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의 가면을 쓴 포퓰리즘
복지의 가면을 쓴 포퓰리즘
  • 승인 2020.11.0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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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호
달서구사회복지협의회장
월성종합사회복지관장
포퓰리즘의 망령이 떠돌고 있다. 포퓰리즘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행태다. 그래서 대중의 입맛에 맞는 정책과 슬로건을 내거는 데 대개는 복지의 가면을 쓴다. 요즈음처럼 재해와 재난이 명분이 되기도 한다. 복지수준을 높이자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다. 삶을 편안케 하고, 위기에 대비하며, 미래의 삶까지 보장하겠다는데 누군들 반갑고 고맙지 않으랴. 대중의 지지로 먹고사는 정치인들이 솔깃한 약속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중은 환영하고 박수를 보낸다.

20여년 전부터 대통령선거가 있을 때마다 단골 출마한 허모라는 이가 있다. 그가 내건 선거공약들에 이런 것들이 있었다. 신혼부부에게 1억원, 중소기업 취업청년에게 매달 백만원, 65세 노인에게 매달 50만원 제공 등등. 당시엔 이것들은 술자리 안주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이도 없었고 그래서 눈여겨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2012년 대선 때부터 많이 달라졌다. 권력쟁취를 위한 진영대결이 치열해지면서 여야의 모든 후보들이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이슈로 내걸기 시작한다. 그 이후로 선거 때마다 무상급식을 필두로 무상 시리즈가 줄을 잇는다.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를 두고도 담세능력과 우선순위를 고려한 정책적 고민은 실종되었다. 남은 건 대중을 현혹한 무상시리즈와 각종 수당으로 포장한 현금살포다.

이미 무상급식은 대세가 되었고 무상교복, 입학지원금까지 현금으로 뿌리고 있다. 일부 지자체에서 시작한 현금 나눠주기는 아동수당 등 보편적 복지란 이름으로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재난 상황은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정부와 지자체는 전국민 대상 현금살포 경쟁에 들어간 듯하다. 가만히 있어도 현금을 꼽아주고 신호등 있는 거리에는 인간 신호등이 추가 설치되었다. 하다하다 이제는 통신비까지 보태준단다. 삼성을 위시한 대기업만 빼고는 모두가 취약계층이 되버린 느낌이다.

지금의 포퓰리즘 광풍은 좌우파,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진보를 자처하며 대중동원을 무기로 삼는 현 정권은 원래부터 그렇다 치자. 우파 정당이라는 야당조차도 기본소득의 깃발을 흔드는 것은 또 뭔가?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동일한 현금을 나눠주겠다는 것이다. 좌파의 일부 대권주자나 좌파 내에서도 한참 왼쪽에 가 있는 정파가 내세우는 대표적인 포퓰리즘 선동이다. 석유수출로 들어오는 막대한 수입을 모든 주민(그래봐야 100만 명도 안 되는)에게 나눠주는 알래스카나 총인구가 550만 명 정도에 광대한 산림자원을 갖고 있는 핀란드처럼 특수한 경우에 시도라도 해볼 수 있는 정책이다. 우리의 경우 천문학적 재원이나 기존 복지체계의 재설계 등을 고려할 때 현실성이 없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야의 정치권이 기본소득의 깃발을 흔들어대는 건 무슨 이유일까? 딱 한 가지. 대중을 환호하게 하여 정권을 잡을 수만 있다면 어떤 수단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정치권의 불순한 의도가 엿보인다. 노이즈 마켓팅으로 취급되던 허모씨의 허풍이 20년 뒤 지금엔 낯설어 뵈지 않는다. 그동안 우리 경제가 그만큼 성장하여 나눌 수 있는 과실이 많아졌을까? 그러나 그리 보기에는 영 미덥지 않다. 그것 보다는 우리 사회가 예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포퓰리즘의 달콤함은 대중을 마취시킨다. 마취된 대중은 비이성적이며 합리적 판단과 행동을 할 수가 없다. 현혹된 대중은 내 앞에 던져진 현금의 달콤함을 즐길 뿐이다. 그 돈이 내 자식이 갚아야할 빚인지 내가 낸 또는 내야 될 세금인지 따지지 않는ㄴ다. 안 받으면 억울하니 보편적으로 뿌리라 요구한다. 다음엔 더 많이 뿌려도 모른 척한다. 이렇게 대중은 좀비처럼 변해간다. 또 포퓰리즘은 국민을 나누고 공동체를 분열시킨다. 열광적이고 극단적인 지지세력을 결속하고 충성을 유지하기 위해 진영을 나눈다. 소수일 수밖에 없는 엘리트 집단에 대해 적대감을 부추긴다. 민주주의와 정의, 평등과 공정의 단어를 분열과 증오의 수단으로 쓴다. 이 훌륭한 가치들은 사악한 권력의 위선으로 추락하고 만다.

포퓰리즘은 미래를 망친다. 내가 누린 달콤한 복지는 늙어서 또는 내 자식이 그 대가를 치르게 되어있다. 돈 안 드는 복지포퓰리즘은 없다. 그 돈은 나와 기업이 벌어들인 돈 중에서 뗀 세금이다. 세금은 공동체의 지속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써야한다. 내 아버지 세대가 그랬듯이 지금도 다음 세대를 위해 세금을 분배해야 한다. 빚으로 복지한다는 것은 노후의 삶과 미래세대의 삶을 갉아먹는 무책임한 짓이다. 복지의 가면을 쓴 포퓰리즘과 이 깃발을 흔드는 정치인을 경계해야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아르헨티나, 베네주엘라와 같은 포퓰리즘 국가의 몰락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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