. 그런데 이 곳이 임금이 태어날 명당이라 하여 나라에서 땅을 파서 못을 만들었다 한다. 이를테면 원천봉쇄. 지금과는 매우 다른 옛 모습을 기억하는 우리또래 들에게 이 못은 인공호라기보다는 자연적으로 생성 된 듯한 느낌의 저수지 이었다. 산기슭에 자리한 못은 매우 거칠고 야생적이며, 스산하기도 했고 조금은 으스스한 모습이었다. 오랫동안 외진 곳으로 남아있던 이곳은 80년대 초에(내 기억에---) 두류공원으로 개발되었다. 그리고 30년 전에 문화예술회관이 자리하며 이 일대는 문화예술의 메카가 되었다.

못 한쪽에 자리한 부용정은 고즈넉하고 운치 있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이것을 공연 목적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따라서 긴 세월동안 부용정은 멀리 바라만 보는 존재 또는 포토 존으로 존재했다. 부용정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다리 '삼선교' 역시 지금은 금지된 행위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저 다리위에서 아래를 내다보며 잉어 먹이 주는 용도로 더 많이 써왔다. 하지만 부용정안에 들어가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이곳이 공연장이라는 것을. 열십자 모양의 실내 남측은 약 30센티 정도 높게 되어 있다. 이곳이 무대다. 그리고 아담한 사이즈의 이 공간은 기계음향을 배제한 자연 그대로의 사운드를 듣기에 최적화 된 곳이다.

국립국악원 정악단, 민속악단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공립 국악관현악단은 창작국악을 주로 다룬다. 정악, 민속악과 달리 창작국악의 표현을 위해서 대규모 편성에 꽉 찬 사운드가 필요하기에 기계음향을 많이 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창작국악이 서양 교향곡 풍의 모습을 지향하고 있으며 국악단의 구성 역시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는 옳고 그름의 차원을 넘어서 하나의 시대적 흐름이기도 하다. 인정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런 한편 아쉬움 역시 존재한다. 우리 음악의 결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잘 만들어진 창작국악은 많은 사랑을 받는다. 우리음악의 발전된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종묘제례악, 아악 등을 제외하면 뭐니 해도 국악의 참맛은 풍류방 음악이라 할 수 있다. 국악기의 음향 특성은 서양악기와 많이 다르다. 큰 홀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서양악기와 달리 우리악기는 사랑방에서, 바로 옆에서 듣기에 적당하다. 그럴 때 우리음악의 결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즉 기계음향을 통해 확장된 사운드 보다는 풍류방에서 고요히 들을 때 우리 악기, 음악이 가진 정서가 우리 몸과 마음에 잘 스며들 수 있는 것이다. 그 차이는 말로 설명이 힘들다. 아무튼 큰 공연장에서 연주자를 멀리보고, 확장된 음향으로 듣는 것과 사랑방 같은 곳에서 농현의 손짓과 사운드를 가까이 직접 보고 듣는 것의 감동은 전혀 다르다.

성당 못 부용정이 만들어진 후 30여 년 동안 우리는 겉모습만 보아왔다. 이번에 처음으로 만든 목적에 걸맞게 부용정안에서, 공간에 가장 어울리는 우리음악 공연을 가지게 되었다. 부용정으로 건너가는 삼선교 양측에 약 스무 개의 청사초롱을 밝혀 관객의 발길을 이끌었다. 밤이 깊기 전 조명이 켜진 성당 못과 부용정은 계절의 정취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에, 멋진 공간에서 우리음악의 단정하고 소담한 선율이 울려 퍼졌다. 특히 대구가 자랑하는 시립국악단 수석 단원을 중심으로 한 연주는 최고였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들의 뛰어난 기량은 익히 알려진 바 이지만 이번 부용정 음악회는 가을, 공간의 아름다움 그리고 최적의 음향조건 특히 바로 눈앞에서 연주자와 상호 교감. 이런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그래 바로 이거지"라는 탄성을 자아 냈다.

앞으로 숙제가 남았다. 부용정 프로젝트를 더 확대 하는 일이다. 즉 이 공간을 목적에 맞는 소중한 자원으로 만들어 나가는 일. 그리고 이 무대를 통해서 대구의 뛰어난 연주자들의 매력을 배가 시키는 일이다. 내년 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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