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 40년’ 달항아리 작가…지역 예술 발전 견인차
‘도예 40년’ 달항아리 작가…지역 예술 발전 견인차
  • 황인옥
  • 승인 2020.11.08 21: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예 작가 이점찬
달 향한 인간의 경외심 담아
부귀영화 염원 균형미 초점
천지인 사상 바탕 형태 변주
대구미협회장…사상 첫 합의추대
임기 3년차 ‘화합의 아이콘’ 부상
협회원 전시공간 2곳 후원 받아
예술인 창작여건·처우개선 앞장
 
이점찬 초대전이 대덕문화전당 제1,2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이점찬 각가가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점찬 초대전이 대덕문화전당 제1,2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이점찬 각가가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점찬
이점찬 대구미협회장

한 곳에만 집중해도 힘에 부치는데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똑 부러지는 사람들이 있다. 특별한 DNA를 타고난 부러움의 대상들이다. 도예 작가 이점찬도 특별한 DNA 소유자처럼 다가온다. 도예 작가라는 평생의 과업을 수행하면서 대구경북 문화예술계의 당면과제들을 현실에서 성공적으로 펼쳐오고 있다. 도예 작가로 활동하며 대구미술협회 회장, 경일대학교 디자인 학부 교수, 경상북도 문화재 위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최근에 날아든 겹경사는 고무적인 그의 활동에 대한 화답처럼 보인다. 먼저 지난달 27일에 ‘2020년 경상북도 문화상’ 조형예술부문 수상자로 선정되며 경북문화예술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으며, 지난달부터 그가 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사)한국미술협회 대구광역시지회(이하 대구미협) 회원들의 전시를 담당하게 될 전시장 두 곳을 후원받아 운영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7일부터는 대구 대덕문화전당에서 제18회 개인전을 개막하며 작가 이점찬의 도예 인생 40년의 결실을 선보이고 있다.

◇황금 백자 달항아리에 부귀영화 염원 담다

대구 남구문화원 초대로 대구 대덕문화전당 제1,2전시실에서 이점찬 특별초대전이 시작됐다. 황금빛 여백에 봉황이 사뿐히 내려앉은 달항아리들와 백자 달항아리 등 20여점이 전시장 곳곳에 놓였다. 백자 달항아리의 고졸(古拙)한 정적을 깨고 궁극의 아름다움을 취했다. 그가 황금빛 달항아리에 대해 “‘우리시대의 백자달항아리는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연구한 결과”라고 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주거 공간의 형태도 달라졌어요. 시대와 함께 호흡하기 위해서는 달항아리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텅 비어서 오히려 충만한 달항아리는 백자 중에서도 백미로 꼽힌다. 무심한 듯 빚은 둥근 모양이나 불순물이나 욕망이 끼어들기 이전의 순수 색인 백색에서 고졸(古拙)하고도 청아(淸雅)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작가는 달항아리에서 형태보다 의미를 먼저 발견했다. 옛 선조들이 보름달을 닮아서 둥근 형태의 항아리를 달항아리라고 이름 지은 것과 무관치 않다. 보름달에 투영한 인간의 경외심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달은 인간에게 신비와 숭배의 상징이었다.

작가는 달항아리의 내적 근간을 ‘달’에 두었고, 달항아리와 보름달을 형태와 의미 측면에서 견고하게 연결했다. 작가는 “옛 선조들은 보름달이 떠오르면 정한수를 떠놓고 가족의 안녕과 건강을 빌었어요. 저는 달을 향한 인간의 경외심을 달항아리에 표현하려 했어요.”

작가는 집 현관 앞 마루에 달항아리를 놓고 드나들 때 달항아리를 한 번씩 안고는 한다. 38만 4천㎞ 떨어진 달을 가까이서 보는 것은 사실상 불가하며 꽉 찬 보름달을 보는 것도 1년에 고작 열 두 번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보름달을 품은 달항아리를 곁에 두고, 보고, 만지고, 보듬으며 하루의 안녕을 기원할 수 있다. 현실에서 매일 보름달을 알현할 수 있는 이 특권이야말로 그가 달항아리를 만드는 이유다.

“보름달을 따다 집에 둘 수가 없으니 도자기로 만들어서 곁에 두고 부귀영화를 염원하게 하고 싶었어요. 그 점에서 저의 달항아리는 일종이 부적이죠.”

작가의 달항아리는 미니멀하면서도 화려하다. 보름달을 닮은 둥근 형상에 최소한의 문양을 새긴다. 백자 달항아리에 황금을 발라 재벌구이를 한 작품에서는 화려하면서도 미니멀한 미감이 정점을 달린다. “예나 지금이나 부귀영화에 대한 염원은 똑 같아여. 그 염원이 문양에 오롯이 담겨집니다."

그 옛날 달항아리의 형태는 완벽한 조형미 보다는 부정형에 가까웠다. 제작 방법의 한계로 위와 아래의 몸통을 따로 만들어 붙여야 했고, 이 때문에 반듯한 원형으로 비례를 맞추기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의 환경은 온전한 원형을 제작할 수 있게 되었고, 작가는 매끈하게 떨어지는 원형의 달항아리를 선호한다.

