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칼진 고양이 ‘장수 축원’ 대표 동물이 된 까닭
앙칼진 고양이 ‘장수 축원’ 대표 동물이 된 까닭
  • 윤덕우
  • 승인 2020.11.0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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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온의 민화이야기] 가을날의 고양이 좋아하세요?
눈빛 사나운 변상벽 고양이
털의 양감 살아있는 정선 작
스산한 풍경 강조한 심사정
가을 고양이, 다양하게 표현
猫, 70세 뜻하는 중국어 발음 비슷
문자유희 이용 대상에 의미 부여
이제 올해도 두 달 밖에 남지 않았다. 날씨도 이제 영하권으로 들어서며 겨울 추위도 시작되었다. 날씨가 추워지면 사람도 고생이지만 길거리의 동물들도 고생이 시작된다.

몇 년 전 화실로 찾아온 삼색무늬 길냥이가 생각나 그림 속 고양이를 살펴보기로 했다. 이름까지 짓고 먹이를 먹이고 식구처럼 돌봤는데 이사하면서 데려올 수가 없어 이제 추억의 한 장면이 되었다.

가끔식 변상벽의 ‘추정국묘(秋情菊猫를) 보면서 그 시절의 길냥이 생각이 그리워진다.
 

추정국묘
변상벽 작 추정국묘 지본채색 22.5X 29.5cm 18세기 간송미술관 소장.

삼색무늬 고양이 한 마리가 곱살한 가을 들국화 앞에 앙팡지게 웅크리고 앉았다. 철따라 털갈이한 고양이는 터럭 한 올 한 올이 비단 보풀보다 부드럽고 야단스러운 삼색이 반점은 눈에 띄게 짙어졌다. 함초롬하게 핀 국화는 어떠한가. 초가을의 햇살이 반가워 대놓고 웃는 낯빛이다. 지금의 화가들이 그려도 이보다 잘 그리기 어려울 것 같다. 국화에서는 사실적인 묘사와 고양이 몸뚱아리에는 해부학적인 리얼리즘의 정수가 보인다. 오래된 그림이지만 국화는 향기가 나고 고양이는 생기가 돈다. ‘국수(國手)’로 소문난 변상벽이 한껏 재주 부린 가작이다. 변상벽은 초상화의 대가로 어진 제작에 참여한 덕으로 현감 벼슬에 오른 화원 이었다. 하지만 남은 작품은 닭이나 고양이 그림이 더 많고 작품성고 뛰어나다. 오죽하면 그의 별명이 ‘변 닭’ ‘변 고양이’였을까. 아닌 게 아니라 고양이 눈빛은 모질고 사납다. 다문 입에서 ‘그르릉’ 소리가 새어나올 듯하다. 외로 돌린 고개와 응시하는 눈매가 먹잇감을 포착한 기색이다. 노란 홍채 안에 검은 동공은 풀씨처럼 가늘어 눈썰미 밝은 옛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정오가 막 지난 눈동자다.

생김새 표독한 고양이지만 그릴 때는 살뜰한 맘씨가 얹혀졌다. 고양이 ‘묘(猫)’자는 칠십 노인 ‘모( )’와 발음이 닮았다. 그래서 고양이는 70세 노인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국화는 흔히 은거를 뜻한다. 그러니 이 그림은 ‘일흔 살 넘도록 편히 세상의 풍파로부터 숨어 사시라’는 기원이 담겼다. 벽에 걸어놓으면 두 벌 몫을 할 그림이다. 쥐 잡고 오래 살고….

이번에는 색쉬한 포즈의 고양이를 만나보자.
 

추일한묘
겸재 정선 작 추일한묘 견본채색 30.5X 20.8cm 간송미술관 소장.

꽃은 들국화요, 고양이는 길냥이다. 국화는 연자줏빛 꽃잎이 부드럽다. 한 뿌리에서 돋아나 두 가닥으로 뻗은 줄기는 튼실하다. 덜 피거나 활짝 핀 꽃들이 예쁜 짓을 골라서 한다. 위도 보고 아래도 보고, 뽐내거나 앵돌아서는 갖가지 자태로 눈을 끌어당긴다.

세 송이 넘는 꽃을 그릴 때 크기와 방향을 달리해 서로 미소 짓듯 배열하는 것이 국화를 그리는 옛 그림의 양식이다. 저 꽃잎에 코를 대면 그 향기가 스며들 듯하다.

