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합성은 식물만 한다?…고정관념 깼더니 ‘노벨화학상’
광합성은 식물만 한다?…고정관념 깼더니 ‘노벨화학상’
  • 김종현
  • 승인 2020.11.0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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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노벨상을 품자 - (37)인체는 햇빛으로 비타민D 생성의 광합성을
동물의 광합성 작용
나팔벌레, 햇빛으로 에너지전환
말벌, 복부에서 태양광 흡수
전기에너지 충전 후 무기로 사용
쏘이면 ‘스턴 건’ 충격 받는 셈
독일 화학자 ‘아돌프 빈다우스’
자외선에 의해 비타민D 변하는
에르고스테롤 물질 발견 공로
노벨상-사람도광합성
사람도 광합성을 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노벨상을 만든다. 그림 이대영

과거의 상식을 깨뜨리는 이야기 같은데 동물도 식물처럼 광합성작용을 한다. 나팔벌레(trumpet waorm), 민달팽이(sea slug) 등 하등동물은 식물처럼 태양광을 받아서 화학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정인 광합성작용(photosynthesis)을 통해서 생명체의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한다. 세포의 ‘에너지 화폐(energy money)’인 아데노신 3인산(Adenosine triphosphate, ATP)을 만든다. 우리나라의 말벌(hornet)이 위험한 이유는 복부(腹部)의 언덕처럼 드러난 검정색 부위, 골짜기처럼 움푹 들어간 노란색 부위에서 태양광을 다양한 굴절로 흡수하고 화학에너지 혹은 전기에너지를 충전(充電)한다. 노란부분은 크산토프테린(Xathopterin, C6H5N5O2)이란 색소로, 태양광선을 받으면 전기에너지를 발전한다. 따라서 말벌은 ‘비행하는 태양전지(flying solar-cell)’가 된다. 사람과 같은 적을 만나 전쟁을 할 땐 발전무기를 비대칭전략무기로 사용한다. 사람이 말벌에 쏘였다면 경호용 스턴 건(Stun gun)의 전기충격을 받은 셈이다. 그래서 말벌이 중국에서 매일 42명이나 죽이며, 미국과 캐나다에 진출해 동양의 말벌이 ‘망나니 킬러’로 행세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국 CNN가 보도한 적이 있다.

1928년 독일인 화학자 아돌프 오토 라인홀트 빈다우스(Adolf Otto Reinhold Windaus, 1886~1959)에게 “스테로이드 알코올(steroid alcohol) 일명 스테롤(Sterol)의 구조와 비타민과의 연관성에 관한 연구에 대해” 단독수상자로 노벨화학상을 주었다. 그는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나 프랑스 그래머스쿨에서 수업을 했으며, 1895년 베를린대학교에서 에밀 피셔 교수에게 화학강의를 듣고 화학을 연구하기로 작심했다. 프라이부르크대학으로 전학해 화학과 의학을 전공했으며, 하인리히 킬리아니 교수의 지도로 의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콜레스테롤(cholesterol, C27H46O) 및 스테롤(sterol)에 대해 집중연구를 했다. 1913년 인스부르크대학에서 화학교수를 맡았으며, 1915년 인스부르크대학에서 괴팅겐대학으로 학교이름이 변경되었고, 곧 바로 이 대학의 교수와 화학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중요연구실적으로는 동·식물의 유지(油脂)에서 자외선을 조사(照射)해서 구루병에 효과가 있는항(抗)구루병(anti-rickets) 물질로 비타민D가 생성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메커니즘을 규명하지 못했다. 당시 대부분의 학자들은 동물인 사람은 식물처럼 광합성작용을 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다. 가능성을 열어놓고 연구를 하니 자외선에 의해 비타민D로 변하는 에르고스테롤(ergosterol, C28H44O)을 발견했다. 1928년에 노벨화학상을 수상했고, 이후에 비타민 D2(C27H44O)를 정제했다. 이외에 강심제 디기탈리스(Digitalis purpurea)에 관한 연구도 했다. “용장 밑에 약졸이 없다(There is no coward soldier under the brave general).”는 우리나라의 속담처럼 그에게 박사학위를 받은 제자 아돌프 부테난트(Adolf Friedrich Johann Butenandt, 1903~1995)는 11년 뒤 1939년 스테로이드(steroid) 연구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목재로 설탕을 만드는 마술을

1931년에 독일의 공업화학자 카를 보슈(Carl Bosch, 1874~1940)와 화학자 프리드리히 베르기우스(Friedrich Bergius, 1884~1949)에게 “화학적 고압기법 발명과 개선에 기여한 공로”로 2인 공동수상자로 노벨화학상을 수여했다.

