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으로 펼친 우주…상상력 입혀 재해석
수묵으로 펼친 우주…상상력 입혀 재해석
  • 황인옥
  • 승인 2020.11.02 2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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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문화전당서 서상언展
전통수묵 한계 인식·확장 모색
사군자 틀 깨고 독창적 화풍 개척
구상·추상의 경계 허물고
먹과 소금 섞어 한지에 입혀
백천작-심해
백천 작 ‘심해’

작가 서상언이 신작 설명에 앞서 “진경산수는 겸재 정선에서, 매난국죽 사군자는 조선시대에 끝났다”는 다소 진보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는 “대나무나 소나무를 크게나 작게 또는 여백을 많거나 적게 그린다고 뭐가 달라지냐”며 목소리를 높이고는 “이제는 현대 수묵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현대수묵이 나아갈 방향성을 언급했다. 말인즉슨 전통수묵은 종말을 고하고 현대수묵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백천 서상언에게 서예가이자 수묵화가라는 수식어는 빛을 잃는다. 먹과 한지를 기본 전제로 하지만 진경산수나 사군자라는 전통수묵의 일반 공식에서 한 발 비껴난다.

대신 과거와 현재,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거대담론을 시각화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이는 곧 현대수묵의 나아갈 방향성 제시로 연결됐다.

전통 수묵화를 현대적 시각에서 재조명하며 현대수묵의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일은 수묵을 기반으로 작업하는 작가들에게는 숙명이다. 많은 수묵화가들이 전통수묵은 고루하다는 편견과 맞서며 현대인과 간극없는 소통을 위해 노력해왔다. 백천 또한 그 범주에 속해왔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백천은 단연 선두격을 자처했다.

그는 백두산과 한라산을 하나로 엮어 통일을 기원하고, 가야문화권의 유물과 소나무를 접목해 영·호남 화합의 장을 펼치는가 하면, 불두(불상의 머리)나 분청사기 등의 고미술을 소재로 민족혼을 새롭게 일깨우거나, 운석을 통해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며 현대수묵화의 방향성과 사유의 확장을 모색해왔다.

11월 2일 대구 남구 대덕문화전당에서 열리는 작가의 개인전은 그의 도전정신이 최정점을 찍는다. ‘수묵, 우주와의 만남’을 주제로 하는 이번 전시에는 운석이나 블랙홀, 지구 바다 속 깊은 심해 등을 우주로 형상화화며 다양한 방식으로 우주와의 만남을 시도한다.

“망망대해 같은 우주에 떠도는 운석이나 블랙홀에 앉아서 좌선 하는모습이나 심해 바다를 통해 광활한 우주를 우리의 드넓은 가슴 속에 품어보고자 했습니다.”

작품의 장르는 수묵추상. 운석이나 블랙홀에서 시작된 구상과 추상의 경계 허물기는 작품 ‘심해’에서 절정을 구가한다. 일단 작품의 재료나 작업방식에서 혁신적이다. 작가는 “한 말이나 되는 소금을 한지에 부었다”는 표현을 썼다. 소금과 한지라는 불협화음에 가까운 조합에 놀라 눈을 번쩍 뜨자 그가 피식 웃으며 “먹에 물을 붓고 거기에 소금을 녹여서 한지에 부은 후 말렸다. 그 과정을 몇 차례 반복해서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신작들에는 물고기 형상을 닮은 이니셜이 눈에 띤다. 그가 “물고기 이니셜은 ‘너는 누구인가?’, ‘인간인가, 별인가?’라고 묻는 태초의 말씀과 같다“고 언급했다. 그에게 운석이나 물고기 형상의 이니셜은 ‘몸’이자, ‘나그네’이며, ‘정신’이자, 불가사이한 ‘별’의 존재로 다가온다. 특히 우주 욕망의 근원으로 표현된 ‘운석’은 미래의 인간들이 반추해 보아야할 ‘부름’과 ‘응답’에 대한 은유적 상징이다. ”궁극적으로 운석은 공(空)의 세계이자 색(色)의 세계이며, 또한 우주 생명의 경이로운 계시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물감을 칠하고 말리고 다시 칠하는 반복적인 작업 방식은 서양화에서는 일반적이지만 한지에 먹으로 일필휘지로 글씨 쓰거나 사군자를 치는 동양화에서는 낯설다. 한지의 스며드는 물성이 갖는 한계 때문에 덧바른다는 개념은 확장되지 못했다.

하지만 작가는 ”우리나라의 전통방식과 재료로 만드는 한지는 워낙 질기고 단단한 종이라 백년 천년이 가도 변함이 없다. 캔버스에 비길 바가 못 된다“고 했다.

작품 ‘심해’는 완전한 추상이다. 소금과 먹을 탄 물을 붓고 말리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형상이 곧 작품이 된다. 작가는 단 1%의 의도성도 개입할 수 없는 즉흥성과 예측불허로 흐르는 형상의 방향성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먹과 한지라는 물성 외에는 전통수묵으로부터 완벽히 분리되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았다.

”우주는 우리가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의 상상력이 개입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전통수묵화가 가지는 예측성을 뛰어넘는 것이죠.“

전통 수묵의 한계를 인식하고 확장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스스로 개척자를 자처한 백천. 그 길에서 ‘틀렸다’는 평가도 없지 않았다.

이번 전시는 ”틀린다는 것은 무엇이며, 없다는 것은 또 무엇이며, 안 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에 해당된다. “‘없다’라거나 ‘틀렸다’는 것은 허구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단지 우리가 보지 못한 것 뿐이죠.” 전시는 6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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