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문101, 5일까지 김결수·권기철 2인전
갤러리 문101, 5일까지 김결수·권기철 2인전
  • 황인옥
  • 승인 2020.11.0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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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노동의 도구 모아 예술 행위 가미
볏짚으로 ‘성장과 소멸의 순환’ 비유
3자·작가의 노동, 미래 예술가와 연결
권, 한지에 점·선·면 중심 드로잉
활동 최초로 ‘오브제 드로잉’ 선봬
평면에 설치 병행 등 작업 확장세
김결수작-숭고한노동
김결수 작 ‘숭고한 노동’

권기철작-사랑한후에
권기철 작 ‘사랑한 후에’

작가 김결수와 권기철 2인전이 갤러리 문(MOON)101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자 묘한 호기심이 올라왔다. 인간적인 기질이나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평균을 웃도는 기센 작가들인 까닭에 이들의 조합에 호기심이 발동한 것. 한 치의 오차 없이 동급 체급을 가진 사람들을 링 위에 올려놓았을 때의 팽팽한 긴장감을 이 두 작가의 조합에서 떠올리는 것은 당연했다.

설왕설래하는 감정들을 뒤로하고 막상 전시장에 들어서자 우려는 기우였음이 드러난다.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두 작가의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열 찬 기운(氣運)들이 공간과 공간을 이어지는 중간지대를 지나면서 한껏 수그러들고 있다. 서로에 대한 무한신뢰와 지지가 전시장에 스며든 결과였다.

갤러리 문 101은 김결수가 카페 겸 갤러리로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2010년 문을 연 이래 지금까지 다양한 지역의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했다. 올해는 코로나 19 여파라는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 6개월 휴관에 들어갔고, 이참에 갤러리 운영 방식을 재정비하는 계기로 삼았다. 개인전 일변도에서 벗어나 2인전이나 3인전 등 작가 구성을 다변화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고, 그 첫 기획전으로 김결수·권기철 2인전을 열었다.

“인간적으로나 작품으로나 서로 너무 잘 아는 동료지만 서로의 작품에 대해 진지하게 소통해 보는 시간은 없었다. 이번 전시가 그 도화선이 된다.” (김 작가)

갤러리 운영자인 김결수가 자신의 맞수로 낙점한 권기철. 사실 권 작가와 김 작가의 인연은 깊다. 대학 졸업 후에 미술학원 강사로 함께 일하면서 첫 인연을 맺은 이후 오랫동안 서로의 작업세계를 흠모하며 응원해 왔다.

두 개의 공간으로 구성된 갤러리 문 101의 첫 번째 공간에 김 작가의 작품이 설치됐다. 공간 정면 벽에 버려진 네온사인 12개를 설치해 불을 밝히고, 그 아래 바닥에는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며 싹을 틔운 썩은 볏짚더미 3개를 놓았다.

출입문 너머의 통로를 지나 층고가 높은 야외 같으면서도 실내 같은 독특한 공간에 권 작가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한지에 먹으로 그려낸 폭발할 것 같은 기운이 넘실대는 평면 드로잉 10점을 매달았다. 통로 벽면에는 효용가치를 다하고 버려진 스크린실크 판화 틀에 드로잉이 가미된 평면 작품도 걸었다.

“두 작가의 작품은 상당히 이질적일 수 있는데 의외로 한 공간에 놓았더니 호흡이 잘 맞았다. 서로에 대해 워낙에 잘 알고, 서로의 작품을 좋아하다 보니 그 마음이 두 작품 사이에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 같다.” (권 작가)

김결수는 누군가의 노동 도구로 사용되다 버려진 사물을 수집한 오브제에 작가의 예술적 노동을 가미해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작품 ‘노동(labor)-효과(성) (effectiveness)’ 연작을 발표해왔다.

김 작가는 “이번 전시에 설치한 네온사인은 코로나로 힘든 현재의 우리를, 썩은 볏짚을 싹을 틔운 작품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일상을 회복하고 생명의 에너지는 예전처럼 돌아갈 것이라는 희망을 교차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김 작가는 최근에 다양한 변주를 시도했다. 도마, 해체된 집의 구들장과 서까래, 버려진 배, 깨어진 가마솥, 방앗간 기계 등의 버려진 도구를 주로 사용하던 기존의 오브제 패턴에서 벗어나 거푸집을 활용해 구축한 거대한 흙덩이나 썩은 볏짚에 씨앗을 심어 싹이 나고 성장한 후 소멸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볏짚 작품을 시도하고 있다. 흙더미나 싹을 틔운 볏짚은 순환에 대한 보다 집약적인 서술에 해당된다.

