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잃은 분노
갈 길 잃은 분노
  • 승인 2020.11.0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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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윤 SQ힉스아카데미 대표, 경영학 박사
마땅히 분노해야 하는데 오히려 안타까울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내 스스로가 어색해진다. 지난 총선 후의 부산시장 성추행 사건, 그리고 몇 개월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관련사건 때도 그랬다. 분노가 아닌 안타까움이 밀려오다니, 아마 그것은 나의 정치적인 성향을 보여주는 증표일 것이다.

그런 나에게 모처럼 안타까움이 아닌 분노를 느끼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민주당이 성추행 사건으로 공석이 된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공천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말이 되지 않는 결정이다. 자세한 내막이 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충남지사, 부산시장 그리고 서울시장에 의해 연쇄적으로 일어난 여권의 성추행 사건은 진보의 윤리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충격적인 일이다. 그뿐 아니라 공석이 된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한 보궐선거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들 부담이다. 그들이 자제하지 못한 사적인 욕망은 시정의 혼란 뿐 아니라 엄청난 경제적 비용을 초래하게 하는 국민적 범죄행위이다.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재·보선을 할 경우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에 만들어진 민주당 당헌 제196조 2항이다. 임박한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선거를 앞두고 이 멀쩡한 당헌을 고쳐서라도 후보를 내겠다는 민주당의 욕심은 정말 후안무치한 것이다. 이것은 성추행 사건보다 더 심각한 진보의 윤리적 퇴행이다. 그것을 보며 비로소 내 안에 안타까움 대신 분노가 일어나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 분노는 가야 할 곳을 찾지 못한다. 사실 민주당이 이런 결정을 할 수 있는 가장 큰 원인은 야당의 무능력에 있다. 차기 대통령은커녕 서울시장 조차 마땅한 후보가 없는 야당은 그 존재감을 잃은 지 오래다. 야당이 존재감을 잃을 때에 국민들의 분노는 갈 길을 잃는다.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야당이 없을 때 국민들은 안심하고 분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일컬어지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거리에 나온 국민들은 그래도 안심하고 분노할 수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을 대체할 수 있는 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안철수, 이재명 등의 인물들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국민들은 마음껏 분노할 수 있었고 새로운 시위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현 여권을 향한 국민들의 분노는 갈 길을 잃었고, 믿을 수 있는 대체 세력이 없기에 안심하고 분노할 수도 없다.

갈 길을 잃은 분노는 거칠고 품격이 없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 선 후에 보여준 야권 지지층들의 분노, 최근 국정감사에 나타난 야권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이 거칠기 짝이 없고 품위가 없는 이유이다. 심지어 직접 만난 어떤 야권 인사들에게서도 차기 대선에서의 자신감을 찾을 수 없었다. 좀 더 두고 보아야 한다는 말 뿐이었다.

그런 야당을 누가 두려워한다는 말인가? 그렇게 때문에 여당은 자기들이 만든 당헌조차 서슴지 않고 뒤엎는다. 강력한 지도자가 없는 소수의 야당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저 사람이 누구고? 사람이 점잖아 보이고 묵직해 보여서 큰 일 하겠더라”·“저 사람, 일 잘하게 생겼네. 이름이 뭐고?” 심심함을 달래려고 온종일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사는 어머니가 틈틈이 묻는다. 모두 여권의 대권후보자들이다.

“어머니, 저 분이 저하고 아주 친한 분이에요. 한 2년 동안 같이 살기도 했어요” 마침 야당의 모 정치인이 텔레비전에 나오기에 좀 과장하여 친분을 과시했더니, “사람은 좋아 보인다만 큰 일 할 사람으로 보이진 않네. 어느 당 사람이고?” 하고 물으신다. 걱정이다. 참 걱정스럽다. 다음 대선 때까지 어머니가 살아 계신다면 “네가 안다는 그 분이 몇 번이고? 그 분 찍으면 되제?”라고 물으실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마음껏 좀 분노해 보고 싶은데 안심할 수 없다. 안타까움을 씻어 버리고, 안심하고 분노할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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