털갈이를 마친 고양이는 윤기 나고 폭신하다. 터럭은 곧이 곧대로 그리지 않고 부티 나는 양감을 되살리는 데 공들였다. 길냥이 치고는 살이 통통하게 올라 보이며 살짝 몸을 꼬운 색시한 포즈에서 여유가 느껴진다. 노란 홍채 안에 풀씨 같은 동공이 또렷하지만 모질거나 사납지 않다. 외로 돌린 고개, 곱다시 쳐다보는 시선, 실낱같은 입매에서 장난기가 감돈다. 지나가는 방아깨비의 더듬이와 뒷다리도 새삼스럽다. 적대시 않는 고양이의 꼬리는 느슨한데 이 녀석은 제풀에 빳빳해졌다. 평온한 가을날에 때 아닌 싸움질을 하겠는가. 화심에 날아든 벌도 날갯짓을 멈춘다. 겸재는 고양이를 빼고 괴석을 넣은 같은 주제의 수묵화도 그린 바 있다. 풀벌레가 동무해주는 국화 그림은 그저 장식용에 그치지 않는다. 화가가 똑같이 자주 그렸을 때는 숨은 뜻이 있었다. 살뜰한 기복(祈福)이 깃든 것이다.

겸재의 고양이와 비교해서 보면 재미있을 그림이 하나 있다. 현재 심사정의 쓸쓸한 가을 고양이이다.
 

패초추묘
현재 심사정 작 견본채색 18.5 X 20.3cm 18세기 간송미술관 소장.

여름을 지나면서 파초도 잎이 시들고 찍어져 그 스산함이 가득한데 가을바람을 맞이하는 고양이의 표정을 보시라. 정선의 고양이에서 느껴지는 여유와 만족보다는 그 쓸쓸함이 느껴진다. 심사정은 겸재 정선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그림을 배웠다. 비록 출신배경으로 겸재처럼 명성을 얻는 화가는 못되었지만, 자신만의 천재성으로 스승과는 다른 화풍을 만들어낸 화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화가는 옛 그림의 고양이를 어떻게 표현했을까?
 

기다림-아침인사
손유영 작 기다림-아침인사 순지에 채색 110x80cm 2014년 작가 소장.

변상벽의 묘작도는 참새가 가지고 있는 작(雀)과 까치 작(鵲)의 독음이 같은 것을 이용하여 기쁠 희(喜)의 뜻으로 나타내었다. 이 그림은 70세 고희(古稀)의 기쁨을 축하하는 그림이며 기쁘다는 의미에서 손유영의 아침인사라는 현대 민화에 그 의미를 차용한 것 같다.
 

묘작도
변상벽 작 묘작도 견본채색 93.7X 43.0 cm,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런데 옛 그림의 고양이들은 제목에서도 그러하듯 왜 죄다 가을의 문턱에 앉아 있는 걸까?

고양이를 애완용으로 키웠다는 기록은 있지만 주로 왕실에 국한되었다. 또한 고양이에 붙은 상징은 고작 ‘장수축원’이 전부였다. 이러한 의미도 고양이의 생태적 특성에 따른 상징도 아니고 전설이나 고사(故事)에 따른 것도 아니다. 그저 고양이를 뜻하는 한자 묘(猫)가 70세 노인을 뜻하는 중국어인 모( )와 발음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문자유희’에 따른 상징법이라고 한다. 이러한 덕분으로 고양이는 장수축원이라는 기복적 상징을 숨기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았으며 사람들과 친하고 자세히 관찰되는 동물이어서 그림의 소재로 적합했을 것이다.

이제 인생의 결실을 상징하는 가을을 배경으로 고양이가 앉아 있는 장면들이 조금은 이해도 된다. 시대가 변해서 지금은 반려묘로서 고양이의 전성기이다.

개와 고양이를 식용으로 사용하거나 죽이는 것은 문화적으로 금지되었고,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을 고양이 집사라고 부르지 않는가. 고양이 서열이 사람보다 높아 ‘고양이 팔자가 상 팔자’라는 말이 현실이 되었다.

그러면서 고양이에게 붙었던 장수축원의 뜻은 사라지고 오늘날은 자신의 삶에 풍요와 여유의 상징하는 소장품으로 그 역할이 바꿔진 듯하다.

<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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