먼저, 카를 보슈(Carl Bosch, 1874~1940)는 독일 쾰른에서 태어나 샤를로텐부르크 공업고등학교에서 화학과 야금학(Chemistry and metallurgy)을 익혔다. 샤를로텐부르크 왕립기술대학에서 배우다가 1892년부터 라이프치히대학교(University of Leipzig)로 옮겨 요하네스 비슬리체누스(Johannes Wislicenus, 1835~1902) 교수의 지도 아래 1898년 유기화학전공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바스프(BASF)회사에 취업해 1902년부터 1907년까지 공중질서고정(aerial nitrogen fixation)에 관한 질소비료제조방안을 연구했다. 1908년 프리츠 하버(Fritz Harbor, 1868~1934)가 암모니아 합성으로 질소비료를 제조하는 방안을 개발했기에 공동연구계약을 체결하고, 1909년 하버제조방안(Harbor Manufacturing Method)으로 생산책임자로 임명되어 고기압과 500℃이상 고온에 질소비료(high-pressure industrial chemistry)를 제조할 수 있는 장치개발과 촉매선택으로 공업적 제조법을 해결해, 1913년 연간 3만 6천 톤의 황산암모늄 생산에 성공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히틀러 정권의 치하(治下)에 화약용 질산제조와 로이나 공장 신설을 지도했다. 1919년 베르사유 평화 교섭에 독일기술대표로 참여했다. 1920년 고압화학기술을 주도해 메탄올(methanol) 합성, 석탄액화 등에도 성공했다. 1925년 바스프 회사를 중심으로 8개사 통합해서 염료회사 설립, 10년간 이사장을 역임했다.

중요연구실적은 1896년 이후 유기화학, 특히 니트로화합물(nitro-compounds)에 몰두했으며, 1907년 금속시안화합물과 초산염으로부터 시안으로 된 바륨을 제조했다. 1908년에는 1918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프리츠 하버(Fritz Harbor, 1868~1934)가 고안한 ‘공중질소 고정법(aerial nitrogen fixation)’에 관심을 갖고 공동연구로 수소와 질소를 합성해 암모니아제조에 성공해 ‘하버제조법(Harbor Manufacturing Method)’을 창안했다. 이를 통해 질소비료를 생산해서 지구촌을 풍성하게 하는 녹색혁명(공기로 빵을 만드는 혁명)을 초래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뜻하지 않게 제1차 세계대전에 폭탄 등에 악용되었던 화약용 질산제조(Manufacture of Gunpowder Nitrate)의 길을 열었다.

다음으로 동료수상자인 프리드리히 베르기우스(Friedrich Bergius, 1884~1949)는 독일 브레슬라우 근처 골드슈미덴(Breslau, Germany, now Wrocław, Poland)에서 태어나 1903년 브레슬라우대학(University of Breslau), 베를린대학교(University of Berlin) 및 라이프치히대학(University of Leipzig)에서 아르투어 루돌프 한치(Arthur Rudolf Hantzsch, 1887~1935) 교수의 지도 아래 1907년 화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09년 카를스루에대학교(University of Karlsruhe)에서 1918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프리츠 하버 및 1931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칼 보슈(Fritz Haber & Carl Bosch)와 공동으로 하버-보슈공정(Haber-Bosch Process) 개발을 연구했다. 그해 하노버대학교(University of Hanover)의 막스 보덴스타인(Max Ernst August Bodenstein, 1871~1942) 교수의 초빙으로 교수를 맡았다. 교수로 있으면서 고압화학공업에 몰두했으며, 1913년엔 석탄가루를 고압에 수소를 작용하게 해 액화하는 베르기우스법(Bergius Method)을 개발했다. 12년의 세월과 거액의 연구로 석탄액화방안(coal liquefaction method)을 개발한 공적으로 1931년 2인 공동수상자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었다. 제2차 세계대전 비상식품으로 이용할 대용식 개발과 석탄액화(coal liquefaction)로 독일경제에 기여했다. 1946년 고온고압에서 나무로 설탕(탄소화물)을 만드는 목재당화(saccharification from wood)로 가축사료를 제조하는데 성공했다. 1947년 아르헨티나(Argentina) 산업부장관(Ministry of Industry)의 정치고문(政治顧問)을 역임했다.

글·그림=이대영<코리아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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