이점찬 달항아리의 철학적 모태는 천지인(天地人) 사상이다. 받침(굽), 입술부분(전), 몸통에 천지인 사상을 접목하며 형태면에서 다양한 변주를 거듭한다. 완벽에 가까운 둥근형태나 세로로 길죽한 형태는 물론이고 도자기의 입에 해당하는 전에 특히 조형적인 변화를 거듭한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원칙 한 가지는 고수한다. 균형감각이다.

“문양은 여백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상태에서 멈춰야 해요. 채우려는 욕망을 끊고 균형감을 유지할 수 있을 때 좋은 작가가 되는 것이죠.”

대학에서 도자를 전공하고 도예 작가로 사는 모든 날이 행복했다는 그. 생활도자의 전성기를 이끈 현대 생활도자 1세대인 그가 달항아리에 집중한 것은 20여년 정도 됐다. 현대시각예술에서 달항아리는 회화나 사진에서도 더러 등장한다. 하지만 작가는 달항아리의 정점은 도자기라고 했다.

“도자기는 도공이 빚고 불이 완성하는 예술입니다. 특히 백자달항아리는 흙 자체가 굉장히 고운 분말이라 불에서 깨지기가 쉬워서 성공률이 20~30% 내외에요.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극적인 요소가 있다는 이야기죠.” 전시는 13일까지.

◇대구미협 회원들의 가려운 곳 긁어주는 리더

이점찬은 2018년에 제21대 대구미협회장으로 취임했다. 대구미협 창립이래 최초로 선거없는 합의 추대로 회장을 맡으며 일약 화합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그는 3년 전 회장에 취임하면서 조직 구성이나 운영 방식 시스템화, 회원들의 예술활동 지원과 회원들간의 화합을 임기 중 목표로 제시했다. 이는 결국 협회 회원들이 대구미협에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임기 3년차를 지나면서 그의 목표는 결실을 맺고 있다. 특히 수성관광호텔 별관 VIP실(제1전시실)과 대구 황금동 수성문화원 인근의 건물 한 층(제2전시실)을 갤러리 공간으로 후원을 받은 것은 고무적인 사건이다. 제1전시실은 원로작가들의 전시공간으로, 제2전시실은 젊은 작가들의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게 된다. 현재 이 두 전시실에서 15명의 원로작가 초대전과 김미숙 작가의 개인전이 각각 열리고 있다.

대구미협이 운영하는 공간에 초대된 작가들의 전시는 원스톱 후원으로 진행된다. 전시공간 무상 제공은 물론이고 작품 운송비와 팜플렛 제작비용까지 대구미협이 후원하게 된다. 또한 제2전시실에서 전시하는 작가들에게는 창작비까지 지원하게 된다.

그는 “전시 한번 하려면 적어도 1~2천만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작가들에게는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작가들에게 가장 필요한 전시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1차 목표로 삼았다고 했다. 제3전시실, 제4전시실로 공간을 확장해 가는 것은 앞으로의 과제로 남겨두었다.

문제는 예산인데 일단은 이 회장 사비와 지인들의 도움으로 시작했다. 그가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이 공간들이 대구미협이 재활성화 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예산문제는 앞으로 풀어갈 과제이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믿고 노력해 갈 것입니다.”

◇경북문화예술 콘텐츠 발굴에 앞장

그는 경북 구미 출신이며, 작업장은 경산에 있다. 경상북도(이하 경북)과의 끈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 그는 경북 도자 예술의 발전을 위한 일에 오랫동안 헌신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경북 청송에 청송백자의 맥을 이은 것이다. 경북 청송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심수관 도공의 출신지다. 그만틈 경북 청송의 백자는 유명했다. 그러나 고만경 도공이 유일하게 생존한 것을 안 이점찬이 백방으로 뛰어 청송백자 전수관도 짓고 고만경 선생이 타계하기 전에 전수자도 배출할 수 있게 됐다.

경북에서의 활약상은 또 있다. 경북 23개시군의 도공들을 모아 경북도자기협회를 발족시키고, 경상북도 해외박람회에 참가해 대한민국과 경북의 문화 알리고 원들의 견문 넓히는데 힘써왔다. 또한 경북에 폐교가 생겨나던 초창기에 구미예술창작촌을 만드는데 힘을 썼다. 구미예술창작촌은 경북 내 폐교에 문화콘텐츠를 입히는 롤 모델이 되고 있다.

‘2020년 경상북도 문화상’ 수상은 그에게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했다. 경북 문화예술 발전에 대한 더 큰 행보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는 동시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대구와 경북의 예술을 넘나드는 삶을 살아왔기에 앞으로 대구경북 예술통합을 위한 역할을 찾고자 합니다. 그것이 제가 대구경북에서 받은 사랑에 대한 보답의 길이라고 여깁니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