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동심초…
가을…동심초…
  • 승인 2020.11.03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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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청
부국장

하루가 다르게 거리의 색깔들이 바뀌어 다가온다. 기온이 어제보다 더 내려간다는 일기예보에 따라 두꺼운 옷을 껴입었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가을바람이 차다. 출근길 보도를 걷는 사람들은 저마다 옷깃을 펄럭이며 걷는다, 길가에는 우수수 나뭇잎들이 쏟아지고... 떨어진 나뭇잎은 바람에 이리저리 몰려다닌다. 아침 햇빛을 반사시키며 자그락 소리를 낼 듯 앙글거리는 노오란 은행나무 잎들, 형형색색의 가로수들이 제각기 안간힘을 쓰며 더 깊은 가을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을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봄에 떠올라야 걸맞을 '동심초' 노랫말(춘망사·春望詞)이 생뚱맞게 이 가을날 입 속에서 자꾸만 맴돈다. 기약 없는 정인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침 거울 앞에서 후드득 젓가락 같은 눈물을 떨구었을 여인이 스러지는 꽃잎을 우두커니 지켜보며 느꼈을 감정이 시리도록 이 아침 출근길 가을 풍경과 맞아떨어진다.

출근길 스산해진 계절의 정서가 내 속에서는 오히려 봄노래로 튀어나오니 뭔가 어울리지 않을텐데도, 이 노래의 가사인 '춘망사'를 지은 당나라 여류시인 설도의 '시대를 잘못 만난 처지'까지 처연한 이 아침 가을 풍경에 겹치면서 이 순간 가장 어울리는 노래로 흥얼거리게 된다.

무언가 어울리지 않는데, 그 순간과 정서 같은 게 이리저리 뒤엉켜 이 순간에 꼭 맞아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줄 때가 있다. 그것은 대단히 반가운 경우일 때도 있고, 그 반대로 몹시 씁쓸한 경우일 때도 있다.

씁쓸한 경우 중 하나다. 5년 전 문재인 대통령이 강력하게 밀어부쳐 만든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의 중대한 잘못으로 치러지는 재·보선에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민주당 당헌이 휴지조각이 됐다. 민주당 지도부가 이 당헌을 개정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후 이를 위한 전당원 찬반투표를 실시해 압도적인 개정 찬성을 얻어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당 중앙위에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낼 것이냐 여부에 대해서는 여러 논의가 있고 비판도 있다. 저도 알고 중앙위원 여러분도 이미 아실 것"이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저희들이 온라인 투표로 여쭤본 결과 매우 높은 투표율과 매우 높은 찬성률로 당원들께서 후보자를 내서 유권자의 심판을 받는 것이 옳다는 판단을 내려주셨다"고 다시 한번 당헌 개정의 명분을 강조했다.

당 소속 공직자의 중대한 잘못으로 치러지게 된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당헌 탓에 후보를 내지 못하게 되자 자당의 후보를 내기 위해 이 당헌을 개정하려는 것은 당의 생리상 어쩌면 그럴수 밖에 없다손 치자. 하지만 개정 과정에서 말을 바꾸고, 셈법도 바꾸고 당원들의 제대로 된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는지에 대한 의문까지 당 안팎에서 나돌고 있다. 전 당원 투표의 '효력' 논란이 '지도부가 일방적 결정의 명분을 위해 당원을 동원했다'는 비판 속에서 후폭풍을 맞고 있는 것이다.

알다시피 문재인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로 있을 당시 당 혁신위원회를 통해 이 당헌 조항을 만들면서 민주당이 깨끗하고 정의로운 정당임을 표방했다. 이 당헌을 두고 정치 발전의 출발점이라고까지 했다. 그래서 민주당은 이런 당당함과 깨끗함을 노둣돌 삼아 정권을 잡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면 너무 나간 것일까. 그런데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라는 중차대한 일을 코앞에 두게 되니 당헌이고 뭐고 그냥 놔둘 수는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정의로운 모습이 보기 좋았던 정당이 꿀단지 앞에서 민낯을 보일 때, 뭔가가 맞지 않는 모습이다. 봄노래를 가을에 되뇌일 때처럼...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쩌면 너무나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주장'과 '실제'는 거의 제대로 맞지 않지만 늘 자신이 하는 일들은 모두 정답이라고 외치는 이 정당의 부자연스런 모습. 가을날 봄노래를 불러도 정서에 전혀 반감이 들지 않는 이 신기막측함. 여당도, 야당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국민들이 코 앞에서 두드리는 장단은 징처럼 울려대는데, 그 소리는 모른체 하고 멀리서 들려오는 엉뚱한 북소리에만 춤사위를 맞추고 있다. 그래서 정치는 오묘한 생물이고, 정치가는 용이 되기도 했다가 지렁이 같은 정치꾼도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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