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본산
권력의 본산
  • 승인 2020.11.0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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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복 영진전문대학교 명예교수, 지방자치연구소장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 첫머리에 있다.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은 매우 추상적이다. 이 말은 선거를 통해서나 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국민이 특정인에게 한시적으로 권력을 위임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뭔가 애매한 점이 없지 않다.

민주주의체제에서 거창하게 갖다 붙인 정치적 술사라고 한다면 틀린 말일까. 주권자로서 국민이 가진 권력은 미세하지만 권력을 부여받은 자는 쓰임에 따라 큰 힘을 발휘한다. 권력은 타인 또는 조직단위의 행태를 좌우할 수 있는 능력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국가기관은 권력을 부여해 준 국민들을 지배한다. 국가조직 중에서 가장 힘센 기관은 어디냐고 묻는다면 누구나 청와대라고 대답할 것이다.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의 권한은 아주 막강하므로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청와대는 권력의 최고 본산이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권력의 행사는 정치환경과 권력자의 정치행태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퇴근 후 시장에 들러 넥타이 풀고 국민들과 소주 한잔 나누는 소탈하고 친구 같은 대통령, 문재인이 꿈꿔 온 대통령의 모습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되면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기겠다는 말을 했었다. 대통령 집무실 광화문 이전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그러나 국민들을 향한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대통령의 약속 불이행을 국민들은 구질구질하게 문제 삼지 않았다.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를 비워 둬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잠재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기고 국민들과 소주 한잔 나누겠다고 한 문대통령이 사는 청와대는 지금 한국 정치·행정의 본산이 되고 있다. 역대 그 어느 정부보다 청와대는 조직과 인적구성 면에서 아주 방대해 졌다.

과거의 대통령은 조직과 인사, 예산규모를 작게 하면서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면서 작은 정부를 천명하였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처음부터 큰 정부를 지향하는 정책을 취했다. 청와대가 한국정치·행정의 본산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대통령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이전했다면 대통령의 권력 크기가 지금 같았을까. 대통령의 집무실과 거처가 있는 청와대는 대통령의 통치행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국가의 정책을 구상하고 만들어내는 곳이다. 청와대의 많은 인력은 대통령이 좋은 정책을 만드는데 보좌하는 참모들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집권력이 강화되면서 청와대는 정책기능은 물론 때에 따라서는 행정을 집행하는 일에 까지 깊이 관여하게 되고 대통령의 참모들은 정부행정에 대한 자문·서비스 역할에서 벗어나 상급관청 같은 자세로 군림하게 되었다. 지금 청와대의 눈치를 보지 않는 국가기관들이 어디 있을까. 국무총리나 장관들은 말 할 것도 없고 국회, 법원 등 모든 국가조직들이 다 그러하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지만 청와대조직의 특수성으로 볼 때 행정의 집행기능까지 터치하는 것은 무리수다. 청와대의 눈치를 보는 국가기관들이 많아지고 참모들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은 국가경영상 장려할 일이 못된다. 국정의 모든 결정권은 청와대가 쥐고 있음을 입증하는 몇가지 예시를 보자. 지난 총선에서 청와대 출신고위직들이 여당의 공천으로 다수 당선되었고 청와대 출신 범법자가 예상외로 가벼운 판결을 받았다. 청와대 근무자가 퇴직하면 정부조직에 쉽게 취업한다.

대통령은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40%를 마지노선으로 주장하는 기획재정부에 “근거가 뭐냐”고 질타하면서 채무비율기준을 60%로 유지케 하는 길을 텄다. 1주택자 재산세 완화 공시지가를 여당이 줄곧 9억 이하로 주장했지만 대통령은 자당의 의사를 꺾고 6억 이하로 결정했다. 참모들 역시 국가기관들을 하수로 보면서 자의적인 행태를 예사로 보인다. 대통령경호처가 야당 원내대표에 대한 몸수색을 한 것이나 모처럼 여·야 합의로 국정감사 국감 증인으로 청와대 참모 7명을 부르도록 했지만 국감 하루 전날 불출석을 통보해 온 것은 오만의 극치요 입법부조차 우습게 보는 처사다. 대한민국은 삼권분립의 나라 민주공화국이다. 국민 누구도 무소불위의 청와대를 원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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