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에서 ‘따아’로
‘아아’에서 ‘따아’로
  • 승인 2020.11.0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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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
대구의료원 소아청소년과장
대구시의사회 정책이사
2020 달력을 한 장 한 장 나누어서 벽에 붙였었다. 재난 영화 같은 사태가 언제 끝이 날까 싶어 하나하나 붙이다 보니 마음이 복잡하였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 때면 바바리 깃을 세우고 여유 있게 가을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가느다란 희망이라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11월, 가을은 깊어 가는데 음압 병동엔 아직도 환자가 입원과 퇴원이 반복하고 있다. 당직인 날이면 환자 입원한다는 휴대폰이 울릴까 봐 조마조마하다.

코로나로 죽으나 굶어 죽으나 매한가지 아닌가? 하는 이도 있다. 그냥 마음이라도 편하게 살고 싶다는 표현이 아니랴 싶다. 입원해 있어도 특효약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아픈 데도 없고 견딜만한데 답답하게 갇혀만 있어야 하고 수시로 의료진들이 들어와서 상태를 체크 하니 “왜 자꾸만 들어오는 거죠? 마스크 쓰고 있는 것이 너무 답답해서 죽을 것 같아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차라리 같이 코로나 걸리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라고 울먹이던 보호자. 그의 짜증스러운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 얼마나 답답하면 그렇게 말했겠는가. 세계가 코로나로 힘들어하고 있는 데도 자신의 꿈을 안고 멀리 떠나 잘 버텨보겠다고 하였다가 여의치 않아 다시 들어오게 된 조국 땅, 귀국하자마자 코로나 검사를 받았으리라, 몇 차례 검사 끝에 결국 양성 판정을 받아 격리 입원이 된 상태이니 그 심정이 오죽하겠는가. 미성년인 아이가 코로나에 걸렸으니 증상이 아무리 미미하다고 하여도 어찌 혼자만 입원실에 둘 수 있었겠는가. 입실동의서를 작성하고 함께 병실에서 간호하고 있지만 갇힌 자신에게 짜증이 자꾸만 나는 모양이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하니 잠도 쉽게 못 들고 가슴이 조여 오는 것 같은 상황인데 의료진은 볼 때마다 보호 장구를 갖추라고 신신당부하니 어디 그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최소한 장갑과 마스크에 비닐 가운이라도 입고 있으라고 애원해도 잠시만 지나면 벗어던지기 일쑤다. 그러니 혈압 체온 등 기본적인 것들에 대한 측정할 시간이 되어 드나들 때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고 지적을 하니 “차라리 코로나 걸려서 같이 치료받는 게 나을 것 같다“는 말을 나지막이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얼마나 마음 상하면 그럴까. 아이가 퇴원해서 나가더라도 2주간 자가 격리를 해야 하니 차라리 양성 확진 판정을 받으면 격리 기간이라도 단축이 될 터이지 않겠는가 하는 심정이리라. 그 마음도 이해는 된다.

지인 중에 골프의 즐거움에 빠져 골프장 가까운 곳으로 이사까지 한 분이 계셨다. 어느 순간 코로나에 걸려 정말 심하게 되어 오래 입원해서 치료를 받았다. 힘들게 치료받고 퇴원하였다. 오랫동안 햇빛을 못 보고 병실에서 그것도 밖에서 잠그는 소리까지 들리는 곳에 있었다면서 고립된 공간에 들어 있다는 그 사실이 너무 두렵고 외로웠다고 토로하였다. 그러한 과정을 견디고 나왔으니 얼마나 새로웠겠는가. 반가운 마음으로 지인을 찾아갔는데 상대방 표정을 보니 너무 뜨악하여 두려움이 일었다고 한다. 코로나를 극복하고 퇴원하였는데 아직도 코로나 균에 오염되어 있는 듯이 멀리 떨어지려고 하는 몸짓과 표정으로 읽었을까.

어쩌면 스스로 느끼는 자기만의 위축된 느낌일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이 코로나에 걸렸다는 그 사실 때문에 행여 남들이 꺼리지 않으랴 싶어서 말이다. 그러니 더욱 조심스럽고 밖에 나갈 수가 없으니 이 좋은 가을, 밖은 화창한데 안에만 머무르고 있으니 우울하기 그지없다는 하소연이다. 그야말로 코로나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깊디깊은 것이다. 상담을 한번 받아 보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하였지만, 움츠러드는 마음과 행동반경이야 당분간은 어쩔 수 없지 않을까 싶다. 이제 사람의 수명은 점차 늘어 100세 시대를 맞았다.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고 한 푼 두 푼 모아 둔 것을 이제는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줄 필요 없다는 이들도 있다. ‘안 먹고 안 쓰고 모은 재산은 자식에게 미리 주면 굶어 죽고 조금 주면 조여서 죽고 안 주면 맞아 죽는다.’ 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코로나로 죽으나, 굶어서 죽으나 죽기는 마찬가지’라는 이도 있다. 요즘, 너나없이 사는 것이 참 어렵고 힘든 세상이다. 그래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고 하루하루 잘 버티어 나가려면 아이스 아메리카노(아아)처럼 내 마음대로 후루룩 마셔버리고 후회하지 말고 따뜻한 아메리카노(따아)를 조금씩 음미하며 마시듯 돌다리도 두드려가며 건너듯이 매사에 조심하면서 이 시기를 잘 건너야하지 않겠는가. 구절초 향기 그윽한 가을을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그 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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