“과거 제 3자의 노동에 현재 김결수의 감수성이 더해져 미래세대의 창작원으로 연결되는 서사를 구축했다. 이것은 곧 사람이 태어나 한 평생 살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생(生)과 사(死)의 순환과정과 다르지 않다.”(김 작가)

권기철은 “우연이 필연을 만들고, 필연이 우연을 만든다”는 말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전자를 신봉한다. 이번 전시에 새롭게 선보이는 실크스크린 틀을 오브제로 한 작품 또한 우연이 만든 필연에 해당된다. 누군가가 제작한 판화 틀에 기술자가 물감을 붓고 작품을 찍은 후 버렸진 오브제를 수집해 권 작가의 드로잉을 가미해 완성했다.

권 작가의 이번 신작은 내용적인 측면에서 김 작가 작품과의 동질성을 찾기는 어렵지만 타인의 노동이 가미된 오브제에 작가의 행위를 더한다는 측면에서 유사성이 발견된다. “48회의 개인전을 열었지만 판화 틀을 오브제로 한 작업은 처음 시도해 보는 작업인데, 내 작업세계의 또 하나의 확장에 해당된다.” (권 작가)

“우연이 필연을 만든다”는 믿음이 농축된 작업은 아무래도 ‘어이쿠!’ 연작. 한지에 먹으로 점과 선과 면 등의 기본 조형 요소에 화살표나 교정부호 등의 기호를 활용해 즉흥적으로 완성하는 드로잉 작품이다. 한일자(一)자나 기호 등의 형상에서 추상이 어른거리는데, 이는 음악과 관련된다.

“내 작품은 음악을 들으며 내면에서 회오리치는 감정들을 즉흥적으로 표현한 작업이다. 마음과 음악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추상으로 흐르는 것은 자연스럽다.” (권 작가)

권 작가 역시 최근에 평면에 설치를 병행하며 확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신문지에 손 풀기로 한 드로잉들을 쌓아 설치하거나 한지에 먹으로 드로잉 한 평면작업을 천장에 매달고 있다. “마음을 표현하거나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이 더 다양해지고 있다.”

서양화를 전공한 김 작가와 동양화를 전공한 권 작가의 출발은 달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듯 닮아가고 있는 두 작가. 전업작가로 시작해 기획자로 역량을 넓혀온 여정과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작가정신이 똑 닮아있다. 김 작가는 대구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차원에서 기획자로 차출되고 있고, 권 작가 역시 대구의 신생 갤러리들에 조언을 마다하지 않으며 한 발 물러나 힘을 보태 왔다.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애정을 가지며 지켜본 동료여서 그럴까? 처음으로 2인전을 갖게 된 것에 대해 두 작가 모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먼저 권 작가가 김 작가에 대한 존경을 표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김결수 작가의 작품은 감각이 놀랍도록 뛰어나서 옛날부터 좋아했다”며 “무엇보다 탁월한 오브제 해석 능력을 가지고 현대미술을 다양하게 확장해오며 대형작가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며 김 작가에 대한 무한 애정을 보냈다.

김 작가 역시 “권기철 작가는 몸짓에 의한 즉흥적인 행위로 평면 작업을 하고, 그 평면을 입체적으로 구현하며 새로움을 추구하는 작가”라며 “현대 미술을 전방위적으로 추구하는 데 있어 여러 가지 오브제나 물감 그리고 장르를 넘나들지만 결과론적으로 굉장히 힘 있고 일반 드로잉과 다른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며 응수했다.

대한민국에서 전업 작가로 살아남기는 어렵다. 돈과 명예 중 하나라도 만족감을 누리며 살아가는 문화 선진국과 달리 국내 여건은 녹록치 않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을 뿐더러 경제적으로는 더욱 힘에 부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작가로 살아남으면 희망은 없지 않다.

문제는 쉼 없이 작업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 지점에서 작가에게 요구되는 덕목이 있다. 바로 “앞뒤 돌아보지 않고 묵묵하게 작업을 끌고 가는 열정과 에너지”다. 김 작가나 권 작가의 열정과 에너지에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김 작가는 권 작가의 바로 이점을 높이 샀다. 그는 “권기철 작가는 내면의 이야기를 끄집어 내어 현상학적인 작업으로 연결하는 양이 엄청나다. 대구에 수많은 작가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쉬지 않고 작업을 몸소 실천하는 작가는 권기철 작가가 앞서간다”고 했다.

권 작가 역시 “김결수 작가는 젊은 사고로 스쳐지나는 일상을 놓치지 않고 낚아채는 감각이 뛰어나다”며 “그런 것들은 오랫동안 치열하게 작업한 결과다. 그런 자세는 동료선후배 작가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전시는 5일까지. 010-4501-2777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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