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으로 놓인 모래시계의 파급력…아트스페이스 펄, 김명범展
옆으로 놓인 모래시계의 파급력…아트스페이스 펄, 김명범展
  • 황인옥
  • 승인 2020.11.05 2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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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계 등 쉬운 오브제 선택
절대 개념 가진 현상 시각화
기존 의미 깨지며 새 힘 유발
김명범작-stonetrap
김명범 작 ‘수평의 시간’
 
김명범_절대수직 절대수평
김명범 작 ‘절대수직 절대수평’

작가 김명범의 시각 언어 서술 능력을 논할 때 하나는 확실해 보인다. 중력이나 시간, 수직과 수평 등의 자연현상이나 인간의 심리나 욕망 등의 사회현상을 시각미술 언어로 서술하는데 거침없는 태도를 취해왔다. 특히 전복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거대한 자연이나 사회 현상들을 지극히 평이한 소재들의 조합을 통해 쉽고 간명하게 풀어놓는데 탁월성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개막한 아트스페이스 펄 개인전 ‘수평의 시간(Horizontal time)’전에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를 모았다. 인간이 역사 이래 쌓아온 절대 개념에 파장을 던지고, 이를 통해 개념 확장을 모색하는 작가의 작업 세계 전반을 관통하고 있다.

김명범은 중력이나 시간, 사회구성원들의 태도 등의 비물질 현상을 다룬다. 이때 그가 시각적인 언어로 구현하는 기반이 물질이다. 시각 예술이라는 특성상 물질 없는 비물질 현상 설명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물질을 선택할 때 고수하는 원칙 한 가지가 있다. 누구나 알고 있고 사용하고 있는 가장 쉬운 오브제를 선택하는 것. 이수평계나 수직추, 온도계, 모래시계, 새장, 풍선 등의 오브제가 대표적이다.

작가는 이러한 오브제를 “작가와 감상자 사이의 교집합”이라고 명명했다. “작가도 익히 알고 있고 감상자도 알고 있는 오브제는 일종의 교집합에 해당됩니다. 작가와 감상자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는 오브제로 이야기를 풀어 갈 경우 아주 쉬운 서술이 될 수 있죠.”

온도계나 수평계, 모래시계 등은 분명한 용도를 가진 오브제들이다. 작가는 이들 오브제의 용도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구현한다. 이른바 용도의 전복이다. 용도의 전복은 작품 ‘수평의 시간’에서는 세로로 세워져 모래가 떨어지면서 시간을 측정하는 모래시계를 옆으로 뉘어놓는다거나, 작품 ‘절대수직과 절대수평’에서 수평계를 수직과 수평으로 교차해 십자가 형태로 설치한다든가, 작품 ‘다른 방향의 온도’에서 온도계 두 개를 수평으로 맞물려 놓거나, 작품 ‘With’에서 저울을 수직으로 맞물려 놓는 방식으로 오브제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도록 만드는 식으로 드러난다.

용도의 전복은 결국 새로운 에너지의 확장을 위한 선택지였다. 작품 ‘다른 방향의 온도’에서 온도계 두 개를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나란히 이어 놓음으로서 사회 구성원 각자가 사회현상이나 자연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미묘한 온도차를 설명하고자 했다. 실제 무게가 다른 저울 두 개가 서로의 무게를 측정하는 형식으로 구현한 작품 ‘With’에서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현대인의 심리상태를 드러내고, 타인과 자신과의 균형감각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한다.

오브제와 오브제의 결합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지만 두 오브제 사이의 인관관계는 무시된다. 이러한 태도는 물건과 물건의 결합에 있어 인관적인 관계보다 비인과적인 공시성으로 맞물렸을 때 오히려 에너지의 파장이 커진다는 믿음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작가는 이 비인과적인 관계성에서 ‘매력점’을 발견한다. 그가 감상자와 소통하면서 주목하는 가치는 ‘작품이 가지는 매력’에 있다.

작가는 “감상자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야 작품에 대해 궁금해 하고 생각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비인관적인 것끼리 결합시키고 용도를 전복시키면 본질적인 것은 바뀌지 않지만 새로운 에너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작품에는 직관보다 정교한 논리가 지배적으로 작용한다. 중력이나 수직이나 수평, 시간 등의 개념을 과학적이며 논리적으로 접근하며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결합시킨다. 예컨대 새장 속에 헬륨 가스가 가득찬 풍선을 넣고 헬륨 가스가 빠지면서 중력에 의해 풍선이 조금씩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상황을 보여주며 힘(욕망)을 빼야 새장(고뇌)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는가 하면, 풍선이 수직으로 떨어져 내리는 현상에서는 중력과 시간의 흐름을 가시화하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풍선 대신 알루미늄으로 박제된 풍선으로 대체해 가장 빛나는 욕망의 한 순간을 포착해 놓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인간이 축적한 기준, 예컨대 시간이나 절대 수직과 절대 수평 등의 개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데 역량을 할애한다. 수평계를 가로와 세로로 엮어 십자가 형태로 만든 작품 ‘절대수직 절대수평’은 이번 전시의 주제가 압축적으로 용해된 대표작이다. 절대 수직과 수평을 계측하는 과학의 산물인 수평계를 절대수직과 절대수평으로 구현해 자연현상과 과학현상을 너머 종교적 차원으로까지 주제를 확장하고 있다.

“자연물인 수평계를 통해 십자가 형태로 만들었더니 절대수직과 절대수평의 형태가 되었어요. 종교나 과학, 자연현상까지 개념적인 확장이 가능해졌어요.” 전시는 15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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